단단한 틀에 갇힌 생각과 마주할 ‘용기’…세상을 좀 더 낫게 바꿀 수 있지 않을까[인스피아]

김지원 기자 입력 2024. 2. 26.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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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와 프레임
‘가난-게으름’ ‘부-노력’ 고정관념
인지언어학자 레이코프 “본능”
“세상을 보는 단단한 틀 ‘프레임’
설득 위해 팩트·논리보다 중요”
정치컨설턴트 런츠 ‘먹히는 말’
‘지구온난화’ 대신 ‘기후변화’
‘유전 발굴’ 대신 ‘에너지 탐사’
말로 프레임 → 여론 → 사회 바꿔
전략가들 기만적 프레임에 대응
레이코프 ‘강한 프레임’ 주장
‘중도란 없다’ 메시지 강조하며
“영역 따라 보수·진보 사고 사용”
‘극좌-중도-극우’ 스펙트럼 경계

설 연휴도 벌써 어언 2주가 지났습니다. 독자님들께선 설 명절을 잘 보내셨나요?

근래 저는 ‘명절 대화’를 다룬 기사들을 읽으면서 조금 어리둥절해진 부분이 있었습니다. 거의 99%가 “피차 불편해지는 이야기는 피하라”고 똑같이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이런 글들을 보다보면, 명절 밥상에서 ‘정치 얘기’를 꺼내지 않는 것은 ‘예의’ ‘에티켓’의 영역 같은데요. 정치 얘기란 꼭 어느 정당을 지지하느냐라는 차원에만 국한되었다기보다는 세금, 환경, 노동 등 여러 현안이나 우리의 삶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아우릅니다.

이런 부분에 새삼 눈길이 머문 이유는 첫째, ‘피차 불편해지는 이야깃거리는 피하라’는 게 꼭 ‘명절’에 국한된 조언은 아니라면, 과연 피차 불편해지는 이야기는 언제 어디서 할 수 있는 건지 궁금해졌고요. 둘째는 내가 ‘불편한 상황에서 상대방의 마음의 벽을 정공법으로 뚫어보려는 시도’를 해본 적이 있었는지 새삼 되짚어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대체로 그저 말이 안 통한다며 고개를 내젓곤 했을 뿐이죠.

그리고 ‘만약 단 한 사람의 마음을 바꾸지 못한다면, 과연 세상은 더 낫게 바뀔 수 있을까?’ 그렇게 놓고 보자면 이것은 단지 명절을 기분 좋게 보내는 가족 사이 에티켓 정도의 차원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서로 설득을 포기한 모습을 보여주는 씁쓸한 단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역시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는 상대방의 마음을 ‘뚫고’ 들어가는 것, 그리고 기존의 고정관념을 다른 차원에서 생각해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인데요. 오늘 레터에서는 평소 우리가 수많은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서 왜 어려움을 겪는지, 또 이런 단단한 기존의 틀을 깨고 다른 생각을 해보기 위해선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조금은 실용적인 차원에서 해찰해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을 보는 프레임, 고정관념

<삶으로서의 은유>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등을 쓴 세계적인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off, 1941~). 위키피디아

‘고정관념’ 하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왠지 조금은 찝찝한 기분이 드실 수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 주변의 많은 편견은 ‘고정관념’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가난-게으름’이라든지, ‘늙음-비효율’ ‘세금-소비’ ‘돈-행복’ ‘부-개인적 노력’… 이런 식으로요. 아예 ‘논쟁(論爭)’처럼 별개의 단어가 한몸으로 붙어버린 단어도 있고요. 우리는 보통 이런 ‘고정관념’이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이런 무의식적인 고정관념에 큰 영향을 받는데요.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우리에게 말해왔습니다. “그건 인간의 본능입니다, 그리고 이를 인정해야 합니다”라고요.

조지 레이코프가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등의 책에서 주장하는 핵심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팩트, 논리보다도 연결(프레임)에 큰 영향을 받는다. 우리가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프레임을 고려해야 한다!’

레이코프는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프레임을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이라고 정의합니다. 즉 프레임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단단한 틀인데, 이는 언어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거죠.

이해를 돕기 위해 ‘지렁이 버거 괴담’ 사건을 예로 들어볼 수 있습니다. 1970년대 맥도널드가 패티에 지렁이 고기를 쓰고 있다는 루머가 퍼진 일이 있었습니다. 이에 회사는 적극적으로 “우리 버거에는 지렁이가 정말로 없어요!”라고 설득했습니다. 하지만 매출은 계속 곤두박질칠 뿐이었죠. 결국 회사는 루머를 반박하는 대신 다른 메뉴를 홍보하기로 했고요, 곧 루머는 자연스레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는 프레임이 작동하는 방식과 유사한데요. 요는 실제로 지렁이와 버거는 ‘논리’ ‘사실’적으로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지만, 오히려 연상을 자주 시킬수록 ‘연결’ 관계가 더 강해진 것입니다. 이 때문에 레이코프는 당연히 ‘팩트를 무시하라’고는 하지 않지만, 프레임의 작동 방식을 고려하지 않고 단지 팩트에만 집중하는 것은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선 자칫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레이코프에 따르면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선 기존의 ‘왜곡된 프레임’을 흔들고, 거기서 빠져나오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개인이 쌓은 부는 오직 개인의 능력·노력의 정당한 대가다!’라는 프레임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과연 그럴까요? 우리는 통상 개인의 부가 오직 특출난 경영자, 창업자의 능력 덕이라고 생각하곤 하는데요. 이때 프레임 안에 있으면서도 지워진 인공적, 자연적 공공자원이나 프레임 바깥으로 밀려난 오염 등의 외부효과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을 통해 단단한 프레임을 흔들어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공장을 돌리기 위해선 노동, 대기, 물, 고속도로 등 사회간접자본 등이 모두 필요하고 오염이라는 외부효과도 낳지만, 개인의 노력만을 중시하는 프레임은 이를 감춥니다. 이처럼 프레임에서 거리를 두는 것이 필요하지만, 우리는 정치적인 주제에 대해 말할 때 무의식적으로 오히려 잘못된 사고를 더욱 반복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지구온난화’를 ‘기후변화’로 만든 사람

프랭크 런츠는 2000년대 초반 ‘지구온난화(Global Warnimg)’를 ‘기후변화(Climate Change)’로 바꾸는 등의 조언으로 조지 부시 연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위키피디아

물론 프레임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닙니다. 프레임은 담요에서 따뜻함을 연상하고 절벽에서 위험함을 연상하는 식으로 우리가 세상을 보는 틀입니다. 이런 단순화된 입력 틀이 없다면 우리는 효율적으로 사고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특정 정책과 관련된 고정관념의 경우 워낙 우리의 무의식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대중 홍보(PR)의 선구자 에드워드 버네이스 이후로 많은 권력자들은 막대한 노력, 예산을 쏟아부어 이런 단어의 연결을 어떻게 하면 유리한 방향으로 활용할지 연구해왔습니다. 우리가 특별히 중요한 정책들과 연결된 프레임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프랭크 런츠는 2000년대 초반, ‘지구온난화(Global Warming)’ 대신 ‘기후변화(Climate Change)’라는 단어를 적극 도입해,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축소한 것으로 유명한 정치 컨설턴트입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연임의 일등공신으로 평가되기도 하고요.

한때 주로 기업, 보수정부와 일해온 그는 책 <먹히는 말>에서 어떻게 그가 환경 파괴, 노조 파괴, 도박 양성화 등에 대해 효율적으로 ‘먹히는 말’을 만들어왔는지 수십년의 노하우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는 효과적인 언어란 “먹히는 말”이라며,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고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커뮤니케이션의 목적이 달성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 책에서 실제 그가 거론하는 사례들을 보다보면 말이 실제로 얼마나 엄청난 힘이 있는지에 대해 새삼 체감하게 되는데요. 그의 말은 먹혔고, 작동했고, 사회를 ‘실제로’ 바꾸었죠.

먼저 그의 대표적 업적인 ‘기후변화’라는 단어는 ‘지구온난화’에 비해 재앙의 뉘앙스는 줄이면서도 딱딱하고 객관적인 느낌이라 기후변화의 심각성이 상대적으로 덜해 보이게 만들었다는 평을 받습니다. 이 밖에도 그는 ‘유전 발굴’ 대신 ‘에너지 탐사’ 등의 단어를 쓰면서 정책이 가져오는 환경오염의 효과가 덜해 보이게 만들었죠. 사망하고 난 뒤 유산에 매기는 세금인 ‘유산세(estate tax)’ 대신 ‘사망세(death tax)’라는 단어를 적극 도입한 것도 해당 세금 폐지 여론을 조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처럼 말은 단순히 말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말은 어떤 정책, 현상에 대한 우리의 관점(프레임)을 바꾸고, 여론을 뒤집고, 결과적으로 사회를 실제로 바꾸어냅니다.

인권엔 ‘절반’이 없다: 중도적 주장 환상

우리는 프레임이 즉각적으로 우리의 본성, 무의식에 적용되고, 또 전략가들이 이를 기만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요?

조지 레이코프는 우리가 제대로 대처하기 위해선 ‘우리만의 강한 프레임’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이와 함께 ‘중도란 없다’는 메시지를 강조하는데요. 좀 더 엄밀하게 말하면 “‘중도층’이라는 단일 집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들은 결코 중도적인 주장으로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라는 것입니다.

레이코프는 책 <폴리티컬 마인드>에서 “중도적 세계관, 중도파의 특성을 규정하는 개념의 집합은 결코 없다”며 “중도파라 불리는 사람들은 어떤 쟁점 영역에서는 보수적 사고를, 다른 어떤 쟁점 영역에서는 진보적 사고를 사용한다”고 역설합니다. 한 사람이 예를 들어 이민 문제나 경제와 관련해서는 진보적 사고를 가질 수 있지만 장애 문제나 젠더, 종교 등에 있어선 보수적 사고를 가질 수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미스터 보수’로 불리기도 했던 공화당 전 의원 배리 골드워터는 외교나 군사, 경제 정책과 관련해서는 뚜렷하게 보수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었지만 종교, 군대 내 동성애자 이슈에 대해서는 굉장히 진보적 세계관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명사수가 되기 위해 이성애자일 필요는 없다”라는 말도 그가 한 말로 유명하죠.

이어 레이코프는 이들을 설득하기 위해선 그냥 “우리의 세계관에 근거한 프레임을 사용하여 말을 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강한 프레임’이 중요한 이유는 “많은 중도주의자들은 결코 온건하게 타협하지 않으며, 자신들의 보수적 사고와 진보적 사고 둘 다 열정적으로 옹호”하기 때문입니다. 이때 그들의 단단한 프레임에 균열을 내기 위해서는 ‘중도층에 맞춘 애매하고 절충적인’ 이야기, 즉 이미 기존에도 꾸준히 반복되어왔던 프레임 안에서의 이야기는 별 도움이 안 됩니다.

이어 레이코프는 ‘극좌-중도-극우’라는 스펙트럼 띠이미지에 사로잡혀선 안 된다고 말합니다. 통상 정치성향 테스트나 여론조사를 할 때 보수-중도-진보라는 스펙트럼 안에 어떤 의견을 위치시키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는 이 같은 스펙트럼의 비유가 그냥 ‘보편 권리’를 정당하게 요구하는 일을 순식간에 ‘극단적으로 치우친 문제’로 만들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강조합니다.

생각해보면, 애초에 여성의 인권이나 노동자, 장애인, 어린이, 가난한 사람, 노예 등의 인권이 ‘절반’만 ‘적당히’ 지켜져야 한다는 것은 당연히 맞지 않는 말이지만, ‘스펙트럼’ 묘사를 떠올리다보면 어떤 ‘당연한 주장’은 극좌파의 주장이 되어버립니다.

또한 만약 그런 생각으로 과거의 사람들이 주장을 했다면 그 말은 세상을 바꿀 만한 설득력이 있었을까요? 물론 싸우는 과정에서 절반의 성과에 그쳐야 하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지만, 적어도 그러한 가치를 주장할 때는 전력을 다했을 것입니다. 버스에 백인들과 함께 앉을 ‘급진적인’ 권리를 주장한 로자 파크스나 근로기준법이라는 당시 ‘급진적인’ 주장을 한 전태일처럼요.

마지막으로 저는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나는 그간 ‘중도’를 핑계 대며 누군가의 인권 등 ‘당연히’ 지켜져야 하는 가치에 대해 적당히 ‘미지근한’ 태도를 고수해온 것은 아니었는지. 그리고 이와 관련된 가치를 남에게 전달하려는 글을 쓸 때 기존의 프레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이야기를 그대로 가져오고서 대강 안전하고 무난한 이야기만을 반복해온 것이 아닌지에 대해서요. 또한 ‘만약 누군가가 설득이 안 된다면, 그건 내가 너무 급진적이라서가 아니라 새로운 프레임을 사용하여 제대로 된 가치를 정확히 말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이어졌습니다.

맺음말

오늘 레터는 ‘명절 대화’라는 비교적 가벼운 소재를 가지고 시작했습니다만, 조금은 무거운 이야기로 끝을 맺게 된 것 같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있는데도 보이지 않고 말할 수 없는 아픔들이 아주 많을 것입니다. 또한 현실을 왜곡하고 우리가 문제를 제대로 볼 수 없도록 가리는 문제적인 프레임들도 많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서로 대화하지 못하는 것은, 이런 단단한 프레임을 마주할 용기가 부족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친절한 태도라든지 예의의 문제라기보다는요.



이 글은 인문교양 뉴스레터 <인스피아>에 실린 내용을 수정한 것입니다. 더 많은 글을 보고 싶으시다면 왼쪽 QR코드를 촬영하거나, 포털에 ‘인스피아’를 검색해서 구독해주세요.

김지원 기자 deepdeep@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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