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보다] 호황의 그늘, 타도 될까요?
[더 보다 2회Ⅱ] 호황의 그늘, 타도 될까요?
한동안 우리 삶에서 잊혀졌던 해외여행이 다시 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된 이후 억눌렸던 여행 수요가 폭발하고 있는데요.
덩달아 비행기 사고도 늘었습니다.
올해 초 일본 도쿄 하네다 공항에서는 일본항공 여객기와 해상보안청 소속 항공기가 충돌해 대형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며칠 뒤 미국 알래스카항공 여객기는 비행 중 동체가 떨어져 나가는 일도 일어났습니다. 지난해 5월 국내에서는 비행 중인 아시아나항공 비행기 문이 열리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오랫동안 멈춰 있던 비행기가 재정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날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이 커지고 있습니다.
박건희 씨는 2022년 7월 어머니와 함께 튀르키예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해외여행이 풀린 직후라 기대가 컸던 여행이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뜻하지 않은 일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비행기 이륙 후 부터 무엇인가 타는 냄새가 나는 걸 느꼈다는 박건희 씨. 엔진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고, 다른 승객들도 같은 걸 느꼈는지 기내가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엔진에서 불꽃이 튀는 걸 봤다는 승객도 있었습니다.
곧이어 이 비행기가 인천까지 갈 수 없어 튀르키예 인근 공항에 비상착륙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습니다. 타고 있는 비행기의 안전 상태가 나쁘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공포가 엄습해 왔습니다.
불안감에 휩싸인 채 2시간을 보낸 승객들. 비행기가 아제르바이잔이라는 국가의 바쿠공항에 착륙하고 나서야 숨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다친 사람 없이 무사히 마무리된 비상 착륙. 그러나 박건희 씨는 지금도 그 순간을 떠올릴 때 눈물이 나곤 합니다.
박건희(대한항공 KE9956편 탑승객)
"너무 무서웠고, 그때 유서를 쓰는 승객도 있었어요. 어머니랑 저랑 따로 앉았어요. 그래서 더 무서웠죠. '엄마도 못 보고 죽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
그로부터 3개월 뒤인 2022년 10월, 인천에서 시드니로 향하던 대한항공 비행기가 엔진 문제로 긴급 회항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번에도 엔진에서 불꽃이 튀었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두 회항 여객기에 달린 엔진이 같은 제작사에서 만든 같은 기종의 엔진이란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바로 프랫앤휘트니사의 PW4000 계열로, 엔진 추진력만 조금 달랐습니다. 바쿠공항 비상착륙기가 PW4170, 시드니행 긴급회항기가 PW4168 입니다. 문제는 이 엔진이 과거에도 한 차례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2021년 2월, 미국 콜로라도 덴버국제공항에서 호놀룰루로 향하던 유나이티드항공 여객기가 엔진 화재로 긴급 회항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승객들이 촬영한 영상에는 비행기에 달린 엔진에서 불이 활활 타오르는 모습이 선명하게 담겼습니다. 이 엔진이 바로 PW4000.
미 당국은 이 엔진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고 같은 엔진을 장착한 전세계 보잉 여객기 운항을 중지했습니다. 물론 이 조치는 우리나라에도 적용됐고, 대한항공 역시 해당 기종의 운항을 중단했습니다.
그로부터 1년 뒤 해당 기종의 운항이 재개된 다음 대한항공 여객기에 탑재된 PW4000계열 엔진에서 잇따라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대한항공은 이와 관련해서 "바쿠공항 비상착륙은 조종사의 신속한 대응으로 안전하게 이뤄졌고, 엔진 정비 역시 적법하게 준수해 비행에 투입했던 것"이라면서 다만 "각 사고 여객기의 엔진이 추진력 등 일부 사양이 달라 똑같이 점검할 대상이 아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KBS 취재진은 전문가와 함께 보다 정확한 사고 원인을 살펴봤습니다.
이들 대한항공 여객기에는 연소가스 압력에 의해 동력을 발생시키는 '가스터빈 엔진'이 사용됐습니다. 연소된 가스의 압력으로 터빈을 돌려 배기가스 뒤쪽으로 나가고 그 힘에 의해 비행기는 앞으로 날게 합니다. 그런데 터빈에 달린 작은 날개, '터빈 블레이드'가 떨어져 나가면서 주변부와 부딪혔고 이로 인해 엔진 내부의 온도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문제가 발생했던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그렇다면 터빈 블레이드는 왜 깨졌을까요? 엔진 연소실에서 발생한 열을 견디기 위해 터빈 블레이드에는 코팅이 입혀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코팅이 일부 벗겨지면서 열에 의해 깨지고 만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비행 전 미리 알 수는 없었을까요? 항공기 엔진 내부를 주기적으로 검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유희준(전 국토교통부 항공안전감독관, 현 극동대학교 항공기술교육원장)
"터빈 블레이드를 주기적으로 검사해야 하는데 이게 엔진 내부 안쪽에 있어서 확인이 어렵습니다. 따라서 엔진을 마치 내시경 하듯이 항공기 엔진 내부 검사(BSI : Bore Scope Inspection)를 해야 해요."
국토교통부가 직접 전수조사에 나섰습니다. 문제가 된 바쿠공항 비상착륙기, 시드니행 회항기와 같은 모델인 A330에 탑재된 PW4000 계열 엔진이 조사 대상이었습니다. 조사 결과, 전체 39대 가운데 21대 엔진 부품에서 미세 균열이 발견됐습니다. 균열 정도가 심한 1대는 운항이 중지됐고 나머지는 반복 정밀 점검하는 조치가 내려졌습니다.
그러나 사고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2023년 1월 일본 삿포로에서 승객 187명을 태우고 인천으로 가려던 제주항공 비행기가 이륙 1시간 20분 만에 출발 공항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승객들은 영문도 모른 채, 대체 항공편을 기다리며 삿포로에서 24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날, 삿포로에는 많은 눈이 내렸습니다. 긴급회항 이튿날 원인 파악에 나선 제주항공은 항공기 결빙 방지 용액이 엔진 내부로 흘러들어가 문제가 발생한 것을 확인했습니다.
당시 제주항공은 유독 잦은 회항과 결함 문제로 승객 불만이 이어졌던 상황. 지난해 1월부터 4월 사이 제주항공에서 발생한 긴급회항 등 항공안전장애는 모두 24건으로, 1년 전 한 해 전체 발생 건수인 21건 보다도 많았습니다.
이에 국토교통부는 제주항공에 대한 특별점검에 나섰습니다. 이 점검에서 보유 중인 비행기에서 추가로 엔진 부품 결함이 발견됐습니다. 하지만 부품 결함을 확인하는 데까지 6개월이란 시간이 걸렸고, 그 사이 해당 엔진을 단 비행기는 운항이 계속됐습니다.
이 같은 결함을 사전에 예방할 수는 없는 걸까요?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이후 급격하게 줄어든 항공기 정비 인력에 원인이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특히 코로나19 기간 멈췄던 비행기 운항이 빠른 속도로 회복되면서 정비 실력과 기량 역시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항공사들은 코로나19 이후 운항 재개에 따라 정비 인력을 늘리고 있다고 말합니다. 대한항공의 경우 올해 신규 직원 채용 규모를 코로나19 이전 2019년 수준인 1,000명 이상으로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다시 찾아온 호황이 빚은 그늘.
어느 때보다 항공기에 대한 철저한 안전 관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승객들은 이렇게 묻습니다.
"타도 될까요?"
촬영 : 조선기 최승구
편집 : 강정희
리서처 : 김경찬
그래픽 : 장수현 솔미디어
조연출 : 김영일 유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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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은 기자 (writte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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