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교수들 "의협 대표성 한계있어…우리와 협의하자"(종합)
일부선 '겸직 해제' 등 강경대응 주장…각 병원 "아직 집단행동 움직임 없다"
(서울=연합뉴스) 김잔디 오진송 기자 = 의대 증원에 반발하는 전공의들의 집단사직으로 인한 현장의 의료공백이 이어지면서 스승이자 선배 의사인 의대 교수들의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가장 먼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린 서울대 의대 교수협의회가 정부와 만나 신속한 해결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한 가운데, 전국 의과대학 교수협의회도 중재자 역할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의대 교수를 중심으로 대한의사협회의 '대표성'에 대한 회의론이 확산하면서,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속한 대학병원과 의대 교수들이 정부와의 협의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부 교수들 사이에서 진료 현장을 떠나는 '겸직 해제' 발언이 나오면서 사태의 향방을 쉽사리 예측할 수 없게 됐다.
서울의대 교수협-복지부 "갈등 해결해야 한다는 이해와 공감대 넓혀"
25일 의료계에 따르면 정진행 서울의대 교수협의회 비대위원장(분당서울대병원 병리과 교수)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호소문'에서 "지난 금요일 저녁 차관님과 허심탄회한 대화 속에서 저는 정부가 이 사태의 합리적 해결을 원하고 있으며, 향후 이성적인 대화를 통해 최적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됐다"고 밝혔다.
복지부 역시 정 위원장과 박민수 2차관이 두 시간가량 만나 "상호 상황을 공유하고 갈등 상황을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는 이해와 공감대를 넓혔다"고 전했다.
정 위원장은 호소문에서 무엇보다 사태를 신속하게 해결하는 게 중요하다고 짚은 뒤, 환자를 포함한 국민들에게도 양해를 구했다.
그는 "며칠 내로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는다면 중증 의료를 전담하는 대형병원은 급속히 마비 상태에 들어갈 수 없다"면서 "먼저 국민 여러분께는 죄송하다는 말씀과 함께 너무 걱정하실 상황은 아직 아니라는 말씀부터 드리고 싶다"고 했다.
이어 "이번 사태로 인해 깊은 심려를 끼쳐 송구스럽지만, 아직 중증 환자 진료를 위한 최소한의 시스템은 작동 중"이라며 "저희는 이를 빠른 시간 내에 정상화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제자인 전공의들을 보호하겠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정 위원장은 "정부는 전공의들에 과도한 위협이 될 수 있는 각종 발언을 자제하고, 전공의에 대한 각종 명령이나 행정행위 또한 법적 절차를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전국의 의대 교수와 국립대 교수에게는 "학생과 전공의들 상당수가 현장을 떠났지만, 그들 또한 저희가 보호해야 할 제자들"이라며 "제자들이 부당한 조치를 당하게 될 경우를 대비한 법적 시스템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는 "지금은 모두가 너무 감정에 치우치고 있는 듯하다"며 "우리가 이성적으로 대화할 때 이미 답은 거기에 있을 것"이라고 글을 맺었다.
서울의대 비대위가 정부와의 적극적 대화와 중재가 필요하다고 호소한 가운데 전국 의과대학 교수협의회도 "현 의료 비상사태를 해결하고자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정부뿐만 아니라 의사단체 등과도 대화하며 적극적으로 중재자 역할을 하겠다"는 성명을 냈다.
"의협 대표성 한계 있어…의대 교수와 협의체 만들어야"
전공의들이 좀처럼 돌아오지 않고 있는 가운데, 정 위원장을 포함해 의대 교수들 사이에서는 현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협보다 의대 교수들이 나서야 한다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
현재 의료계 집단행동을 주도하는 건 집단으로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와 의대생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얘기다.
전공의들은 대학병원과 같은 수련병원에 소속돼 있고, 의대생 역시 학생 신분이므로 이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돌보고 교육하는 선배 의사이자 스승인 교수들과 정부의 협의가 필요하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의과대학의 입학정원 조정과 필수의료에 관한 논의 역시 의대와 대학병원이 중심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정 위원장 역시 호소문에서 "의대 정원 조정 및 대학병원 중심일 수밖에 없는 필수의료 체계 유지와 관련한 제반 사항들을 정부가 저희 교수들과 함께 협의할 수 있는 모임을 만들었으면 한다"며 일종의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
그는 "정기적으로 만나 앞으로 할 일을 점검하고 결과를 발표해 국민의 불안감을 없애고, 학생과 전공의도 다시 공부하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며 "본격적인 협의는 4월 총선 이후에 시작하고 지금은 협의 주체 및 협의 사항, 향후 계획 정도만 합의하더라도 이 사태의 해결을 가능하게 할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홍윤철 서울대학교 예방의학과 교수도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비슷한 제안을 내놨다.
홍 교수는 "지금 의협이 대표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집단행동의 주체가) 학생과 전공의기 때문에 결국 의과대학과 대학병원의 수장과 같은 의대생과 전공의에 대한 대표성을 가진 사람들이 대화 창구가 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순천향대 교수협의회 역시 성명에서 "정부는 대표성 있는 의사단체와 대화하고 타협해 올바른 장기 목표를 갖춘 의료 정책을 명확한 근거에 의해 수립하라"고 요구했다.
일부 전공의들은 의협과 의대 교수 비대위 모두 '대리' 협상하지 말라고 지적한다.
류옥하다 전 가톨링중앙의료원(CMC) 인턴 비대위원장은 "기성 선배님들의 대표기구인 '의협'과 '교수 비대위'는 저와 동료 전공의를 대표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며 "서울대 교수 비대위를 비롯한 모든 선배님은 정부와의 밀실 협상을 멈춰달라"고 했다.
이어 "저의 운명은 타인이 결정할 수 없다"며 "저희의 미래는 저희가 결정하게 해달라"고 덧붙였다.
의대 교수 중재 움직임 속…'겸직 해제' 강경대응 발언도
전국의 의대 교수들이 사태 해결에 힘을 보탤지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나, 일각에서는 '겸직 해제'와 같은 방식으로 전공의의 집단행동에 동참하겠다는 목소리도 나오는 상황이다.
대학병원 교수의 상당수는 대학에서 의대생을 가르치는 교수이자, 병원에 파견을 나가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인 '겸직 교수' 신분이다. 더 이상 겸직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해 학교 강의만 나가는 걸 선택하는 방식으로 전공의들에 힘을 싣겠다는 것이다.
의료계에서 서울아산병원과 순천향대병원 교수들이 이러한 집단행동을 준비 중이라는 이야기가 확산했으나, 병원 측은 아직 공식적인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는다고 봤다.
우선 순천향대학교 서울·부천·천안·구미병원 교수협의회는 "전공의에 대한 행정명령으로 그들을 협박하는 초유의 행태를 중단하라"며 "의대생, 전공의들에 부당한 조치가 취해진다면 그들의 편에 서서 단호히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아산병원 교수 중 상당수는 울산대 의대 소속으로, 울산대 의대 교수협의회는 전국의대 교수협의회 성명에 이름을 올리며 같은 입장을 표명했다.
서울시내 대학병원 관계자는 "주요 수련병원 교수들 사이에 아직 집단행동이 구체화한 곳은 없는 것으로 안다"며 "다들 상황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으나 우선 신중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jand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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