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수성가 기업인 별세, 후계자는?…“나보다 낫다” 칭찬받던 외동딸 유력

한재범 기자(jbhan@mk.co.kr) 2024. 2. 26.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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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중국 최고 부자 자리에 오를 만큼 성공했던 와하하그룹의 쭝칭허우 회장이 별세했다.

와하하그룹은 소셜미디어 웨이보 계정을 통해 "쭝 회장이 현지시간으로 25일 오전 10시 30분 세상을 떠났다"면서 추모식은 28일 저장성 항저우시 샤사에서 열린다고 밝혔다.

쭝 회장은 '중국판 포브스'인 후룬(胡潤) 집계로 지난 2010년과 2012년 중국 최고 부자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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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국민음료 와하하그룹 쭝칭허우 회장
42세에 창업해 성공해 한때 中 최고 부자
젊은 트렌드 뒤처졌지만 500대기업 올라
중국 와하하그룹 쭝칭허우 회장. [AP 연합뉴스]
한때 중국 최고 부자 자리에 오를 만큼 성공했던 와하하그룹의 쭝칭허우 회장이 별세했다. 향년 79세.

와하하그룹은 소셜미디어 웨이보 계정을 통해 “쭝 회장이 현지시간으로 25일 오전 10시 30분 세상을 떠났다”면서 추모식은 28일 저장성 항저우시 샤사에서 열린다고 밝혔다.

쭝 회장은 ‘중국판 포브스’인 후룬(胡潤) 집계로 지난 2010년과 2012년 중국 최고 부자로 선정됐다. 지난해 기준으로는 131억달러를 보유해 중국 31위 부자다.

1945년생인 그는 중국의 자수성가 기업인의 전형으로 꼽힌다. 어려운 집안 형편 탓에 쭝 회장은 이른 나이에 학업을 중단하고 돈을 벌기 시작했다. 아이스크림 가게상, 사탕 노점상, 자동차 수리공 등 손에 닿는 일을 닥치는 대로 했다.

청년 시절엔 초등학교에서 운영하는 판지 공장에서 10년 동안 영업사원으로 일했고, 스스로 선풍기 공장과 계량기 공장을 운영하기도 했다. 1981년부터 1983년까지 항저우의 한 야간대학에서 기업경영을 공부하기도 했다.

42세였던 1987년 14만위안의 대출을 받아 학교 내 입점 업체인 ‘와하하’를 설립했다. 초기에는 물과 음료수를 학교에 배달하는 일을 했으며, 오전 7시 전에 출근해 밤 늦게 퇴근하는 일상이 이어졌다.

와하하는 생수가 큰 성공을 거둔 데 이어 1990년대 후반 AD 칼슘 요구르트와 페이창 콜라가 히트하면서 이름을 날렸다. 한때는 중국의 국민 음료 대명사로 통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와하하는 2013년 화웨이에 이어 중국의 2대 비상장 민영기업에 오르기도 했다.

다만 와하하는 젊은 소비자 취향에 맞춘 신제품 출시에 어려움을 겪으며 경쟁업체 ‘눙푸산취안’ 등에 밀려 2020년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럼에도 와하하는 현재 중국 29개 성(省)·시·자치구에 생산 공장 및 187개 자회사를 갖고 직원만 3만명에 달하는 중국 500대 기업 중 하나다

와하하는 아직 차기 경영진에 대해 밝히지 않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021년 12월 임명된 쭝 회장 외동딸 쭝푸리(42) 부회장이 최고경영자(CEO)에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 경제매체 제일재경은 쭝 회장이 생전에 쭝 부회장이 자회사를 독립적으로 운영하면서 괄목할 만한 경영 성과를 내고 있다면서 전폭적인 신뢰를 보여왔다고 보도했다.

제일재경에 따르면 쭝 회장은 최근 몇 년 새 딸의 경영 성과를 여러 차례 칭찬하면서 “나보다 낫다‘를 평가를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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