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문화재단, 앞으로도 사랑방 되길" 김현광 재단 대표이사 [인터뷰]

정자연 기자 2024. 2. 26.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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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오전 수원문화재단에서 퇴임식을 여는 김현광 재단 대표이사. 그는 “전공인 문화예술에 대한 애정만큼 지난 40여 년 간의 만남과 추억을 소중히 하겠다”

 

“수원문화재단 대표이사로 취임했을 때 무거운 책임감도 느꼈지만, 매우 기뻤던 기억이 납니다. 2022년 영광스러우면서도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며 취임인사를 했는데 어느덧 2024년을 맞이했네요. 고마움을 깊이 간직하고, 지난 40여 년간의 만남과 추억을 소중히 하겠습니다.”

자신을 맡은 일을 진심으로 대하고 그 열정을 끝까지 이끌어 가기란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김현광 수원문화재단 대표는 본업을 가장 충실히 수행한 사람 중 하나다.

그가 대표로 취임한 지 1년6개월 동안 문화예술 현장에서 그의 목격담은 끊이지 않았다. 지역에서 벗어나 인근 도시와 협업하고 현장 예술가들의 목소리를 반영한 ‘111씨티 아트마켓’, 지역 청년작가들의 교류전인 ‘융 融’, 아트마켓 ‘평화수산’ 등 경기남부지역의 문화콘텐츠 유통과 교류의 자리, 선순환 구조의 사업 구축은 김 대표의 문화예술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과 현장 방문을 바탕으로 나왔다.

김현광 수원문화재단 대표이사가 27일 오전 11시 재단에서 40년의 공직 생활을 마무리 하는 퇴임식을 갖는다.

퇴임식을 일주일 가량 앞두고 만난 그는 “되돌아 본 지난 40여 년은 아쉬움보다 감사한 마음이 크다”며 특유의 넉넉한 웃음을 지었다.

화성시 향남에서 태어나 오산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그는 수원에 있는 도서관을 다니던 중 우연히 공무원 시험 벽보를 봤다. 결과는 합격. 우연히 시작한 수원시 공무원 생활이었지만 진심을 다했다. 아내를 만나 결혼하고 딸, 아들을 낳아 맞벌이 환경이 녹지 않았던 당시 이웃집, 어린이집에 맡겨가며 정신없이 키웠다.

배움의 열정도 놓지 않았다. 방송통신대학교에 진학해 배움을 이어나가다 경기대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한 그는 “처음으로 직업의 세계가 아닌 새로운 세계를 알게됐다”고. 동경하던 동화작가들을 사제지간으로 만나고 뒤늦게 문학에 빠져 문학의 길을 걸었다. 동화책 ‘올챙이들의 하수구 탈출 작전’을 발간한 동화작가이자 대학원에서 문화예술학을 전공한 그가 수원시 최초로 공공기관 인사청문회를 거쳐 수원문화재단의 대표이사로 공직생활을 마무리하게 된 것은 필연이었을지 모른다.

변화와 혁신을 약속하며 재단 대표로 취임한 그는 지역 예술인과는 정기적인 간담회나 사업 참여 기회를 넓혀 재단의 문턱을 낮추는 데 노력했다.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경기지회장으로도 활동하며 28개 경기도 문화예술회관 대표자와 실무진 간담회 및 워크숍, 도의회 등과 네트워크 확대와 협력체계도 강화해 재단의 외연을 넓히는 데도 앞장섰다.

문화예술에 대한 애정만큼 재단 대표로 공직생활을 마감하며 아쉬운 점도 있다. 어려워진 지자체의 살림살이와 그로 인해 영향을 받는 지역의 문화예술이다.

그는 “수원이 경기도에서 가장 역사적으로 전통이 있고 인구도 많은 중심도시 인 데다 규모도 크지만, 이러한 규모완 달리 내부에선 재정 여건과 예산이 녹록지 않아 재단이 활발한 활동을 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이어 “수원시의 문화예술 및 관광에 대한 비전이 무엇인지 더 고민하고 찾아야 할 때인 만큼 재단 구성원들의 전문성과 경험을 활용해 수원의 문화예술과 관광이 더 앞으로 나아가고, 또 재단이 지역민들과 문화예술인들의 사랑방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동화를 전공한 그는 퇴임 후 마음껏 동화책을 펴낼 꿈을 꾸고 있다. 지역과 관련된 문화 예술 콘텐츠를 만드는 구상도 전했다. “판타지 동화와 미술, 박물관과 관련된 동화 또 수원과 관련된 지역 동화책을 내고 싶어요. 또 자녀와 부모가 함께 볼 수 있는 뮤지컬 시나리오도 만들면 좋겠네요. 하하.”

어려움도 많았지만 그는 지난 40년을 “행복하고 보람차게 했다”고 정리했다. 그는 “무사히 공직생활을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은 함께해준 가족과 선·후배 등 동료들 덕분이었다”면서 “이제는 평범한 시민으로 어디서든 수원시를 응원하겠다. 봉사활동이든 그 무엇이든, 내 역할이 필요한 곳이 있다면 언제든 달려가겠다”라고 약속했다.

정자연 기자 jjy84@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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