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우 전쟁과 한반도, 그 기묘한 관계에 관하여

한겨레 2024. 2. 26.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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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칼럼]
남북한, 러-우 전쟁 주요 무기 공급처로
전쟁 종결과 한반도 정세 전환 절실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격을 받은 우크라이나 크라마토르스크의 정수 시설에서 20일(현지시각) 연기가 치솟고 있다. 크라마토르스크/로이터 연합뉴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불법적인 침공으로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두 해를 넘겼다. 이 전쟁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양하다. 러-우 전쟁이 한반도 정세와 고도로 연결되고 있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미국과 러시아의 대리전 양상이 짙은 전쟁에서 남한의 ‘친미’와 북한의 ‘반미’가 격렬하게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수사적인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남북한이 러-우 전쟁의 주요 무기 공급처가 되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작년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미국이 한국에서 제공받아 우크라이나에 공급한 포탄량이 모든 유럽 국가들의 공급량보다 많았다고 보도했다. 이러한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면서 “한·러 관계가 파탄날 것”이라고 경고했던 러시아는 급기야 북한과 손을 잡고 또 내밀었다. 9월 북·러 정상회담을 계기로 전방위적인 협력을 본격화했는데, 그 결과 가운데 하나가 바로 북한의 대러 무기 제공이다. 북·러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정보와 정황을 종합해보면 다량의 북한제 포탄과 미사일이 우크라이나 전장에 투입된 것은 확실해 보인다.

1940년대 한반도 분단과 남북한 단독 정부 수립부터 1989년 미국과 소련의 냉전 종식 선언에 이르는 40여 년 동안 남한은 미국으로부터, 북한은 소련으로부터 군사지원을 받았었다. 또 최근 들어 남북한은 서로를 주적으로 삼아 전쟁 대비에 몰두하고 있다. 그런데도 유라시아 동쪽 끝에 있는 남북한이 반대편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 주요 무기 공급국이 되고 있다. 이러한 낯설고도 기이한 현상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가까이는 윤석열 정부가 표방해온 ‘가치 연대’와 김정은 정권의 ‘반미 연대’가 우크라이나에서 충돌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국 정부가 과거처럼 최소한의 균형외교 맥락에서 러시아와의 관계를 중시했다면, 포탄을 달라는 미국의 요구를 쉽게 받아들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북한 정권이 과거처럼 미국과 친해지기를 원했었다면,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대러 지지·지원국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여 남북한의 엇갈린 선택은 남한의 ‘친미 맹신’과 북한의 ‘친미 좌절’이 낳은 결과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북한의 핵무장은 ‘게임 체인저’로서의 속성을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래식 군사력에 있어서 남한보다 현격한 열세에 있는 북한이 러시아에 다량의 무기를 제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핵무장에 따른 자신감이 깔려 있다. 이는 러시아의 달라진 셈법과도 연결된다. 과거의 러시아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자 핵확산금지조약(NPT) 창시국의 일원으로 핵비확산을 중시했었다. 그래서 유엔 안보리의 대북 규탄과 제재에도 동참했었다. 하지만 최근 지정학적 환경이 바뀌었다고 판단한 러시아는 북한의 핵무장을 용인해주고 북한제 무기를 제공받고 있다. 러시아의 북핵 용인과 북한의 대러 무기 제공의 교환이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또 북한의 핵 능력이 커지면서 한국의 대미 의존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이는 또 하나의 교환을 낳고 있다. 미국은 한국에 더 강력한 확장억제를 제공해주고, 한국은 미국의 요구에 따라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우회 지원해주는 양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전반적인 판세는 북·러 연대에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다. 작년 여름 우크라이나의 대반격은 사실상 실패로 끝났고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 피로감도 심상치 않다. 이에 반해 러시아는 장기전을 치를 수 있는 역량을 축적하고 있고, 북·러 연대도 러시아 대선 이후 예정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방북을 계기로 더더욱 강해질 기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재집권에 성공한다면, 러-우 전쟁과 한반도 정세에도 커다란 파란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더 늦기 전에 관련 당사국들이 교착상태에 빠진 러-우 전쟁의 종결과 대화는 사라지고 대결만 나부끼는 한반도 정세의 반전을 도모해야 할 까닭이 아닐 수 없다.

정욱식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wooksi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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