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소음을 미술관 영상으로 바꾸는 '예술 타워'
42개 센서 달린 인공두뇌
기온·습도·풍량 등 수집
전시장 사운드로 변주해
AI·첨단 디지털 기술 접목
40여점 전시 亞 최대 규모
12년간 리움미술관 야외를 지킨 애니시 커푸어의 '큰 나무와 눈'이 사라진 자리에 놀이공원 자이로드롭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타워가 우뚝 섰다. '막(膜)'이라 이름 붙은 타워는 기온, 습도, 풍량, 소음, 대기오염 등을 수집하는 42개의 센서가 달린 인공두뇌다. 여기서 수집된 정보는 미술관 전체에서 사운드와 영상으로 변주돼 울려 퍼지며, 미술관을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만든다. 동시에 내부의 영상 작업에서 흘러나오는 언어 '∂A(델타 에이)'와 상호 작용하며 전시의 모든 요소를 조율한다.
시간과 소리를 질료로 미술 작품을 만드는 연금술사가 한국에 왔다. 리움미술관은 전 세계 미술계가 주목하는 프랑스 작가 필립 파레노(60·사진)의 개인전 '보이스(VOICES)'를 28일부터 7월 7일까지 개최한다. 전시는 1990년대 초기작부터 신작까지 40여 점을 펼쳐 보인다.
파레노는 시간과 기억, 인식과 경험, 관객과 작품의 관계를 고민해온 작가다. 리움미술관이 처음으로 상설전 공간을 제외한 전관을 할애한 이번 전시는 하나의 거대한 '연극 무대'가 돼 경험의 장으로 전시를 제안한다. 영상, 조각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며 데이터 연동, 인공지능, 디지털 멀티플렉스(DMX) 기술을 망라한 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설치 작품이며, 센서가 반짝이고 풍선이 떠다니는 거대한 자동 기계처럼 보였다.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은 "아시아 최초 최대 규모 미술관 전시이자 그의 예술세계를 망라하는 서베이 전시라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M2의 창문은 오렌지색 필름으로 덮였다. 지하1층 입구부터 짙은 오렌지빛 햇살이 스며드는 곳곳에 진흙으로 만든 '못생긴' 눈사람들이 도열했다. 녹아내리는 탓에 매일 다시 제작되는 이 눈사람은 파레노의 대표적인 '시간 예술'인 '리얼리티 파크의 눈사람'(1995~2023)이다. 천장을 떠다니는 물고기 풍선은 '내 방은 또 다른 어항'(2022)이란 설치 작업이다. 오렌지색 눈이 내리는 피아노에서는 자동 기계가 음악을 연주한다. 석양 빛으로 물든 공간은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가 중첩된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26일 개막을 앞두고 만난 작가는 "안정적으로 환경을 유지하는 미술관에 물고기 풍선과 눈사람은 외부 환경에 반응하는 불청객이자 공기와 기압에 반응하는 일종의 센서다. 기계장치가 많은 전시 속에서 매우 아날로그적인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1층에는 프랑스 그래픽 듀오 M/M(Paris), 동료 작가 피에르 위그 등과 협업한 10여 점을 설치했다. 유년기를 배경으로 한 희망과 디스토피아에 관한 메시지를 담은 사진과 영상 '엔딩 크레딧'(1999), 조명과 가구처럼 보이는 '루미나리에' 등이 설치됐다. 영상 '세상 밖 어디든'(2000)의 음성은 배우 배두나의 목소리를 AI가 학습한 목소리로, 이름도 역할도 없는 일본 만화 캐릭터 '안리'의 입을 통해 흘러나온다. 작가는 "상상의 캐릭터에 인간 목소리를 부여하고 싶어 배두나의 음성을 학습시켰다. 살아 있는 감각을 만들려면 여러 요소가 필요하다. 10여 년 전 마릴린 먼로의 목소리를 만들 때는 사람 목소리처럼 들리지 않았는데 많은 발전이 있었다. 하지만 데이터와 AI는 도구 박스 속 하나의 도구일 뿐이며 지금으로선 도구로만 사용하고 싶다"고 설명했다. 블랙박스 전시장은 입구부터 영화관임을 알리는 조명이 반짝인다. 여배우를 환생시킨 영상 '마릴린'(2012)은 기계장치로 전설의 여배우의 시선과 음성 등을 재현했다. 철거된 고야의 집을 보여주는 '귀머거리의 집'(2021)과 인공정원을 조성하는 풍경을 담아낸 'C.H.Z.(지속적 생명체 거주 가능 영역)'(2011) 등 3편의 영화가 반복 상영된다.
그라운드갤러리로 내려가면 거대한 움직이는 극장을 만날 수 있다. 극장 차양을 닮았지만 기능은 부재한 '차양' 연작(2016~2023)이 설치됐고, 건물 벽면이 떨어져 나온 듯한 '움직이는 벽'(2024)이 관객을 향해 돌진한다. 천장에는 헬륨 가스로 띄운 말풍선 모양의 풍선 수백 개가 둥둥 떠 있다. 티노 세갈의 신작 퍼포먼스도 에스컬레이터에서 매일 반복적으로 펼쳐져 관객과 교감한다. 환경에 따라 변화하는 방대한 작업을 다 보기엔 넉넉한 시간과 열린 해석을 위한 상상력도 필요할 것 같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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