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정지 환자도 못받아… 의료진 지치는 이번 주 진짜 위기

조백건 기자 2024. 2. 26.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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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파업 일주일째
의협 “끝까지 저항하겠다” 거리 행진 - 25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전국 의사 대표자 확대회의를 마친 참가자들이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 중단을 요구하며 용산 대통령실을 향해 거리 행진을 벌이는 모습. 이들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책을 강행한다면 전체 의료계가 적법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끝까지 저항하겠다”고 했다. /고운호 기자

지난 20일 대형 병원 전공의들의 근무지 이탈로 시작된 ‘의료 파행’이 26일로 일주일째를 맞았다. 그동안 정부와 의료계에선 “전공의 파업 일주일 되는 시점이 고비”라는 관측이 많았다. 전공의를 대신해 24시간 응급·입원 환자를 돌보고 있는 의대 교수와 전임의(전문의 취득 후 세부 전공을 수련하는 의사)들이 버틸 수 있는 기간이 대략 일주일이기 때문이다. 이후 교수와 전임의가 번아웃(극도의 피로)에 빠지면 주요 병원의 예정된 수술·입원 건수가 평소 절반 밑으로 떨어지고 중환자들이 사지로 내몰리는 ‘의료 위기’가 본격화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25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주재하고 교육부·법무부·행정안전부 등 13개 부처가 참여한 ‘의사 집단행동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를 열었다. 중대본은 “주말에도 비상 진료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전국 409개 응급 의료 기관 응급실의 24시간 운영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며 “또 97개 공공 의료 기관 중심으로 주말과 공휴일 진료를 실시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검찰과 경찰은 협력 체계를 구축해 (집단행동 등에 대한) 신속한 사법 처리에 대비하고 있다”고 했다.

전공의 파업 이후 첫 주말이던 24~25일 서울 주요 병원 응급실은 포화 상태였다. 응급 의료 포털에 따르면 이날 오전 기준 서울대병원은 37개 병상이 모두 찼다. 서울아산병원도 41개 병상 대부분이 찼고, 단순 봉합 환자는 받지 못하고 있었다. 세브란스병원 응급실은 환자 생명과 직결된 뇌출혈 수술마저도 마취과 지원 여부 등에 따라 부분 수용만 가능하다고 공지했다. 위장관 출혈 때 실시하는 응급 내시경 검사와 담낭(쓸개)·담관 질환도 신규 환자는 받을 수 없다고 밝혔다. 강남세브란스병원도 최근 전공의 집단 이탈로 서울종합방재센터에 ‘응급실에 경증 환자 이송을 자제해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서울성모병원의 경우 일반·내과 중환자실의 빈 병상이 하나도 없었다.

배모(80)씨는 이날 혈액암을 앓고 서울성모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생 면회를 왔다. 그는 “동생이 중환자다. 파업 중에 퇴원을 하라거나 위중할 때 의사가 없어서 치료를 제때 못 받을까봐 걱정이 크다”고 했다. 지방도 마찬가지다. 대전의 80대 여성은 의식을 잃고 심정지까지 왔지만 인근 병원 7곳 응급실로부터 ‘의사가 없어 수용할 수 없다’며 이송 거부를 당했다. 사방에 연락한 끝에 대전의 한 대학 병원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병원에 남은 교수·전임의와 간호사들의 피로도 가중되고 있다. 이날 응급실에서 잠시 나온 의사와 간호사들은 벽에 기대 잠시 숨을 몰아쉰 뒤 다시 응급실로 뛰어들어 가기도 했다. 이날 본지가 만난 의사·간호사들은 “남아 있는 의료진 모두 과부하로 지친 상황”이라며 “파업이 끝난 후에는 미뤄졌던 수술이 한꺼번에 몰릴 수 있는 것도 문제”라고 했다. 한 환자의 보호자는 “사직한 전공의들을 대신해 딸뻘 되는 간호사들이 뛰어다니며 온갖 일을 다 하는 걸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본지와 만난 구급대원은 “요즘은 아예 보호자들이 병원 상황을 먼저 알아보고 있다”며 “대학 병원은 병상이 없으니 2차 병원이나 1차 병원으로 가자고 하는 추세”라고 했다.

전북대병원 관계자는 “전공의 이탈로 교수들의 피로가 쌓여 수술·입원 환자 수용을 줄이고 있다”며 “다음 달 1일부터 병원에 근무할 예정이던 전공의 57명 중 대다수가 임용 포기서를 제출해 의사 부족은 더 심각해질 것 같다”고 했다. 이 밖에 부산대·충남대·전남대병원 등 중환자를 맡는 지역 거점 병원에 합격한 전공의(인턴)들도 절반 이상이 ‘계약 포기’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신규 전공의 충원까지 막히면서 현장 의료진의 피로도가 급격히 높아질 수밖에 없다. 2월 28일과 3월 1일은 전공의뿐 아니라 전임의 계약도 갱신되는데, 병원을 지키던 전임의들도 현장 이탈 의사를 밝히고 있어 ‘의료 위기’는 눈덩이처럼 커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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