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상황의 오판? 실패의 겨울을 보내고 있는 보라스[줌 인 MLB]

윤은용 기자 2024. 2. 26.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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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캇 보라스. 게티이미지코리아



블레이크 스넬과 조던 몽고메리. 코디 벨린저와 맷 채프먼. 이번 겨울 이들은 흔히 ‘보라스 4’라고 불렸다. 구단에는 악마라는 말을 듣지만, 선수들로부터는 천사라는 평가를 받는 이 시대 최고의 스포츠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가 보유한 최대어 4명이라는 뜻이었다.

당연히 이번에도 보라스의 고객들은 대박을 칠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스프링캠프가 열리고 시범경기가 시작됐어도, 이들의 협상은 지지부진하다. 벨린저가 지난 25일 시카고 컵스와 3년 8000만 달러에 사인했는데, 당초 보라스가 최소치로 잡았던 총액 2억 달러에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 규모라는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패배나 다름없다.

그동안 보라스는 시장 상황이 어떻든 늘 여유를 잃지 않았다. 수많은 경험을 통해, 선수가 필요한 팀은 반드시 돈을 지불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가 ‘버티기’ 전략을 과감하게 쓸 수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황이 조금 다른 것처럼 보인다. 그가 이번 스토브리그에서 성사시킨 가장 큰 계약은, 포스팅시스템을 통해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이정후가 샌프란시스코와 맺은 6년 1억1300만 달러다. 시즌 개막이 다가오고 있는 가운데 스넬과 몽고메리, 채프먼 등 거물급으로 평가받던 보라스의 고객들은 여전히 팀을 찾지 못하고 있다. 보라스는 스넬에 6년 1억5000만 달러를 제시한 뉴욕 양키스에 최대 9년 2억7000만 달러를 요구했다가 퇴짜를 맞기도 했다.

코디 벨린저. 게티이미지



보라스가 이번 시장에서 좀처럼 고전하지 못하는 것은, 그가 시장 상황을 상당히 ‘오판’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사실 이번 스토브리그에서 가장 관심을 모았던 선수는 오타니 쇼헤이와 야마모토 요시노부, 두 일본인 선수였다. 둘을 영입하기 위해 자금력이 풍부한 팀들이 앞다투어 몰렸다. 그리고 최종 승자는 오타니에게 10년 7억 달러, 야마모토에게 12년 3억2500만 달러를 안긴 다저스였다.

보라스는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느긋하게 상황을 지켜봤다. 오타니와 야마모토가 거액을 손에 쥐는걸 보면서, 그 다음은 자신들의 고객들의 차례가 올 것이라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재 메이저리그 구단들의 재정 상황은 썩 좋지 않다. 샌디에이고를 포함해 메이저리그 구단의 거의 절반에 달하는 14개 구단과 중계권 계약을 맺고 있었던 밸리 스포츠의 소유주 다이아몬드 스포츠 그룹이 지난해 파산한 것이 결정타였다. 물론 그와는 무관한 다저스나 뉴욕 양키스, 시카고 컵스 등의 구단도 있었지만, 그러다보니 시장에서 ‘양극화’ 현상이 일어났다. 투자할 여력이 되는 팀은 엄청난 금액을 쏟아붓는 반면, 그렇지 못한 팀은 출저하게 지갑을 닫았다.

블레이크 스넬. 게티이미지코리아



여기에 보라스의 ‘빅4’가 모두 위험성이 높은 선수들이라는 것도 투자 여력이 되는 팀들이 오퍼를 망설이게 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스넬은 구위만큼은 의심받는 선수가 아니지만 규정이닝을 채운 시즌이 사이영상을 탄 2018년과 지난해 2번 뿐이며, 몽고메리도 지난해 텍사스가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할 때 큰 공을 세우긴 했으나 전체적인 커리어를 놓고 보면 대형 계약을 선뜻 안기기에는 무리가 있다. 공수 겸장의 내야수 채프먼은 하필 지난 시즌을 망쳤다. 벨린저는 지난해 20홈런-20도루, OPS 0.881을 기록하며 부활했지만, 직전 몇 년간 심각한 부진에 시달렸다. 보라스가 컵스와 계약하면서 2024년 시즌, 또는 2025년 시즌 후 옵트아웃 조항을 넣은 것도 벨린저의 부활, 그리고 다시 풀릴 시장 상황 등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보라스에게 이번 스토브리그가 중요했던 것은 이번 시즌 후 자유계약선수(FA)가 되는 후안 소토(뉴욕 양키스) 때문이기도 하다. 소토는 워싱턴에서 뛰던 2022년 워싱턴으로부터 15년 4억4000만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제안을 받았으나 거절했다. 보라스는 현재 소토의 몸값으로 5억 달러 정도를 기대하고 있으나, 올해 좋은 활약을 펼치며 몸값을 더 올릴 수도 있다. 이제 막 25세를 넘어선데다 30홈런·100타점을 매년 기대할 수 있을 정도로 파워도 뛰어나고, 3년 연속 볼넷 1위에 오를 정도로 선구안도 뛰어나 이 시대의 테드 윌리엄스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소토는 지난 시즌 후 샌디에이고에서 양키스로 트레이드된 뒤 자신의 계약과 관련된 질문에 “알고 싶다면 누구에게 전화하고 얘기를 해야 할 지 알 것이다. 난 야구를 하러 여기에 왔다”며 “난 메이저리그 최고의 에이전트를 두고 있다. 그에게 모든 것을 맡겼고, 그가 선보일 마술을 기다리면 된다”고 했다.

보라스는 지난 25일 USA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난 지금 공항 관제사가 된 기분”이라며 “구단들은 충분히 돈을 쓸 수 있음에도 쓰지 않고 있다. 돈을 쓸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님에도 연봉 총액을 삭감하는 쪽을 택했다”고 작심 비판했다. 시즌 개막까지 얼마남지 않은 시간 보라스가 또 어떤 마술을 부릴지, 아니면 패배를 시인하고 와신상담의 심정으로 이번 시즌 후를 기다릴지는 알 수 없다. 팬들은 시장이 서서히 문을 닫아가는 상황에서 성공과 실패의 기로에 손 보라스를 어느 때보다 흥미진진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번 시즌 후 보라스의 역작이 될 것으로 기대받는 후안 소토. 게티이미지코리아



윤은용 기자 plaimsto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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