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세상을 다녀간 그 이유… 신이 내게 준 선물은 무엇일까[주철환의 음악동네]
독설을 생활화하는 선배가 계셨다.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는 젊은 매니저가 하루는 넌지시 말했다. “저 좀 밀어주세요.” 그분이 진지하게 답했다. “그래 옥상에 올라가자.” 일화가 더 있다. 조금 유명해져서 인사하는 각도가 예전과 달라지자 그분이 먼저 말을 건넸다. “너 요즘 떴더라.” “아직 멀었죠.” “그 정도 뜨면 됐지. 아주 누렇게 떴던데.” 상반된 의미인데 발음과 표기가 같은 단어 중에 ‘빠지다’도 빠질 수 없다. 게임에 빠진 청소년에게 함께 어울리는 그룹에서 너는 좀 빠지라고 말하면 어떨까. 그 친구는 당장 실의에 빠질 거다.
어떤 분야에서든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지는 일은 쉽지 않다. 성악가 조수미가 카이스트의 명예 과학기술학 박사가 됐다. (현재 초빙 석학 교수이기도 하다) ‘안 끼는 데가 없네’ 그러나 당사자가 걸어온 길과 카이스트의 핵심 가치(도전·창의·배려)를 펼쳐보니 머리가 끄덕여진다. 기준에 맞는 탁월한 성취가 없다면 그런 데서 부를 리가 없을뿐더러 당사자도 그런 자리에 끼기 어려울 것이다. 조수미는 “과학기술을 접목한 예술로 우리 삶의 질을 높이는 연구 과정에 최선을 다해 동참하겠다”고 화답했다. 앞으로 인공지능(AI) 피아니스트의 반주에 맞춰 그녀의 20대 젊은 시절 목소리 데이터를 활용한 아바타 공연도 보게 될 거다.
“그 시간에 노래나 불러라.” “그럴 시간에 연습했다면 더 훌륭한 음악인이 됐을 텐데.” 그러나 맨날 연습실에 있고 외부활동 없이 오로지 공연에만 매진했다면 문외한들은 조수미라는 존재는 물론 그녀가 연결해준 클래식의 세계에 대해 지금 같은 친근함은 덜 느낄 거다. 이게 바로 ‘낄끼빠빠’의 딜레마다. “알아서 오겠지.” 소문을 안 낸 잔치는 손님이 찾아주질 않아서 아까운 음식을 버리게 된다. 결국 잔치를 잘하려면 음식이 좋아야 하고 그걸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그녀는 심지어 예능PD에게도 문호를 개방했다. 재능과 명성에 비하면 섭외 문턱을 과감하게 낮췄다는 얘기다. ‘무릎팍도사’(2008년 12월 10일)에 출연해서 본인의 육성으로 직접 전한 희로애락의 성장 스토리는 언젠가 제작될 전기영화에 생생한 자료로 남을 터이다.
과거엔 학급마다 미화부장이 있었다. 교실을 아름답게 꾸미는 역할이다. 교실은 가능할지 몰라도 진실은 미화가 안 된다. 인생의 미화는 기껏해야 장식이거나 분식, 가식일 뿐이다. 한때 조수미가 과감하게 대학을 중퇴하고 유학 간 걸로 알려지기도 했는데 본인이 방송에서 그걸 바로잡았다. 입학(그것도 수석) 후 연애에 빠지는 바람에 수업에 빠졌고 결국은 출석 일수 미달로 제적. 여기서 그냥 수렁에 빠졌다면 음악동네의 주민등록조차 말소됐을지 모른다.
최근 인터뷰에서 조수미는 가장 애정이 가는 노래로 드라마 ‘명성황후’에 나온 ‘나 가거든’을 꼽았다. (이럴 때 ‘가장’ 앞에는 ‘지금’이라는 단어가 생략된 걸로 보아야 한다. 나중에 얼마든지 마음이 바뀌어 다른 답을 내놓을 수도 있기에) 가사 중에 ‘내가 이 세상을 다녀간 그 이유’라는 부분이 나온다. 후세의 사람들은 조수미가 세상을 다녀간 이유를 뭐라 가늠할까. 엄청나게 노래를 잘 부른 천재 소프라노? 홍보와 자기관리에 성공한 월드 스타?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조수미의 목소리를 신이 주신 최고의 선물이라고 표현했다. 과연 신이 한 사람에게 축복을 몰아줬을까. 뭔지 몰라서 그렇지 신은 우리 모두에게 선물을 주셨다. 창의에 대한 보답은 성의다. ‘나 가거든’의 가사는 이렇게 끝난다. ‘부디 먼 훗날 나 가고 슬퍼하는 이 내 슬픔 속에도 행복했다 믿게’ 그녀는 슬픔조차도 선물꾸러미에 넣을 줄 안 듯하다. 천상의 목소리에만 빠져 있던 우리는 거기서 조용히 빠져나와야 한다. 그리고 내가 받은 선물이 무엇인지 찬찬히 바구니를 풀어보아야 한다. 그녀가 전한 지혜. 내가 받은 건 축복이고 함께 나누는 건 행복이다.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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