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想과 세상] 수도국산
기자 2024. 2. 25. 20:16
네 식구
단칸방 살 때
도둑이 들었다
자는 척
이불 속에 누워 있는데
고장 난 비디오를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선이 끊어져서
조용히 나갔다
옆집 아저씨
민구(1983~)
시인은 수도국산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곳은 인천 송림산에 배수지를 만들면서 생긴 이름이었지만, 지금은 개발로 사라졌다. 수도국산 달동네는 가난한 사람들이 간신히 생계를 이어갔던, 설움과 애증으로 얼룩진 장소였다. 멀리서도 잘 보였던, 산비탈에 아슬하게 매달려 있던 집들, 폐자재나 나무판자를 엮어 지었던 무허가 집들, 악다구니와 비명이 연탄재처럼 매일 나뒹굴고 깨졌던 집들, 그 집들의 단칸방에서 서너 가족이 ‘달세’를 내면서 하루하루를 견뎠다.
어느날 시인은 식구와 나란히 누워 잠을 자려는데 도둑이 들어왔다. 숨죽이며 이불 속에서 “자는 척”하고 있는데, 도둑이 자꾸만 비디오를 “들었다 놨다” 했다. 죄책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들었다 놓는 순간, 선이 끊긴 “고장 난 비디오”라는 것을 알고는 후회가 먹구름처럼 몰려왔을 것이다. 달빛의 질책을 받으며 “조용히 나갔”던 도둑, 그 도둑은 다름 아닌 “옆집 아저씨”였다는 것. 이웃과의 유대가 뚝 끊어진 날이었다. 오래전 달이 가득 차오르던 수도국산에 시인이 살았다.
이설야 시인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경향신문에서 직접 확인하세요. 해당 언론사로 이동합니다.
- 대법 “노웅래 전 의원 자택 3억원 돈다발 압수수색 위법”···압수 취소
- “각하입니다, 윤 대통령 ‘OK’”?…이철우 경북지사 SNS 또 논란
- “마은혁에 재판관 임시지위 부여해야” 헌재에 가처분 신청
- “비상계엄 전 아파치 헬기로 북 도발 유도 정황” 민주당, 외환 의혹 제기
- 시민이 명한다 “불안의 밤을 끝내라”…각계 8000여명 ‘윤석열 즉각 파면 촉구’ 시국선언
- 주식거래 7분이나 멈추다니···거래소 “지금은 정상 거래중”
- 오세훈 “윤 탄핵, 기각 2명·각하 1명 예상···탄핵 찬성파 분류는 오해”
- 가자지구 ‘대학살의 밤’…이스라엘, 폭탄 퍼부으며 공격 재개
- 30여년 전 ‘강제폐업’ 당한 양식업자 104명에게 1인 평균 2억2000만원 보상금
- [김용민의 그림마당] 2025년 3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