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규제탓에 美·中에 밀려"…맨유 구단주된 '석유거물'의 저격
"관료주의·환경규제로 기업 투자 위축
美·中·중동으로 이탈하는 기업 늘어"
최근 영국 프로축구 명문 구단 맨체스터유나이티드(맨유)의 지분 25%를 인수해 공동 구단주에 오른 영국의 억만장자 짐 랫클리프(사진)가 유럽연합(EU)의 과도한 관료주의를 저격하고 나섰다. 기업친화적이지 않은 각종 규제 때문에 투자가 위축되고 국가 경쟁력이 추락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랫클리프는 글로벌 석유화학 기업 이네오스의 창립자이자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이기도 하다.
랫클리프 회장은 25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서 “EU의 숨 막힐 듯한 관료주의와 환경 규제가 기업들의 역내 투자를 가로막고 있다”며 “유럽 내 기업 환경이 이렇게나 어려운 상황이라면 기업들은 미국이나 중국, 중동에 새로운 생산 기지를 구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유럽의 규제 장벽을 미리 알았더라면 벨기에에 40억유로(약 5조8000억원)를 쏟아붓는 결정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도 했다. 이네오스는 4년 전 벨기에의 북부 플랑드르 지방의 항구 도시 앤트워프 외곽에 40억유로를 들여 에틸렌 공장을 새로 짓는 ‘프로젝트 원’(Project One)을 발표했다. 예정대로라면 이 프로젝트는 최근 20여 년 새 유럽에서 가장 큰 건설 프로젝트가 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프로젝트 원은 각종 허가와 규제 및 법적 문제에 발목이 잡혀 공사가 수차례 중단됐다 재개되길 반복했다. 환경단체 클라이언트어스(Client Earth)는 지난 21일 이네오스의 신규 공장에 대한 환경영향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플랑드르 법원에 건설 중단을 요구하는 새로운 소송을 제기했다. 건설 허가가 재발급된 지 한 달 만에 다시 소송 리스크가 불거진 것이다.
랫클리프 회장은 “불행하게도, 건설 허가 자체가 악몽이었다”며 “(프로젝트원이 지연되고 있는 상황은) 유럽에 대한 투자 의욕을 분명히 떨어트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미 떨어진 허가가 취소될 수 있다는 위험을 알았더라면 그 프로젝트에 착수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유럽 전역을 뒤덮고 있는 농민 시위의 주요 타깃이기도 한 EU 차원의 친환경 산업 정책 패키지 ‘그린 딜’과 관련해서도 랫클리프 회장은 “지원 대상이 되는 산업의 중요성까지 고려해야 한다”며 “EU의 정책은 산업 경쟁력을 후퇴하게 만들고 있으며, 이에 대한 기업들의 반발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린 딜은 작년 2월 EU 집행위원회가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대항마 격으로 마련한 정책이다. 2050년 기후 중립 달성을 위해 역내 친환경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탄소중립 분야에 대한 보조금 규제 완화, 세액 공제 혜택 등이 주요하게 담겼다. 그러나 3690억달러(약 492조원) 규모의 보조금을 쏟아붓는 미국의 재력과 경쟁하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랫클리프 회장은 “그린 딜에 반대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면서도 “탈탄소로 가는 길이 산업 공동화(deindustrialisation)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을 향해 “기업들의 상황을 살피고 이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며 “(유럽 내) 모든 산업이 경쟁력을 잃고 (공장들이) 문을 닫게 해선 안 된다”고 일갈했다.
이네오스뿐 아니라 미국의 석유 공룡 엑슨모빌도 탈탄소 규제 부담으로 인해 유럽 지역에서 수십억 달러 규모의 기후 대응 관련 투자를 보류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랫클리프 회장은 “미국, 중국과 달리 유럽의 제조업은 이미 지난 10년 동안 쇠퇴해 왔다. 우리는 G2에 뒤처져 입지를 잃고 있다”며 “이건 탈탄소를 위한 길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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