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준의 가슴이 따뜻해지는 詩] [8] 장
장
이른 아침 아낙네들은 시들은 생활을
바구니 하나 가득 담아 이고……
업고 지고…… 안고 들고……
모여드오 자꾸 장에 모여드오.
가난한 생활을 골골이 버려놓고
밀려가고 밀려오고……
저마다 생활을 외치오…… 싸우오.
왼 하루 올망졸망한 생활을
되질하고 저울질하고 자질하다가
날이 저물어 아낙네들이
쓴 생활과 바꾸어 또 이고 돌아가오.
-윤동주(1917-1945)
이 시의 여인은 윤동주의 다른 시 ‘슬픈 족속’에 등장하는, “흰 고무신이 거친 발에 걸리우다.// 흰 저고리 치마가 슬픈 몸집을 가리고/ 흰 띠가 가는 허리를 질끈 동이다”라고 표현된, 고난을 견뎌내는 강인한 여인의 풍모, 그리고 성정과 닮아 있다. 온종일 장사를 하는 여인의 맵고 찬 생활과 옹골차고 야무진 성품이 매우 구체적인, 마치 굵다랗게 꼰 줄과도 같은 시어들을 통해 두드러지게 드러나 있다. 이 시가 창작된 1937년의 암울한 시대적 상황도 읽혀진다.
교토 도시샤대학 교정에는 정지용의 시비와 윤동주의 시비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윤동주는 정지용을 흠모했지만, 두 시인이 만났다는 기록은 없다. 1945년 2월 16일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한 윤동주의 시편들을 널리 알린 이는 정지용이었다. 윤동주의 동생 윤일주는 시인의 마음씨가 어떠했느냐는 정지용의 물음에 “순하디 순하였습니다”라고 답했고, “인색하진 않았나?”라는 물음에는 “누가 달라면 책이나 셔츠나 거져 줍데다”라고 말했다. 윤동주는 시도 천성도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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