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 뒤에 누가 있다? ‘사람의 피를 바른 만두’ 파는 자들

한겨레21 입력 2024. 2. 26.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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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만보]‘외교·정치적 사건’으로 비화한 홍콩 경기 ‘메시 노쇼’ 파문… ‘이강인 하극상’은 다른가
2024년 2월4일 홍콩 대표팀과 인터 마이애미 축구팀의 경기에서 리오넬 메시가 경기에 뛰지 않자 분노한 팬들이 환불을 요구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2004년 8월,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제28회 여름올림픽은 중국인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한여름 밤의 꿈’이었다. 남자육상 110m 허들 경기에서 중국 선수 류샹이 아시아 선수로서는 최초로 금메달을 땄기 때문이다. 그가 이날 세운 12.91초 기록은 올림픽 신기록이기도 했다.

금메달을 딴 뒤 중국 전역에 배포된 조간신문 머리기사 제목은 대부분 이랬다. ‘중국인이 날아올랐다!’ 중국 언론은 류샹의 금메달이 중국인의 승리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황인종의 승리’라고도 했다. 류샹이 두 다리를 번쩍 들어 110m 허들을 뛰어넘는 장면은 중국이 ‘세계를 넘어’ 비상하는 장면으로 상징돼, 중국 내 온갖 거리 광고판과 정부 선전물에 마르고 닳도록 쓰였다.

당시 21살이던 류샹은 일거에 ‘국가와 인민의 영웅’으로 날아올랐다. 2006년 7월,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세계 육상 남자 110m 허들 경기에서는 12.88초로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따, 다시 한번 중국인과 아시아인의 ‘자랑’이 됐다. ‘황색 탄환’이라는 별칭도 생겼다. 그 뒤 그는 국내외 유명 스포츠 상품과 기업의 광고모델이 되어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였고, 2008년 3월에는 체육계를 대표하는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위원으로 선출돼 돈과 명예를 한꺼번에 움켜쥐었다.

류샹, 다시 한번 멋지게 뛰어올라라

2008년 8월, 제29회 여름올림픽은 중국 베이징에서 열렸다. 오랫동안 ‘죽의 장막’에 가려진 가난하고 폐쇄적인 국가라는 대외 이미지를 벗고 부국으로 비상하는 ‘신중국’의 면모를 전세계에 알리는 절호의 기회였다.

중국인들의 절대적인 관심은 류샹에게 쏠렸다. 류샹이 다시 한번 멋지게 뛰어올라 세계인 앞에서 ‘날아오르는’ 중국의 모습을 보여주길 원했다. 류샹이 뛰어넘을 110m 허들은 중국이 세계 최고의 부국과 강국으로 향해 간다는 ‘자존심과 체면’의 높이기도 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류샹은 날아오르지 못했다. 허들을 뛰어넘기도 전에, 출발 바로 직전 발목 부상을 이유로 경기를 자진 포기했다. 텔레비전 생중계를 지켜보던 중국인들은 순간 정지화면처럼 굳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2012년, 영국 런던에서 여름올림픽이 열렸다. 그가 4년 전 베이징에서의 불운을 딛고 이번에는 아주 멋지게 뛰어올라 세계인에게 중국과 중국인의 자존심을 세워주길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이번에도 류샹은 날아오르지 못했다. 발목에 다시 문제가 생겨 출발 직후 첫 허들도 넘지 못한 채 넘어지고 말았다. 한때 올림픽 금메달을 따고 세계 신기록도 세운 ‘황색 탄환’ 류샹이 다리를 절뚝거리며 꼴찌로 들어오는 모습은 중국인에게 악몽 그 자체였다.

런던올림픽 이후 류샹은 더는 회복할 수 없을 정도의 비난과 수모를 당했다. 말 그대로 하루아침에 ‘공공의 적’이 됐다. 심지어 남성 발기부전 치료제를 광고하는 약품 전단에서 류샹이 발목을 붙들고 허들 앞에서 쓰러지는 사진을 넣어 ‘막 일어나서 뛰자마자 쓰러지는 남성의 말할 수 없는 고통’이라며 조롱하는 일도 생겼다. 정협 위원 신분을 유지하고 있던 그에게 중국인들은 이제 ‘간장위원’(醬油委員·의견 피력이나 법안 발의 등에 아무런 관심이 없고 오직 자기 실리만 챙긴다는 뜻의 인터넷 유행어)이라며 대놓고 비웃었다. 류샹이 한때 ‘황인종의 자랑’이었음을 기억하는 이는 아무도 없는 듯했다.

기록에 따르면, 류샹은 총 48번의 세계대회에 참가해 금메달 36개, 은메달 6개, 동메달 3개를 획득했다. 그는 불운했던 발목 부상으로 단 두 번의 올림픽에서만 ‘자랑스러운’ 기록을 세우지 못했다. 중국 관계 당국이 당시 류샹의 발목 부상을 알았음에도 중국인들의 기대와 체면을 저버릴 수 없어 억지로 대회에 참가하게 했다는 소문도 있다. 어쨌거나 십대 시절부터 오직 ‘국가와 민족의 영광을 위해’ 고된 선수 인생을 살아온 류샹은 2012년 런던올림픽 이후 중국인들의 시야에서 서서히 사라졌다.

팬데믹 부흥책으로 부른 축구팀

2024년 2월2일 오후, 홍콩 첵랍콕국제공항에 분홍색 단체복 상의를 입은 한 무리의 축구선수들이 도착했다. 주변에는 수많은 기자와 팬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세계적인 축구 스타 리오넬 메시가 소속된 미국 인터 마이애미 구단 선수들이 홍콩 대표팀과의 친선경기를 위해 홍콩을 찾은 것이다. 친선경기는 2월4일로 예정돼 있었다. 메시가 참가하는 이날 경기를 위해 홍콩 정부는 한 달 전부터 온 거리에서 대대적인 홍보활동을 전개했다.

홍콩 정부는 2023년 초부터 팬데믹과 국가보안법 파동으로 침체된 분위기와 경제를 살리기 위해 여러 ‘부흥책’을 시도해오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2024년에만 150개 이상의 국제적 문화예술 행사와 이벤트를 열어 국내외 여행객을 불러들이고 홍콩의 국제적 이미지를 향상시킬 계획이란다. 인터 마이애미 축구팀과의 친선경기도 그 부흥책의 하나였다.

메시는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축구선수이자 세계인이 사랑하는 선수이기에, 그가 참가하는 친선경기를 유치하면 국내외적으로 큰 경제효과를 누릴 것으로 판단했다. 한마디로 홍콩 정부는 메시에게 사활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월2일 메시가 도착하기 약 한 달 전부터 홍콩은 온통 메시가 장악한 도시였다.

메시가 홍콩에 온다는 소식이 확정되자마자 중국과 대만, 싱가포르 등에서도 팬들이 메시를 보기 위해 비행기표를 예매했고 경기장 인근 주요 호텔들은 한 달 전부터 예약이 꽉 차서 방을 구하기 힘들 정도였다. 한 달 전에 개시된 예매표도 사이트가 열리자마자 1시간도 채 안 돼 매진됐고, 암표상에게 수십 배의 웃돈을 주고서라도 표를 구하려는 사람이 많았다. 홍콩 정부는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2월2일부터 4일까지 메시가 머무는 사흘 동안, 홍콩은 올림픽 개최 도시 못지않은 최고의 축제도시가 되리라 기대했다. 2월4일, 홍콩 행정장관을 필두로 각계 거물급 인사가 속속 관중석에 나타났다. 경기장에는 약 4만 명의 관중이 꽉 들어찼다. 일단 흥행 대성공이었다.

그러나 정작 메시는 끝내 경기에 출전하지 않았다. 그는 경기 내내 운동화도 제대로 신지 않은 채 따분한 표정으로 벤치에 앉아 있었다. 경기가 종료된 뒤, 존 리 행정장관이 운동장으로 내려와 참가 선수들과 악수하며 인사를 나눌 때도 메시는 슬쩍 옆으로 빠져 그와 악수조차 하지 않고 운동장을 빠져나갔다. 이 장면이 고스란히 보도되고 중국 내외 인터넷에도 뿌려지자, 세계 곳곳에서 홍콩 정부가 메시에게 ‘개망신’을 당했다고 수군덕거렸다.

이것이 2월4일 홍콩에서 일어난 ‘메시 노쇼’ 파문의 전개 과정이다. 문제가 커지자, 메시는 사타구니 부근의 근육 부상으로 경기에 출전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중국 육상선수 류샹이 2012년 8월7일 런던올림픽 110m 허들 경기에서 허들에 걸려 넘어져 예선 탈락한 다음 허탈해하며 허들에 입맞춤하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메시 타도’ 함성이 울려 퍼지다

‘메시 노쇼’ 파문에 가장 발 빠르게 분노한 것은 중국 정부와 대륙 팬들이다. 체면을 구긴 홍콩 정부가 허둥대며 변명하는 사이 <환구시보> 등 중국 내 관방매체와 언론들이 일제히 메시와 인터 마이애미 구단을 규탄하는 보도를 쏟아냈다. 중국의 각종 소셜미디어에서도 대대적인 ‘메시 타도’ 함성이 울려퍼졌다.

2월7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친선경기에서 메시가 30분 이상 출전한 뒤 분위기는 더 험악해졌다. 중국 정부와 관방언론은 노골적으로 ‘정치적 의도’가 있는 행위라고 판단했다. 이와 관련해 <환구시보>는 2월8일치 사설에서 ‘메시 노쇼’ 사건을 ‘외부 세력이 불순한 정치적 동기를 가지고 고의로 저지른 일이라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외부 세력이 개입한 불순한 정치적 동기’라는 관방매체의 ‘판결문’이 나오자, 중국 내 모든 언론과 소셜미디어는 본격적으로 하루에도 수천 개의 기사를 쏟아내며 메시와 그를 조종하는 ‘외부 세력’을 향해 정치적 공격을 가했다.

여기에 더해 2월9일 이후 항저우와 베이징시 체육국은 원래 3월18~26일 사이에 항저우와 베이징에서 열기로 계획된, 메시가 주장으로 있는 아르헨티나 국가팀과의 친선경기를 ‘우리가 모두 잘 아는 이유로’ 전격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메시 노쇼’ 파문은 중국 정부와 언론까지 가담하는 정치·외교적 사건으로까지 확산했다. 중국 내 모든 온·오프라인 광고에서 메시의 얼굴이 사라졌고, 중국중앙텔레비전의 축구 방송에서도 메시가 등장하는 경기는 죄다 삭제됐다. ‘중국인들의 체면과 자존심에 상처를 입힌’ 메시는, 비록 맥락은 다르지만 20여 년 전 류샹처럼 하루아침에 중국인들에게 ‘공공의 적’이 됐다.

‘왜 하필’ 홍콩 친선경기가 잡힌 날 메시의 다리 근육에 문제가 생겼는지는 알 길이 없다. 중국 관방매체의 주장대로 홍콩과 홍콩 정부를 욕보이기 위해 ‘외부 세력이 불순한 정치적 동기를 가지고’ 메시 노쇼를 고의로 기획한 것인지도 알 길이 없다. 이번 사태에 무슨 말을 더 보태면 행여나 ‘외부 세력의 정치적 동기’로 비칠까 염려되기도 하고, 또 ‘지면 관계상’ 개인적 의견은 생략하기로 한다. 다만 2월17일 홍콩의 아르헨티나 축구팀 공식 팬클럽에서 발표한 성명 내용을 대신 전할까 한다. 이번 사건에서 거의 유일하게 이성적이고 ‘정신 똑바로 차린’ 사람들의 생각이라 판단되기 때문이다.

‘어그로’ 끌며 이익 챙기는 자들은 누구인가

“아르헨티나 축구팀 홍콩 팬클럽은 이번 사태에 대해 여러 팬이 메시와 주최 쪽에 느끼는 분노의 감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우리는 메시가 중국 팬을 기분 나쁘게 하기 위해 고의로 이런 일을 벌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그가 빡빡한 일정으로 피곤하고 지친 표정을 보인 것은 사실이지만, 홍콩에 머무는 동안 아픈 어린이들을 방문하는 등 자선활동을 하고 팬들을 대할 때는 항상 웃는 얼굴을 보였다. (…) 우리가 정작 비판해야 할 대상은 사람의 피를 바른 만두를 먹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단지 메시를 돈벌이의 수단으로 이용할 뿐이며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감정이나 분위기를 선동하는 데만 급급하다. 메시를 이용해 시선을 끌고 자신들의 목적과 이익에 활용하는 저질 광대 같은 가짜 팬들의 감정적 선동을 비난해야 한다. 홍콩은 앞으로도 메시를 환영할 것이며, 만일 메시가 다시 홍콩에 온다면 그것은 홍콩인들의 행운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통제할 방법은 없지만 모든 사람이 애초에 자신이 왜 메시와 아르헨티나 축구팀의 팬이 됐는지를 진지하게 생각해보기를 바랄 뿐이다.”

얼마 전 끝난 카타르 아시안컵 축구 4강전에서 이른바 ‘하극상 논란’으로 온 국민의 ‘공공의 적’이 된 이강인 사태에 대해서도 우리는 마찬가지로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사람의 피를 바른 만두’를 뒤에서 몰래 팔거나 먹고, 하루에도 수천 개의 관련 기사를 쏟아내 ‘어그로’를 끌며 이익을 챙기는 자들이 과연 누구인지 말이다.

베이징(중국)=박현숙 자유기고가

*베이징에 거주하는 필자가 중국의 숨은 또는 드러나지 않은 기억과 사고를 읽는 연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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