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사의 죽음을 기억해달라”···택시노동자 방영환씨 142일 만의 장례[그 죽음을 기억하라]

오동욱 기자 2024. 2. 26.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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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영환열사 대책위가 26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영원한 택시 노동자 방영환 열사 노동시민사회장 추모문화제’를 열고 있다. 오동욱 기자
생활고에 시달리던 세 모녀, 성 정체성과 상관없이 나라를 지키겠다던 청년, 부당한 처우에 맞서 본인을 내던진 택시 기사는 10년 전, 3년 전, 142일 전 세상을 떠났다. 각기 다른 이유로 세상을 등진 고인을 애도하는 목소리가 같은 날, 서울 곳곳에서 흘러나왔다.
원인은 달랐지만 그들의 죽음은 닮아있었다. 고통의 무게를 견디기 어려워 스스로 결정한 죽음이, 실은 공동체의 외면에 내몰린 것이었다.
‘그 죽음을 기억하라’ 26일 거리로 나선 시민들은 그 죽음을 잊지 말자고, 그들이 만나지 못한 내일을 남은 이들이 만들어 가기 위해 그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고 함께 외쳤다.

“50시간 60시간 70시간 80시간 뺑이쳤지/ 때로는 형님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하자기에/ 아침부터 새벽까지 몸 버리고 속 버리고 일했는데/ 이제 와서 필요 없다 이제 와서 나가라니 웬 말이냐/ 이 씨 네가 시키는 대로 내가 다 할 줄 아나.”

택시 완전 월급제 등을 요구하며 분신해 숨진 택시 노동자 고 방영환씨(55)가 생전 좋아했다는 노래가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울려 퍼졌다. 방영환 열사 추모제에 참석한 민주노총 조합원 등 200여명이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를 따라 불렀다. ‘완전 월급제 쟁취’, ‘노조파괴 분쇄’ 등 구호가 적힌 조끼를 입은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컸다.

택시 완전 월급제 등을 요구하며 분신해 숨진 방씨의 노동시민사회장이 지난 25일부터 사흘간 엄수됐다. 지난해 10월6일 방씨가 숨진 지 142일만이다. 방영환 열사 대책위원회는 26일 오후 7시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 3층 입구에서 추모제를 진행했다. 이날 추모제에 참석한 이들은 생전 방씨를 추억하며 택시 완전월급제 등 생전 방씨의 요구를 계승할 것을 다짐했다.

이날 장례식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방씨를 ‘나보다 타인을 먼저 챙겼던 열정 넘치는 사람’으로 기억했다. 2020년부터 방씨를 알고 지냈다던 정원섭 방영환 열사 대책위 상황실장은 방씨에 대해 “당시 그는 해고 상태였는데도 아시아나KO, 이스타항공, 코레일네트웍스 등 해고 사업장을 찾아와 연대했다”라며 “늘 밝고 씩씩한 사람이었다”라고 기억했다.

이백윤 노동당 대표는 “작지만 다부지고 늘 남을 챙기는 사람이었다”라며 “본인도 힘든 환경이었는데 사측과 소송을 벌여 대법원에서 승소하고 받은 법 이행금을 투쟁하는 노동자를 위해 나눠주는 등 늘 남을 먼저 생각했다”라고 했다.

대한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소속 스님들이 26일 택시노동자 방영환씨의 영정 앞에서 극락왕생을 비는 기도회를 열고있다. 오동욱 기자

방씨는 지난해 9월26일 해성운수 앞에서 사측의 부당해고와 임금 체납에 항의하며 분신했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11일 만인 지난 10월6일 사망했다. 유족과 택시노동자들은 사측에 대한 처벌과 임금체불액 회수가 달성돼야 한다며 장례를 미뤄왔다.

딸 희원씨는 142일 만의 장례가 “시원하지만 찝찝하다”라고 했다. 그는 “구속기소된 해성운수 대표의 선고기일이 2월15일로 잡혀 있었는데, 이번에 판사가 바뀌어 선고뿐 아니라 심리 자체가 미뤄졌다”라며 “사실상 이뤄진 게 없어 찝찝하지만 아버지를 냉동실에 7개월 넘게 둘 수 없어 장례를 진행했다”라고 했다.

호상을 맡은 김종현 택시지부장은 시민들에게 “방영환 열사의 죽음을 기억해달라”고 했다. 그는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택시노동자 53명이 사납금제 철폐를 외치다 숨졌다”라며 “지금 택시업체는 법으로 정해진 것을 지키려 하지도 않는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서울만 시행하는 사납금제 폐지가 8월24일부터 전국에서 시행하는데, 시민들의 관심이 없으면 같은 죽음이 또 터질 것”이라고 했다.

회사는 방씨가 2019년 7월 노조에 가입하고 최저임금을 보장하지 않는 근로계약서 작성을 거부하자 2020년 2월 해고했다. 방씨는 소송으로 맞섰다. 대법원에서 부당해고를 인정받아 2022년 11월 복직했다. 회사는 다시 소정근로시간을 하루 3.5시간으로 정한 불이익계약을 요구했고, 방씨가 이를 거부하자 주 40시간 이상 택시를 몰아도 월 100만원가량만 지급했다. 폐차 직전 차량이나 승객이 구토한 차량을 배차하는 등 괴롭힘도 있었다. 그 과정에서 방씨는 227일간 해성운수 앞에서 사측의 부당해고와 임금 체납에 항의하며 1인 시위를 벌이다 분신했다.

방씨가 숨진 후 고용노동부는 해성운수의 최저임금법·근로기준법 위반 등 5개 위반사항을 적발해 시정명령을 내렸다. 서울시도 해성운수의 모기업인 동훈그룹의 택시회사 21곳에 대해 완전월급제 미준수를 이유로 과태료 처분을 내렸다. 해성운수와 동훈그룹은 아직도 방씨의 죽음에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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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402261624001

오동욱 기자 5d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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