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다른 주장의 품격 [이윤영 작가의 다시 문해력을 말하다]

김수연 2024. 2. 25.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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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캡처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손흥민(사진 왼쪽)과 이강인 선수(〃 오른쪽)의 다툼이 이슈화되면서 시끄러웠다. 두 사람의 행보 하나하나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는 상황이다 보니 사건의 크고 작음을 떠나 각양각색의 해석과 의견이 그야말로 쏟아졌다. 활화산처럼 번져버린 이야기의 불씨를 한순간에 잠재운 것은 손 선수의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올라온 짧은 글과 함께 이 선수와 함께 환하게 웃는 사진 한장이었다. 특히 사진과 함께 게시된 780여자의 글에는 손 선수의 남다른 주장으로서의 품격이 고스란히 실렸다. 읽는 내내 ‘좋은 글이란 이런 거구나’라고 진심으로 느끼게 했다. 15년차 글쓰기 선생님이자 문해력을 연구해온 입장에서 손 선수의 이번 글을 면밀히 살펴보고, 좋은 글의 기준을 감히, 슬쩍 말하고자 한다.

우선 손 선수는 이슈가 된 이 선수의 행동을 먼저 언급했다. 진위를 떠나 이 선수가 반성하고 있고, 자신을 비롯한 대표팀 동료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했다고 첫 문장에 담았다. 이 선수의 사과 여부에 대한 논란 자체를 불식시키면서 글을 시작했다. 글에서 첫 문장은 매우 중요하다. 첫 문장이 글의 전부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손 선수는 화두에 과감히 자신의 입장이 아닌 이 선수의 현재 행동에 대해 언급함으로써 마음고생이 심했을 후배를 먼저 배려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후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언급하며 이 선수의 행동이 어린 나이에 누구나 한번쯤 할 수 있는 ‘실수’였다고 정의했다. 글에서 필자만의 정의는 매우 중요하다. 필자가 개념을 어디까지 정의하느냐에 따라 글의 테두리가 정해진다고 볼 수 있다. 손 선수는 이 선수의 이번 행동을 하나의 실수로 정의함으로써 이번 일로 벌어진 이 선수의 인성 논란 자체를 논하는 것이 과한 해석임을 명시했다. 더불어 이후 아끼는 후배인 이 선수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특별히 보살펴주겠다’고 언급하며 사건 후 둘 사이에 잔존했던 앙금 자체에 대한 의혹을 더는 증폭시키지 않았다.

하지만 글에서 이 선수의 행동을 두둔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글의 말미에 같은 상황이 와도 자신은 같은 행동을 했을 것이라고 언급하며 대표팀의 주장으로서 자신의 평소 신념과 태도를 여과 없이 밝혔다. 단 이후 글엔 다음에는 좀 더 ‘지혜롭고 현명하게’ 행동하겠다고 피력했다. 태도와 신념을 지키되 행동은 보다 성숙하게 할 것이라며 자신의 이번 행동이 조금은 미숙했음을 명확하게 드러낸 표현은 글쓰기의 기본적인 태도인 자기 반성과 자기 객관화가 완벽하게 이루어진 부분이었다.

글의 마지막에는 다시 한번 글의 첫 문장에 드러냈던 이 선수에 대한 아낌없는 사랑과 지지를 보내며 많은 이들에게 용서를 바란다는 표현을 하며 마무리했다.

좋은 글의 기준이 무엇인지 많이들 묻고 수없이 고민한다. 이번 손 선수의 글을 보며 지금의 그를 만든 것은 아버지의 헌신적인 노력, 개인의 기량 향상을 위한 노력뿐만 아니라 품격 있는 인성 그리고 타인을 배려하되 자신을 보호할 줄 아는 내밀한 품성, 자기 생각과 감정을 명확하게 드러낼 줄 아는 자기 표현력에 있다고 느꼈다. 좋은 글의 기준도 이와 같다.

다음은 손 선수의 SNS 계정에 게시된 전문.

안녕하세요. 손흥민입니다. 오늘은 조금 무겁고 어려운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강인이가 진심으로 반성하고 저를 비롯한 대표팀 모든 선수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했습니다.
 
저도 어릴 때 실수도 많이 하고 안 좋은 모습을 보였던 적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좋은 선배들의 따끔한 조언과 가르침이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강인이가 이런 잘못된 행동을 다시는 하지 않도록 저희 모든 선수가 대표팀 선배로서 또 주장으로서 강인이가 보다 좋은 사람, 좋은 선수로 성장할 수 있도록 옆에서 특별히 보살펴주겠습니다. 저도 제 행동에 대해 잘했다 생각하지 않고 충분히 질타받을 수 있는 행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팀을 위해 그런 싫은 행동도 해야 하는 것이 주장의 본분 중 하나라는 입장이기 때문에 다시 한번 똑같은 상황에 처한다고 해도 저는 팀을 위해 행동할 것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더 현명하고 지혜롭게 팀원들을 통솔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 일 이후 강인이가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한번만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해주세요. 대표팀 주장으로서 꼭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일간에서 나온 이야기 중에 대표팀 내 편 가르기에 대한 내용은 사실과 무관하며 우리는 늘 한편으로 한 곳만을 바라보려 노력해왔습니다.
축구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소란스러운 문제를 일으켜서 진심으로 죄송하고 앞으로 저희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이 이 계로 성장하는 팀이 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대한민국 대표팀 주장으로서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이윤영 작가/ 문해력 연구가 ‘글쓰기가 만만해지는 하루 10분 메모글쓰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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