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세기 중동의 유전은 '문화예술'…매년 수십조 쏟아붓는다
(1) 강대국의 조건, 컬처시티 중동의 문화 반란
사우디, 사막서 현대미술展 열고
문화수도 알울라엔 퐁피두 갤러리 건립
'관람객 연 100만' 루브르 효과 본 아부다비
사비야트섬에 구겐하임 미술관도 짓는 중
UAE 5개 도시는 '스피어' 유치경쟁
“사우디아라비아를 세계 최대의 ‘벽 없는 갤러리’로.”
지난해 11월 30일 건조한 바람이 휘몰아치는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는 화려한 빛을 뿜어내는 예술 작품 120여 점이 들어섰다. 고층 빌딩과 모래사막 곳곳에 세계 35개국 100명의 현대미술가가 펼쳐놓은 대형 작품들. 리야드 시내는 물론 금융지구, 공원 등 도심을 둘러싼 5개 주요 장소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빛의 축제 ‘누어 리야드’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이 축제에는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프랑스계 스위스 예술가 줄리안 사리에르의 ‘현기증’, 코펜하겐에 기반을 둔 예술집단 슈퍼플렉스의 ‘수직이동’ 등이 출품돼 17일간 ‘빛으로 물든 사막 도시’가 연출됐다. 총감독은 파리를 대표하는 현대미술관 ‘팔레 드 도쿄’를 만든 제롬 상스.
사막과 석유, 마천루의 이미지가 전부였던 중동은 지금 세계 문화예술의 중심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중동 각국은 문화예술 산업을 마르지 않는 ‘22세기 유전’으로 보고 2030년까지 수천억달러의 예산을 투입할 계획이다. 미술관 하나 잘 지어 해당 지역의 국내총생산(GDP)만큼 수익을 벌어들이는 ‘제2의 빌바오 효과’를 노리는 것도 있지만, 문화 인프라 발전 정도가 그 나라의 국격을 높이고 국민 삶의 질을 끌어올리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평가받고 있는 게 그 배경이다.
아부다비 간 루브르, 연 100만명 찾는다
중동의 문화예술 투자는 일회성 축제에 그치지 않는다. 유럽과 미국, 아시아의 예술가나 기관, 단체와 적극적으로 손을 잡는 한편 자신들의 전통 문화와 자연유산, 현지 예술가들과 융합시키는 영리한 전략으로 승부한다. 사우디, 아부다비, 두바이 등은 앞다퉈 유럽 문화의 상징인 퐁피두, 루브르 등의 분관을 유치하고, 세계적인 건축가를 영입해 박물관과 음악당 등 오래 남을 랜드마크를 짓고 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혁신을 이끌고 있는 세계 최대 반구형 공연장 ‘스피어’도 아랍에미리트 4~5개 도시가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다.
중동 문화 예술 붐의 시작은 아부다비였다. 2007년 프랑스 정부와 협약을 맺고 약 10년에 걸쳐 파리의 상징인 ‘루브르 박물관’을 아부다비 해안가에 지었다.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이 설계한 건축물 자체도 화제를 모았는데, 7850개 구멍을 뚫은 7000t의 거대한 은색 돔 구조물이 마치 바다에 떠있는 것처럼 설계했다. 2017년 개관하자마자 2년 만에 200만 명의 관람객이 찾았고, 지금도 연간 약 100만 명이 다녀가는 세계적인 명소가 됐다. ‘루브르 효과’를 톡톡히 본 아부다비는 내년 개관을 목표로 사비야트섬에 구겐하임 미술관도 짓고 있다. 빌바오 구겐하임을 지은 해체주의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설계를 맡았다. 몰입형 미디어아트의 선두주자인 일본 팀랩은 1만7000㎡에 달하는 역대 최대 규모의 ‘팀랩 페노메나’를 아부다비 사우디야트에 건설 중이다.
사우디 알울라, 어디에도 없던 문화도시로
아부다비에 이어 요즘 문화예술 분야에서 가장 활발히 움직이는 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다.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석유 중심의 경제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북부 사막 지역에 서울의 44배가 넘는 면적의 친환경 스마트 도시 ‘네옴시티’를 짓고 있다. 여기에 투입되는 자금만 5000억달러(약 700조원). 미래 도시 건설의 핵심 요소 중 하나가 문화예술이다. 빈 살만 왕세자는 고대 문명도시이자 세계문화유산이 있는 알울라를 문화 수도로 점찍고, 2030년까지 창조 산업의 핵심 기지로 육성하는 중이다. 수천 년 된 세계문화유산과 가장 최신의 디지털 기술을 접목해 세계 어디에도 없던 문화예술 도시를 짓는다는 청사진을 마련했다.
이 계획의 일환으로 사우디는 거대한 유리 외관이 눈길을 사로잡는 ‘마라야 콘서트홀’을 3년 전 개관했다. 세계 최대 거울 건축물 기네스 기록도 세웠다. 콘서트홀은 26m 높이에 40m×15m의 거대한 무대, 500석의 객석에서 자연을 향해 완전히 열리고 닫히는 800㎡의 거대한 문이 압도적이다. 비슷한 시기 사우디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시작된 국제 야외 미술 축제 ‘데저트X’도 유치했다. 올해 세 번째로 지난 9일 개막한 ‘데저트X알울라’는 리야드 북서쪽으로 1100㎞ 떨어진 고대 문명도시 알울라 사막에 펼쳐져 압도적인 스케일을 자랑한다. 한국인 개념미술가 김수자 등 세계 17명의 예술가가 참여해 드넓은 사막 절경 곳곳에 설치작들을 흩뿌렸다.
모래사막 위의 피카소와 앤디 워홀
올해 이 인근엔 ‘퐁피두 퍼스펙티브 갤러리 알울라’도 문을 연다. 연간 약 200만유로(약 29억원)를 투입해 ‘세계 최대의 살아있는 박물관’을 건설 중인데, 완공되면 수천 년의 고도에서 앤디 워홀과 피카소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셈이다. 사우디 정부는 알울라에 길이 22.5㎞의 몰입형 트램웨이를 건설하고 고대 유물과 랜드마크 컬렉션을 보호하기 위한 디지털 인프라도 구축한다.
사우디 정부는 네옴시티 프로젝트가 완료되는 2030년 문화 부문에서만 연간 200억달러의 수익과 수십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해 GDP의 3%를 문화산업에서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암 알마다니 사우디 알울라 왕립위원회 최고경영자(CEO)는 “20만 년의 인류 역사, 8000년의 초월적 문명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알울라 지역의 잠재력을 활용해 사우디가 문화 부문의 글로벌 선두주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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