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교수가 의대생에게…“기다리마”

한겨레 2024. 2. 26.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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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전 칼럼]
지난 23일 오전 광주 동구 학동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명학회관에서 열린 학위수여식에서 졸업생들이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영전 | 한양대 의대 교수

프랑스 사회심리학자 로랑 베그의 책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에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등장한다. 성인 1천명 대상 조사에서, 마더 테레사가 천국에 갈 거라고 답한 사람은 79퍼센트, 마이클 조던이 65퍼센트,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60퍼센트로 나타났는데, 놀랍게도 ‘나는 죽으면 천국에 갈 것’이라고 답한 비율이 무려 87퍼센트로 가장 높았다. 이 수치는 정치가, 의사, 검사, 교수와 같이, 자칭 ‘엘리트’에서 더 높게 나오지 않을까?

의대 정원 문제로 시끄럽다. 현 사태가 걱정스러운 것은 자신은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고, 남보다 ‘도덕적’이라고 생각하는 ‘도덕적 자기만족군’ 간의 충돌이라는 것이다. 이 경우 해결이 쉽지 않다. 의사와 정치권 모두 그 누구의 충고도 들으려 하지 않고 자기 확신의 증폭기만을 하루 종일 돌리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의 전망은 두가지다. 첫째, 의사단체의 완패다. 의사들이 지는 이유는 민심을 얻는 데 실패했고, 의사협회는 오랫동안 사욕에 젖은 선동가들에게 휘둘리느라 변화하는 사회에 합리적 대안을 준비하지 못했다. 둘째, 정치권과 의사단체의 담합으로 끝나는 것이다. 서로 죽일 듯 싸우다가도 이익 앞에서 언제 그랬냐는 듯 어깨동무를 하는 것이 이른바 힘 있는 이들의 전통이다.

이번 경우, 두번째 가능성은 작다. 지난 20일 윤석열 대통령은 “2천명이라는 증원 숫자도 턱없이 부족하다”며 스스로 퇴로를 끊었다. 필수 의료에 5년간 10조원 이상 투입하겠다는 정부안도 기존 예산을 끼워 넣는 등 거품이 가득하고, 부자 감세 긴축과 적자를 향해 가고 있는 건강보험 재정에서 빼 쓸 계획이니 그 집행도 불확실하다. 일부 재정을 투입한다 해도 자연계 젊은 과학자들의 생계형 월급을 빼앗아 만든 돈을 의사들에게 돌리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정치권의 패배는 이번 시나리오에 없다. 확대 정원 규모가 1500명으로 준다 해도 정치권은 지지율 상승과 상당 규모의 정원 확대를 이미 얻었기 때문이다. 어떤 결과이든 문제가 있다. 첫째, 이 상황의 기괴함과 비극성이다. 정치권은 싸우기도 전에 이겼고, 의사들은 지더라도 ‘결정적인’ 피해는 없어 기괴하다. 반면, 정작 이 혼란 속에서 발을 동동 굴러야 하는 이들은 환자와 가족이라는 점에서 비극적이다. 둘째, ‘도덕적 자기만족군’의 또 다른 특징은 성공 원인은 자신에게서, 실패 이유는 바깥에서 찾는 것이다. 싸움에 진 의사들은 자신을 ‘피해자’로 규정하고, 피해자 의식은 모든 행위를 정당화함으로써 극단 세력에 힘을 싣고 합리적인 목소리가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질 것이다. 그러면 오랫동안 같은 패배를 반복할 것이고 그때마다 국민만 고통받을 것이다.

이 상황에서 환자 못지않게 걱정되는 것이 의대생과 젊은 의사들이다. 내가 의대 교수인 이유도 있고 내 나이가 앞으로 본격적으로 의사들의 도움이 필요할 텐데, 그때 좋은 의사에게 치료받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더 큰 이유는 우리 사회의 미래가 청년들에게 달렸기 때문이다. 청년 의사들이 이번 일을 계기로 기성세대보다 더 못난 집단으로 성장할지, 미래의 희망을 포기한 채 우울하게 각개전투의 삶을 살아갈지, 아니면 새로운 희망의 길을 여는 씨앗이 될지, 이번 사태가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의대생들에게 빨리 강의실로 돌아오라 말할 생각이 없다. 무엇보다, 그들이 스스로 결정한 까닭이고, 때론 강의실보다 현장에서 배울 것이 많기 때문이다. 정작 이번 증원의 영향을 받을 당사자도 의대생이다. 다만 선배들이 외치는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에 속지 말고 우리를 따라 하지 마라. 우리에게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묻지도 마라. 나를 포함한 기성세대는 실패했다. 청년들이 새 길을 내야 한다. 의사협회와 다른 독자적인 판단과 행동을 하는 것이 희망이다.

얼마 전,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최대 정적으로 감옥에서 의문사한 나발니가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한국과 대만이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이행할 수 있었다면 러시아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다. 아무 잘못 없이 끌려가 맞아 죽고, 머리카락이 길고 치마가 짧다는 이유로 경찰봉에 맞았던 암울한 시대에도 새 길을 여는 분투의 선두에 늘 청년들이 있었다. 김주열, 전태일, 박종철, 이한열, 그 밖에 나열할 청년들의 이름이 너무 많다. 우리 사회는 젊은이에게 빚을 졌다.

하여, 학생들아, “기다리마.” 선배 청년에게 부끄럽지 않은 새 길의 마중물이 되어 국민의 박수도 받고 몸과 마음이 부쩍 성장한 구릿빛 얼굴로 돌아오라. 부디 다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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