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묘’ 최민식 “배우 42년차? 아직 핏덩이 수준…아직 하고 싶은 게 많다”[인터뷰]
‘우리 땅 트라우마 치유’ 시각 신선
고독한 배우의 삶…몰입감 '매력적'
[헤럴드경제=이현정 기자]“‘파묘’가 단순히 귀신 공포 영화로 보일 수 있지만 전 자연에 대한 영화로 봤어요. 신이 인간사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영화적으로 뽑아낸 거죠. 감독의 그 태도가 너무 신선했어요.”
배우 최민식은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영화 ‘파묘’를 이같이 소개했다.
영화 ‘파묘’는 거액의 돈을 받고 수상한 묘를 이장한 풍수사와 장의사, 무속인들에게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담은 오컬트 미스터리물이다. 영화 ‘사바하’, ‘검은 사제들’ 등 독보적인 오컬트 장르를 구축한 장재현 감독의 신작이다. 최민식은 극중에서 베테랑 풍수사 상덕으로 분했다.
장 감독이 전작들에서 각종 종교와 무속신앙 등을 엮었다면 이번 작품에선 풍수지리와 무속신앙을 결합했다. 최민식은 무속신앙과 풍수지리의 결합이 처음부터 친근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제가 10살 무렵에 폐결핵으로 죽을 뻔한 적이 있어요. 그때 어머니께서 절 데리고 산 속의 절에 가서 기도하셨죠. 그런데 희한하게 나았어요. 우리가 살면서 이성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들이 있잖아요. 그런 걸 겪거나 봐서 그런지 영화 속에 묘사된 풍수지리나 무속신앙이 친근하게 다가왔죠.”
최민식이 이 영화를 선택한 배경엔 장 감독의 사고관이 크게 작용했다. 장 감독은 기독교 집사 신분임에도 무속신앙을 비롯해 종교 외적인 영역까지 아우르고 있다.
“우리 땅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싶다는 장 감독의 정서가 맘에 들었어요. 그게 이른바 ‘국뽕’으로 느껴지지 않았죠. 장 감독은 늘 신과 인간과의 관계를 다뤄요. 굉장히 편협된 사고에 갇힐 수 있고 이를 종교 외로 확장하면 자칫 위험할 수 있는데, 그런 영역 확장에 아주 열려있는 감독이에요.”
최민식이 풍수사로 변신한 것은 그의 42년 연기 인생 중 처음이다. 이마저도 40년 이상의 연륜을 자랑하는 베테랑 풍수사다. 최민식은 “몇 달 간 책을 읽는다고 한들 어떻게 40년 땅을 파 먹고 산 사람으로 변할 수 있겠느냐”며 혀를 내두르면서도 딱 한 가지에 중점을 줬다고 설명했다.
“상덕은 평생 자연을 관찰하며 터의 모양새, 질감, 형태 등을 연구한 사람이에요. 이 사람은 산에 올라가도 ‘야호’하듯이 산을 바라보진 않고 뭐든 깊이 바라보겠구나 생각했죠. 그런 태도를 상덕이란 인물의 큰 줄기로 잡고 갔어요.”
그러면서 그는 무당 화림으로 분한 배우 김고은에 비하면 자신은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며 김고은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고은 배우는 ‘파묘’의 손흥민 선수고, 이도현 배우는 김민재 선수에요. 저는 세컨드 벤치에서 물 떠다 나르고 선수들에게 음료를 전해주는 정도랄까요. 배우들이 이미지에 갇히는 경우가 많은데 고은 씨는 스스럼없이 자신을 내려놓고 뛰어 들어가선 연기에 몰입했어요. 선배 입장에선 너무나 대견하고 기특해요. 그런 도전 정신으로 연기하면 미래가 더 기대되죠.”
1982년 연극 ‘우리 읍내’로 연예계에 발을 들인 최민식은 ‘올드보이’로 한국 영화를 세계에 알렸고, ‘명량’으로 1700만 명 이상의 역대 최다 관객을 동원했다. 그 밖에 ‘신세계’, ‘범죄와의 전쟁’, ‘악마를 보았다’ 등의 영화에서 수많은 명대사를 남기며 대한민국 대표 배우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그는 정작 화려한 연기 필모그래피를 채운 시간은 대부분 외로웠다며 의외의 이야기를 꺼냈다.
“허구의 인간과 허구의 삶을 현실에 있을 법하게 그리는 작업은 외로움의 연속이에요. 인물에 대해서 수백 번 생각해서 그 인물이 되는 작업은 그 누구도 개입할 수 없고 오롯이 저 혼자 감당해야 해요. 절벽에 떠밀려 선 채 무언가를 표현해야 한다는 절박함 같은 게 있어요.”
고독하기 짝이 없는 배우의 삶이지만, 그럼에도 그가 연기를 하는 이유는 연기 만이 주는 몰입감 때문이다.
“혼자만의 외로운 작업을 끝내고 일단 스타트에 들어가면 서핑을 타듯이 달려요. 좌고우면(左顧右眄,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결정을 못내리는 태도)이 없죠. 그때부터 즐기는 거에요. 촬영 후반부로 갈수록 인물과 제가 견고하게 붙게 돼요. 그 몰입감을 즐기는 거에요.”
올해로 데뷔한 지 42년 차. 불혹이 넘는 연기 인생을 되돌아보는 소회를 묻자 그는 오히려 “되돌아보고 싶지 않다”는 예상치 못한 대답을 내놨다.
“신구 선생님도 아직까지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연기를 하시는데, 그에 비하면 저는 핏덩이에요. 되돌아보면 안돼요. 그럼 자꾸 뒤를 쳐다보면 주저앉게 돼요. 아직 전 욕심이 많아요. 하고 싶은 작업도 너무 많고, 갈수록 더 욕심이 생겨요.”
그러면서 그는 배우로서의 욕심이 계속 생기는 이유로 세상사에 대한 호기심을 꼽았다.
“(40년 이상 연기를 했지만) 제가 아직 접해보지 못한 세상이 분명 있어요. 나름 유명한 작품을 했다고 해서 어떻게 제가 이 세상 전부를 알겠어요. 제가 한 작품은 빙산의 일각도 안돼요. 앞으로 제가 겪어봐야 할 영화적 세상이 이렇게 많은데 이걸 못해보고 죽으면 얼마나 아쉽겠어요.”
그는 경험해보지 못한 영화적 세상 가운데 멜로 장르에 대해 가장 욕심을 냈다. 그는 앞서 출연한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멜로에 대한 바람을 내비친 바 있다.
“사랑의 감정이 과연 무엇인지, 사랑의 정의에 대해 고민해보고 싶어요. 수백만 갈래의 인간 감정을 어떻게 다 표현하겠어요. 사랑의 형태와 그 냄새가 다 다를 거란 말이죠. 그걸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궁금해요. 아직 표현해보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ren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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