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면전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국지 충돌 위험이 경제에 영향

한겨레 2024. 2. 26.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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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한계선, 또 다시 ‘한반도 화약고’ 우려
안보 불안 장기화가 경제에 미칠 영향 주목
험한 말부터 자제해 대화 재개로 이어져야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이 2월14일 ‘신형 지상대해상 미사일 ‘바다수리-6’형 검수사격시험을 지도하며 ‘해상주권’을 무력행사로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요즘 들어 ‘이러다가 전쟁 나는 거 아니냐?’는 말이 국내외에서 흘러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올해 들어서도 남북한 당국의 설전과 무력시위는 위험 수위를 넘나들고 있다. 군비경쟁과 군사적 준비태세 강화라는 물리적인 적대와 '건들기만 해봐라'는 식의 심리적 적대감이 상승 작용을 일으키고 있는 것 역시 심상치 않다. 과거엔 위기가 대화로 반전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오늘날에는 대화는 사라지고 대결만 나부낀다. 위기는 차곡차곡 쌓이는데 출구는 보이지 않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그렇다면 전문가들은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최근 리영희 재단과 한겨레통일문화재단은 이러한 궁금증을 풀어보고자 토론회를 개최했다. 일단 이들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을 포함해 대다수 사람들은 당장 전면전이 발발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입을 모은다.

20일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주최 토론회에서 패널들이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천해성 전 통일부 차관, 권혁철 <한겨레> 통일외교팀장,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전쟁불사론’을 외치고 있는 남북한 당국도 전쟁을 먼저 시작할 의사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동시에 안심할 상황은 아니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우발적 충돌이나 국지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가장 큰 우려는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둘러싼 남북 갈등이 재점화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작년에 9·19 군사합의가 백지화되면서 엔엘엘 남북으로 설치된 완충지역이 사라지고 양측의 포사격 훈련과 군사력 집중이 벌어지고 있다. 올해 들어서 북한은 엔엘엘을 불허하겠다며 자신이 설정한 ‘해상국경선’을 넘어오면 전쟁 도발로 간주해 무력응징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 남한은 엔엘엘은 실질적인 해상분계선이라며 북한의 도발시 ‘즉시 강력하게 끝까지(즉·강·끝)’ 응징하겠다고 응수하고 있다.

그렇다면 서해는 또다시 ‘한반도의 화약고’가 되고 말 것인가? 2월 16일 리영희 재단 주최 토론회에 참석한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인제대 교수)은 “우발적 충돌 가능성은 여전히 배제할 수 없다”면서도 두 가지 무력분쟁 억제 상황에 주목했다. 하나는 과거와는 달리 어로 한계선을 설정해 단속에 나서는 등 남북한이 충동을 예방할 수 있는 정책이 시도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북한이 자기들이 설정한 해상국경선을 밀어붙일 군사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북한이 “정치적으로는 해상국경선을 발표할 수는 있겠지만 그걸 군사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같은 토론회에 참석한 문장렬 전 국방대 교수 역시 서해에서 북한이 남한보다 군사적인 열세에 있기 때문에 큰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군사적으로 해상국경선을 강제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김정은이 일단 이야기는 해놨기 때문에 이걸 취소할 수는 없을 것”이고, 이에 따라 북한의 셈법과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러한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조속히 대화를 재개해야 하는데, 남북관계의 현실이나 “윤석열 정부에서는 이를 기대하기 굉장히 어렵다”데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2월 20일에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주최로 열린 토론회에서도 서해상의 갈등은 핵심적인 의제였다. 해군 장교 출신인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9·19 군사합의로 대표되는 안전핀이 제거된 상태에서 “상호간 소통 채널마저 부재하는 전례 없는 상황”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느 일방의 해상 사격 훈련이 오판과 오인을 초래해 우발적 충돌로 이어지는 시나리오가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겨레> 통일외교팀장을 맡고 있는 권혁철 기자는 윤석열 정부가 강력한 대북 응징 태세를 구축하고 이를 과시하는 것이 평화를 지켜줄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지만, 과연 정부와 군당국이 “위기관리 역량을 보여주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정부가 “힘에 의한 평화를 강조할수록 국민은 불안해하는 상황”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에 하나 서해 등에서 국지 충돌이 발생하면 확전으로 치달을 위험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김연철 전 장관은 “북한의 핵 능력이 과거와 비교해서 굉장히 성장했고 한미동맹의 확장억제도 예전보다 훨씬 정교한 대응체제가 마련돼 있어, 상호간에 일종의 억제가 유지된다고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또 확전 여부의 핵심 가운데 하나는 전시작전통제권의 행사 주체인데,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 갖고 있다는 점 역시 확전을 억제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전 장관은 “그렇다고 이게 괜찮은 상황은 결코 아니라는 점”도 강조했다. 우발적 충돌 위험 등 안보 불안이 고착화·장기화되면 이미 불황에 빠진 한국 경제가 더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동엽 교수는 공멸의 두려움이 전쟁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지만, “전면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적다고 해서 제한전도 그러할 것이라는 예상은 매우 위험할 뿐더러, 오히려 반대로 작동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제한전을 막을 장치도, 제한전이 전면전으로 비화되는 것을 막을 장치도 확실치 않다는 것이다.

이렇듯 두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전면전의 위험은 낮지만 우발적이거나 제한적인 충돌의 위험은 상존하고 있다는 점에는 견해를 같이 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메시지 관리부터 위기관리를 시작해 대화 재개 분위기를 조성해야 하는 데에 힘을 써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권혁철 팀장은 “현재 윤석열 정부에선 체계가 부족하고 일관되지 않은 언행들이 잇달아 나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남북 양측이 험한 언사를 자제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주문했다. 김동엽 교수는 “민족, 통일의 담론보다 평화, 안정, 군축의 담론에 집중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며 “미래 세대를 위한 인식의 전환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역설했다. 문장렬 전 교수는 평화진영의 정치세력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윤석열 정부는 말할 것도 없고 문재인 정부의 책임도 크다며, “제대로 된 평화세력이 집권해서 제대로 된 정책을 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욱식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wooksi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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