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대만 TSMC 공장 개소식… 소니·도요타 회장도 총출동
지난 24일 오후 2시 일본 구마모토현의 작은 마을 기쿠요마치(菊陽町). 대만 반도체 기업이자 세계 최대 반도체 회사인 TSMC가 86억달러(약 11조5000억원)를 투자해 신설한 반도체 공장의 개소식이 열렸다. 모리스 창(張忠謀·93) TSMC 창업자는 중국어로 “자랑스러움과 기쁨을 안고 이 자리에 왔다”고 했다. 그는 이어 “TSMC 일본 공장은 일본 반도체 산업의 르네상스(부흥)를 시작하는 지점이 될 것으로 믿는다. 일본과 세계의 반도체 공급망을 더욱 강인하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대만 반도체 동맹을 상징하는 TSMC 구마모토 공장이 이날 문을 열었다. 공장 운영은 TSMC가 일본 기업인 소니·덴소 등과 함께 설립한 일본 현지 법인 JASM이 맡는다. JASM은 연말 제1공장에서 양산을 시작하며 비슷한 시점에 제2공장을 착공할 예정이다.
일본 언론들은 연일 “TSMC는 ‘레이와의 구로후네(黑船·흑선)’”라고 보도하고 있다. 레이와(令和)는 2019년부터 쓰고 있는 일왕(덴노)의 연호로 현재와 미래를 뜻한다. 1980년대 세계 최강 반도체 국가였다가 몰락한 일본을 부활시킬 계기가 TSMC 일본 공장이라는 것이다. 구로후네는 1853년 도쿄만에 출현, 개항을 요구한 미국 페리 제독의 함선이다. 일부에겐 공포의 대상이기도 했지만 일본은 이를 계기로 서양 문물을 받아들여 부국강병을 이뤘다. 해외 기업인 TSMC를 받아들여 부흥의 지렛대로 삼자는 각오가 ‘반도체 구로후네’란 말엔 담겼다.
TSMC는 이날 제2공장에 139억달러(약 18조5000억원)를 투자한다고도 발표했다. 제1공장과 합치면 총 225억달러를 일본에 쏟아붓는 것이다. 일본은 같은 날 제2공장에 최대 7320억엔(약 6조5000억원)을 보조금으로 지급한다고 발표해 TSMC의 투자에 화답했다. 1공장의 보조금과 합치면 1조2000억엔이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이날 영상 메시지를 통해 “일본 정부는 전례 없는 대담한 지원을 하고 있다. TSMC의 세계 전략에 일본이 중요 거점으로 명확하게 자리 잡은 것을 환영한다”고 했다.
모리스 창 창업자는 일본의 ‘반도체 르네상스’를 언급하며 약 60년 전 일본 반도체와의 추억을 꺼냈다. 그는 “내 기억은 1968년, 일본에 처음 와 모리타 아키오 소니 공동 창업자(1999년 작고)를 만났던 때로 거슬러 간다”고 했다. 당시 모리스 창은 미국 반도체 기업 TI(텍사스인스트루먼트)에서 일하던 30대 후반의 젊은 기술자였다. 그는 “10살 많은 모리타씨는 ‘일본에선 (미국보다 뛰어난) 깜짝 놀랄 수율(收率)을 만날 것’이라고 했다”며 “나는 실제로 1980년대 일본 반도체 공장에서 이를 경험했다”고 했다. 전체 생산품 중 정상품의 비율인 수율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 생산) 분야에서 절대적인 경쟁 요소인데 일본 공장에서 생산되는 반도체의 품질이 그만큼 좋았다는 것이다.
1980년대 후반 미국 회사를 퇴사하고 대만으로 돌아가 TSMC를 설립해 세계 최고의 회사로 키운 모리스 창은 “대만은 일본과 일하는 문화나 인재 능력이 비슷하니, (이걸 활용해) 순수하게 반도체 제조만 대신 해주는 회사를 설립했다”고 했다. TSMC 창업의 원점이 일본에서 배운 반도체 제조 문화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그는 “모리타씨를 만난 지 50여 년 지난 지금, 다시 일본에서 깜짝 놀랄 수율을 만날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객석에서 경청한 요시다 겐이치로 소니 회장(최고경영자·CEO)은 뒤이어 단상에 올라 “200명 이상의 직원을 TSMC와의 합작회사에 파견한 소니는 귀중한 경험을 얻을 것”이라며 “TSMC에서 배울 점이 많다”고 말했다. 이번엔 소니가 TSMC에 배워 다시 반도체 강자의 자리를 노리겠다는 의미다. 이날 개소식엔 JASM에 출자 예정인 도요다 아키오 도요타자동차 회장도 참석했다.
삼성전자는 TSMC와 최첨단인 3나노미터(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m, 수치가 낮을수록 반도체 성능이 좋음) 반도체 제조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수율이 TSMC에 비해 떨어져 점유율이 점점 벌어지는 상황이다. 첫 일본 공장 개소식에서 나온 모리스 창 창업자의 이날 ‘수율’ 발언은 TSMC가 해외의 핵심 거점을 미국보다 일본으로 못 박을 가능성을 내비쳤다고 해석된다. TSMC는 당초 일본에 앞서 미국 애리조나에 반도체 공장을 착공했지만 현지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며 양산 시점을 2025년으로 연기한 상황이다.
TSMC 공장이 문을 연 24일 공장 정문을 조금만 벗어나면 최첨단 반도체와는 동떨어진 모습이 보였다. 넓은 양배추밭에서 동남아 출신 근로자 등 10여 명이 양배추를 수확하고 있었다. 손으로 수확하는 양배추밭처럼 뒤떨어졌다고 여겨진 일본 반도체 산업을 TSMC가 다시 부흥시킬 수 있을지가 일본, 그리고 세계의 관심사다. 일본은 일단 긍정적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TSMC의 진출이 기폭제가 돼 일본에서 반도체 공장의 신·증설이 이어지고 있다”며 “2028년까지 일본 내 반도체 투자 금액은 9조엔 규모가 될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일본 신흥 반도체 기업 라피더스는 2027년 최첨단인 2나노미터 반도체를 생산할 목표로 공장 건설에 나섰고, 도시바·롬은 약 3800억엔을 투자해 반도체를 공동 생산하기로 했다. 삼성전자 점유율이 세계 1위인 메모리 반도체를 만드는 일본 기업 키옥시아는 이와테현과 미에현 공장에 총 7200억엔을 투자해 3차원 낸드 메모리를 생산할 계획이다. 소니는 구마모토현에 이미지센서칩 신(新)공장을 짓기로 하고 부지를 확보한 상태다.
미국·대만 기업의 일본 투자도 활발하다. 미국 마이크론은 일본 히로시마 공장에 5000억엔을 투자, 2025년부터 인공지능(AI)에 쓰이는 고대역폭 메모리칩(HBM)을 생산할 계획이다. 또 다른 대만 반도체 기업 PSMC는 미야기현에 약 8000억엔을 투자, 2027년부터 양산을 시작한다. 영국 시장조사 기관인 옴디아는 “일본 반도체 생산 능력이 300㎜ 웨이퍼 기준으로 2028년에 월 226만장에 달해, 2023년보다 30%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사설에서 “반도체 산업 부활에 최후의 순풍, 꼭 되살리자”고 썼다. 일본 국회의원 100명이 참여하는 일본반도체전략추진의원연맹의 아마리 아키라 의원은 “TSMC가 드디어 일본에 왔다”며 “세상은 오늘의 1등에게 내일의 1등을 약속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본이 반도체 주도권을 다시 한번 찾아오겠다는 뜻이다.
☞구로후네(黑船·검은 배)
1853년 미국 매슈 페리 제독이 군함 네 척을 이끌고 도쿄만에 출현해 개항을 요구했다. 당시 두 척이 증기선이었는데 일본인들은 검게 보인 이 배를 ‘구로후네’라 불렀다. 당시 폐쇄적이었던 일본 막부는 증기선으로 상징되는 미국의 압도적 군사력에 공포를 느꼈다. 이후 개항 요구를 받아들인 일본 막부는 미·일 화친조약을 맺었고 이후 서양 문물을 흡수하며 아시아 최강국으로 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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