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깎이 시인’ 김한규 “시는 스스로를 항상 지켜보는 내 삶의 감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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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또 다른 나인 동시에 내 삶의 감시자 같습니다."
시 '완보동물' 등으로 지난해 4월 박상륭상을 수상한 김한규(64·사진) 시인은 '당신에게 시란 무엇이냐'는 기자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김 시인은 시가 "오래전부터 품고 있었던, 그러나 쉽게 허락되지 않았던 영역에 대한 동경이자 목표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당시 자신의 존재가 아무것도 아닌 무위(無爲)이자 지난 삶 또한 갈증과 공허로 가득찬 허상이라고 여겼는데, 이 시상(詩想)이 그가 시인으로 거듭나게 한 원동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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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학·학생운동·수감생활·공장 노동자…
젊은 시절 굴곡진 인생사는 ‘한 편의 시’
50대 들어 인생 새 경로 ‘시인의 길’ 설정
“시는 쉽게 허락되지 않았던 동경” 회상
2023년 뜻밖 수상 소식에 “죽을 때까지 쓸 것”
“시의 정치성 일궈낸 시인으로 기억되고파”

김한규 시인은 늦깎이 시인이다. 막노동과 공장 등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가 본격적으로 시를 쓴 게 51세였던 2011년이다. 습작 시절 끄적였던 자신의 시에 대한 남들 평가가 궁금해 2017년 지역언론사 신춘문예에 응모한 시 ‘공복’이 당선되면서 문단에 나왔다.
시인 등단 후 쓴 시를 중심으로 2021년 첫 시집 ‘일어날 일은 일어났다’를 출간하게 됐다. 그의 시를 보면 실명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있는데, 자본주의적 욕망을 철저히 거부하며 살다가 30대 초반에 요절한 두 살 많은 선배로, 그의 페르소나(persona)라고 한다. 문단 선배인 성윤석 시인은 시를 통해 삶에 대한 성찰과 물욕으로 뒤틀린 자본주의 사회를 나직하지만 통렬하게 비판하는 그를 일컬어 “경남 문학계의 괴물”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시인으로 한 단계 성장하고픈 욕심에 박상륭상에 응모했는데, 수상 연락을 받고는 믿기지 않아 경황도 없었다고 했다. 박상륭상 수상 상금으로 소주 한 잔을 걸치던 그는 “그렇게 원하던 시를 죽을 때까지 쓰고 싶다”고 말했다.
늦깎이면서 시를 죽을 때까지 쓰겠다는 이유는 뭘까. 그의 굴곡진 인생사는 한 편의 시와 같다. 경남 하동에서 태어난 그는 유년시절을 그곳에서 보냈다. 상고를 졸업해 직장생활을 하던 중 군 제대 후 24세에 대학교를 입학했다. 글을 쓰고 싶어 문예창작과를 가려고 했지만 당시 상황에는 미술교육과에 진학할 수밖에 없었다. 그림을 그려본 적도 없었던 데다 학과 실기과정을 따라가기엔 힘이 부쳐 대학 생활을 적응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렇게 현실을 도피하듯 선택한 차선책이 대학 학보사였는데, 학보사 기자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학생운동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그는 학생운동에서 두각을 보였는데, 이른바 386세대의 선봉으로 핵심 역할도 맡았다고 했다. 집안 살림을 책임져야 할 그가 대학 졸업 후 가야 할 길은 미술교사였지만 학생운동을 하면서 늘어난 건 미술 실력이 아닌 도피 실력이었다고 술회했다.
김 시인은 40대였던 1989년 공안당국에 붙잡혀 수감생활을 했다. 그에게 수감생활인 인생의 큰 터닝포인트였다. 김 시인은 ‘인생 리셋’을 위해 40대 후반에 모든 활동을 완벽하게, 깔끔하게 정리했다. 50대에 들어서야 인생의 새로운 경로를 설정했는데, 그게 바로 시인의 길이었다.
김 시인은 시가 “오래전부터 품고 있었던, 그러나 쉽게 허락되지 않았던 영역에 대한 동경이자 목표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때 그의 나이 53세였다고 한다. 다시 시를 쓰기까지 그는 자신을 부정할 만큼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졌음을 실감했다. 당시 자신의 존재가 아무것도 아닌 무위(無爲)이자 지난 삶 또한 갈증과 공허로 가득찬 허상이라고 여겼는데, 이 시상(詩想)이 그가 시인으로 거듭나게 한 원동력이 됐다.
김 시인은 “제가 시에 쓰고자 하는 관심사는 주변과 소외, 계급인데, 형식에 대한 고민이 가장 크다. 이른바 ‘시의 정치성’을 새로운 형식으로 일궈낸 시인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창원=글·사진 강승우 기자 ksw@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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