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준칼럼] ‘건국전쟁’의 정치학

2024. 2. 26.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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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국가 기반 구축한 지도자
극단·대립적인 평가에서 탈피
공과 가감 없이 기억 필요 있어
선진 정치문화 조성 계기 되길

최근 개봉되고 있는 이승만 대통령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을 흥미롭게 관람하였다. 이승만 대통령에 관해 그간 국내 학계는 “절대권력에 집착한 독재자”로 보는 부정적인 평가와, “건국혁명의 주역”으로 높이 평가하는 견해가 극명하게 갈라져 있던 것이 사실이다. 영화가 후자의 견해를 취하면서 이승만 대통령에 관한 재평가를 시도하고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필자는 개인적인 관심에서 청년 이승만이 한성 감옥 투옥 시기에 작성한 논설들이나 미국 중립주의의 역사를 주제로 프린스턴 대학에 제출한 박사 학위 논문, 그리고 임시정부 초대 수반과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재직하던 시기에 발표했던 연설 원고나 담화문 등을 읽으면서 그에 관한 몇 편의 논문을 쓴 바가 있다.
박영준 국방대학교 국가안보문제연구소장
그러한 학습에 바탕하여 그가 1948년 8월16일, 정부수립 축하기념식에서 민주주의와 개인 인권의 중요성을 역설한 연설, 1949년 5월17일의 담화문 발표 등을 통해 한·미 상호방위협정의 체결과 태평양동맹의 결성을 미래 한국의 안보정책 방향으로 제시한 것은 현대 한국 정치 외교의 기본 방향을 제시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고 있다.

또한 1948년 12월4일, 토지개혁의 필요성과 방향에 대해 중앙방송국에서 행한 방송 강연, 1949년 8월2일, 쇄국주의를 배제하고 통상에 전념해야 함을 역설한 담화문 발표 등은 한말 애국계몽운동 참가나 미국 유학 등을 통해 형성한 전문가적 식견을 바탕으로 우리 경제 사회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것이 아닌가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물론 장기 집권으로 이어진 그의 잦은 개헌 시도 등 일부 실책 등이 우리 헌정사에 부정적인 유산을 남긴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생 독립국가로서 국가적 체제도 불완전한 가운데,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역설하며 개방적 통상국가의 비전을 제시하고, 최강대국 미국과의 동맹을 체결하면서 신생 국가의 기반을 구축한 국가지도자로서의 공과(功過)는 가감 없이 기억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이나 일본 등 주요 국가들은 자신들의 오늘을 만든 정치지도자들의 사상과 정책들을 학습하고, 이를 미래 국가 발전의 기반으로 삼으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버드대학을 비롯한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들에서는 조지 워싱턴이나 알렉산더 해밀턴, 토머스 제퍼슨 등 건국의 주역들이 남긴 정책의견서 등을 텍스트로 만들어 교양교재로 널리 읽히고 있다. 일본도 도쿄대학 등 주요 정치학과 수업에서 근현대 주요 정치가들이 남긴 서한이나 관련 문서를 참고 교재로 읽히면서, 그 정치적, 사상적 유산들을 바탕으로 향후 일본의 정치 외교 과제를 구상케 하고 있다.

물론 우리 사회도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이나 세종시에 위치한 대통령기록관, 혹은 연세대 이승만연구원 등이 묵묵하게 관련 자료들을 모으고, 대중에게 공유하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건국전쟁’에 등장한 인터뷰 대상자 외에도 당시 공보처에서 간행한 공식 담화집에 실리지 않은 자료들을 발굴해 묵직한 연구 성과를 공표해 온 전문가들도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 대학에서 이 같은 실증적 자료와 연구들을 정치학 교육에 반영하려는 모습은 상대적으로 빈곤해 보이며, 주요 정당에 속한 정치인들은 더욱 이 같은 지적 관심이 결여된 듯이 보인다.

한국 현대사상 주요 정치인들이 어떤 구상과 정책으로 국가운영에 임했는가 하는 객관적 사실의 고찰과 학습이 없다면, 미래 정치와 외교의 방향을 제대로 구축해 나가기 곤란할 것이다.

주요 정치인들의 공적에 대해 극단적으로 대립적인 평가만 존재한다면, 정치와 외교상의 주요 정책 현안에 관해서도 초당적인 합의 수립이 곤란해질 수 있다. 현재 보이고 있는 한국 정치의 극단적인 양극화는 이러한 정치학 연구 풍토의 빈곤에서 결과된 측면도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선진적인 정치문화를 형성하기 위해서라도, 대한민국의 오늘을 만든 주요 정치가들의 사상과 정책을 국민이 가감 없이 접할 수 있게끔 자료집 간행이나 기념관 설치 등의 노력이 경주될 필요가 있고, 정치 교육이나 실제 정치의 현장에서 이 같은 자료들이 적극 활용되어야 한다.

박영준 국방대학교 국가안보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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