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강제 연행’ 없었다고 ‘강제 노동’이 아닌가

임지현 서강대 교수·역사학 2024. 2. 26.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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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마현 조선인 노동자 추도비 철거
日, ‘모집’ ‘징용’에 의한 노무는
강제 노동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
독일은 합법적으로 체결된 계약이라도
노동자가 파기할 수 없으면
강제 노동으로 인정하고 배상법 통과
강제 노동 문제, 한일 간 감정싸움 말고
노동자 인권 고양 계기로 삼아야

일본 군마현의 조선인 노동자 추도비 철거를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다. 2012년의 추도식에서 주최 측의 ‘강제연행’이라는 말을 문제 삼아 지난 1월 말 군마현 정부가 추도비 허가 갱신을 거부하고 철거해 버린 것이다. 일본 최고재판소의 2022년 판결이 그 사법적 근거를 제공했다지만, 씁쓸하다. ‘거짓 기념물은 일본에 필요하지 않다’며 일본군 위안부 부정론자들이 가세하는 형국이니, 이 사안은 해결된 것이 아니라 아직 진행형이다.

일본의 군마현 당국이 조선인 노동자 추도비를 철거한 뒤인 지난 3일 빈 공간으로 변한 추도비 터(아래)와 원래 모습(위). 2024.2.4. /교도 연합뉴스

관련 자료들을 읽어보니, 강제노동의 부당성을 역설하는 한국의 민족주의자들, 강제노동의 존재를 아예 부정하는 일본의 극우 부정론자들, 자발적 의사를 강조하는 한국의 뉴라이트 모두 같은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구기 어렵다.

조선인 노무자들이 자신의 의사에 반해 강제로 끌려갔기 때문에 강제노동이라는 주장과 ‘모집’ ‘관알선’ ‘징용’에 의한 노무는 강제가 아니므로 강제노동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팽팽하게 맞서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강제노동은 사라지고 강제연행 여부를 놓고 서로 상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싸우는 형국이다.

역사는 OX 문제가 아니다. 둘 다 맞고 둘 다 틀렸다. 자발적 의사로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인 노동자도 있고, 본인의 의사에 반해 강제로 끌고 가는 행위도 있었다. 비단 조선인뿐 아니라 징용으로 끌려가 가혹하게 노동을 강요당한 일본인도 많았다.

설혹 일본의 부정론자나 한국 뉴라이트의 주장처럼 강제연행이 전혀 없었다고 치자. 그렇다고 해도 강제노동은 없었다는 주장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2021년 4월 16일 극우 정파 유신회 소속 중의원 바바 노부유키와 당시 총리 스가 요시히데의 강제노동에 대한 중의원 질의 답변은 확실히 문제가 많다.

조선인 노동자들이 일괄해서 강제로 연행됐다고 말할 수 있냐는 바바 의원의 질의에 스가 총리대신은 ‘모집’ ‘관알선’ ‘징용’에 의한 노무는 ‘강제노동’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답변에서 스가 수상은 1932년 일본이 비준한 국제노동기구의 강제노동조약(1930)을 그 근거로 들었다.

국가동원체제의 노무 동원을 강제노동에서 배제한 이 조약은 2차대전 이후 인권과 노동의 기본권 기준을 올린 여타의 국제조약과 선언을 거쳐 2014년 국가동원체제의 강제노동도 인정하는 방향으로 최종 수정되었다.

강제노동 수정조약을 비준한 독일·폴란드와 달리 일본·한국은 아직 비준하지 않은 것도 문제지만, 독일의회가 폴란드 등 동유럽에서 강제동원한 노동자들, 강제수용소의 수용자들, 노역에 동원한 전쟁포로 등에 대한 배상법을 통과시킨 것은 이미 2000년 8월 12일의 일이었다.

일찍부터 독일이 강제노동을 인정한 기준은 강제연행 유무가 아니었다. 배상을 주관한 ‘기억·책임·미래 재단’이나 베를린 ‘강제노동자료센터’는 합법적으로 체결된 계약이라 해도 노동자가 그 계약을 파기할 수 없다면 강제노동이라고 정의한다.

실제로 나치 점령 당시 폴란드 노동자들은 돈을 벌고 새로운 환경에서 출발하려는 의도에서 노동자로 등록하고 독일의 농촌이나 공장으로 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독일에 가서 더 나은 삶을 찾고 경제적 여유를 누리자는 식의 폴란드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나치 선전 포스터들은 여기저기 널려 있다.

고생 끝에 돈을 모아 큰 여행 가방을 들고 귀국한 이들 중에는 금전을 노린 폴란드 동족에게 강도를 당한 사례도 적지 않았다. 또 일부 젊은 여성들은 집안의 가부장적 억압에서 벗어나는 방편으로 독일행을 택하기도 했다. 이들이 강제노동의 피해자로 인정받은 것은 계약조건을 재협상하거나 계약을 파기하고 옮길 수 있는 자유를 보장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강제노동에 대한 역사적 이해는 일하는 사람의 인권이라는 보편적인 기준에 서 있어야 마땅하다. 강제노동의 과거를 한일 간의 민족적 감정싸움에서 구출해 일하는 사람들의 인권을 고양하는 계기로 삼는 것이야말로 동아시아의 전후 세대가 그들의 고통을 책임감 있게 기억하는 길이다. 지금 일본과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강제노동의 그림자는 없는지 살펴볼 일이다.

일본의 최고재판소나 한국의 대법원과는 심급이 다른 동아시아 공동의 인권재판소가 강제노동 문제를 다룬다면 어떤 판결이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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