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읽기]소극적 복지의 핑곗거리 된 젊은 세대
우연히 TV에서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 녹색정의당이 참여한 총선 정책토론회를 보았다. 극단적인 저출생이 삶의 위기를 그대로 투영하고 있느니만큼, 세 정당은 고용안정, 노동시간 단축, 공공주택을 통한 주거안정, 소득보장, 육아휴직 및 아이돌봄 지원 확대 등을 공약으로 정리할 예정이라 하였다. 총선을 계기로 노동과 복지의 과감한 변화, 우리 사회의 근본적 전환에 대한 여야 간 합의가 가능해 보였다. 그렇다면 여태 왜 안 했을까?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출범하자마자 법인세부터 깎아주고 각종 감세정책으로 정부재정 결손을 야기한 윤석열 정부의 조세정책과 복지 확대가 어떻게 함께 갈 수 있을까 질문이 이어졌다. 여당의 답은 증세 없는 복지였다. 증세 없는 복지라… 근거는? 미래세대가 증세를 반대한다는 것이었다. 여당은 현재 20대인 소위 Z세대(의미 없이 이어지는 알파벳!) 대부분이 증세를 반대한다는 조사 결과를 들고나왔다. 복지를 효율화해야 한다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복지 확대는 최소화하겠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여당이 증세 불가의 이유로 미래세대를, 특히 20대를 들고나왔다는 것이다. 선거에서는 유독 세대론이 기승을 부리곤 하지만 집권당이 처음부터 20대를 콕 집어 증세 반대론에 동원하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책임’ 있는 집권세력은 사회통합에 노력할 의무가 있고, 잊었을지 모르겠지만 대통령도 취임사에서는 사회통합을 말했기 때문이다. 과연 사람들은 ‘분할하여 지배하라(divide and rule)’는 뻔한 전략에 말려들까? 미래세대라 불리는 이들은 증세 불가와 복지 확대 최소화 주장에 호응할까?
미래세대의 복지 부담 때문에 과감한 복지 확대가 어렵다는 말에 의문이 생긴다. 첫째, 세대론에선 미래 복지재정에 관한 자본의 역할은 쏙 빠져 있다. 복지재정을 모두 다 개인이 부담하는 사회를 가정하는 것이 말이 될까? 둘째, 세대론은 젊은 세대는 모두 계층적으로 동일하며, 20대의 경제적 상태가 앞으로 그대로일 것처럼 말한다. 과연 그럴까? 셋째, 도대체 미래세대의 ‘미래’는 언제이며, 그걸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미래세대는 정확히 누구인가? 10년 후, 30년 후 사회를 유지하는 것은 특정세대만의 일이 아니라 모든 세대가 협력할 일이며, 재정적으로도 그렇다. 게다가 세대는 순환적으로 존재한다. 마지막 질문이 가장 중요하다. 많은 젊은이들은 부모의 계층이 대물림되는 사회에서 각자도생을 요구받으며 지쳐 있다. 이 경우 공공복지의 획기적 확대와 장시간 노동 및 불안정 고용을 대폭 줄이는 사회 전환을 미루는 게 젊은 세대에게 좋은가?
젊은 세대의 특징으로 많은 이들이 합리성을 꼽는다. 합리성은 이기심과 다르다. 현대 자본주의에서 개인이 온전히 삶을 책임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회연대와 공적 보장이라는 안전판이 충분할 때 자유의 영역은 넓어질 수 있다. 공공복지 영역은 좁고, 사람은 갈아넣되 최소한의 안정성도 보장하지 못하는 성장방식 또한 수명을 다하고 있다. 그렇다면 돌봄, 실업, 산재, 노후보장에 관해 사회연대를 통한 보장의 영역을 대폭 늘리는 것이 젊은이들에게도 합리적 선택이 될 수 있다. 고용불안정과 장시간 노동이 만성화된 체제 유지, 소극적인 복지 확대, 축소지향적 연금개혁은 미래를 구할 수 없다. 국민연금 축소로 기나긴 노후 대부분을 각자 시장을 통해 책임지는 연금체계를 구축하는 것은 결국 재앙이다.
20대가 우리 공동체의 획기적인 전환을 지연시키는 핑곗거리가 되는 것을 과연 환영할까 싶다. 드라마나 정치나 뻔한 이야기가 꾸역꾸역 나오면 금세 질린다. 선거에서 세대분할론이 그렇다. 사실 나도 그날 토론회의 저 대목에서 채널을 돌렸다. 이 식상한 이야기를 어떻게든 뒤집어야 삶도 정치도 재미있어질 것 같다.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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