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웃기고 재미있는 오페라라니…‘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 초연

허진무 기자 2024. 2. 25.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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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오페라단이 한국 초연한 로시니 오페라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의 한 장면. 국립오페라단 제공
국립오페라단이 한국 초연한 로시니 오페라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의 한 장면. 국립오페라단 제공

알제리의 태수인 무스타파는 부인 엘비라에게 싫증이 났다. 이탈리아 여인 이사벨라는 실종된 연인 린도르를 찾아다니다 배가 난파당해 알제리에 도착한다. 무스타파는 이사벨라에게 홀딱 빠진다. 노예가 된 린도르와 부인 엘비라를 이어주고 이사벨라를 새 부인으로 맞으려 한다. 이사벨라는 무스타파가 뭇 여인들에게 사랑받는 존재인 ‘파파타치’가 되는 즉위식을 연다. 파파타치의 규칙은 보고도 못 본 척, 듣고도 못 들은 척하는 것이다. 파파타치 역할에 열중한 무스타파는 이사벨라와 린도르가 다른 이탈리아인들을 데리고 도망치는데도 음식만 먹는다. 파파타치란 이탈리아어로 ‘처먹고 닥치라’는 뜻이다.

기자는 지난 22일 서울 국립극장에서 초연한 조아키노 로시니의 희극 오페라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을 관람했다. 한마디로 오페라도 이렇게 웃기고 재미있을 수 있다는 점을 알게 해 준 작품이었다. 공연 내내 객석에선 폭소가 터졌다. 공연이 끝난 뒤 극장을 나오던 관객들 상당수가 “재미있다” “너무 웃겨”라고 감탄했다. 오케스트라가 서곡을 연주할 때 무대 전광판에는 애니메이션 영상과 자막이 나와 전체 줄거리를 쉽게 이해하는 것을 도왔다.

무스타파가 이사벨라와 단둘이 남으려고 “에취! 에취!” 재채기로 연신 신호를 보내는 장면, 인물들이 혼비백산해서 주먹으로 자기 머리를 ‘땅땅’ 내려치는 장면, 경쟁적으로 ‘파파타치’를 엄숙하게 외치는 장면 등에선 ‘개그콘서트’ 같은 코미디 공연이 절로 떠올랐다. 그만큼 가창력만큼이나 연기력이 필요한 작품이었는데, 성악가들의 제법 능청스러운 코미디 연기가 빛을 발했다.

이 작품은 성악가에게 고난도 기교를 요구하는 ‘벨칸토 오페라’로 꼽힌다. 이사벨라 역의 메조소프라노 키아라 아마루는 공작처럼 화려한 음색과 변화무쌍한 기교로 객석을 압도했다. 린도르 역의 테너 발레리 마카로프는 가볍고 활기찬 표현력을, 무스타파 역의 베이스 권영명은 익살스러우면서 묵직한 존재감을 보여줬다. 독창에서 중창을 거쳐 합창으로 음량을 점점 키우는 ‘로시니 크레센도’도 경험할 수 있었다. 일부 대목에서 오케스트라와의 호흡이 흔들릴 때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매끄러웠다. 2021년 프랑스 브장송 지휘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특별언급상을 받은 이든은 균형 잡힌 지휘를 보여줬다.

국립오페라단이 한국 초연한 로시니 오페라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의 한 장면. 국립오페라단 제공
국립오페라단이 한국 초연한 로시니 오페라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의 한 장면. 국립오페라단 제공

19세기 서양인의 눈으로 본 알제리가 배경인 만큼, 이슬람 문화를 희화화하는 내용 때문에 이 작품은 오리엔탈리즘(서양이 동양을 비이성·비도덕적 존재로 규정하는 사고)이 강한 작품이라고 비판받았다. 현대에선 레지테아터(시대에 맞춰 재해석한 연출)를 많이 시도하는데 국립오페라단은 원작에 충실한 연출을 택했다. 국립오페라단 관계자는 “이 같은 우려에 대해 오히려 알제리 대사관에선 ‘현재와 과거의 알제리는 다르다. 관객이 작품으로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인정해줬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국립오페라단 최상호 단장은 지난달 주한 알제리 대사관을 찾아 공연을 앞두고 자세한 고증도 받았다. 대사관 측은 당시의 복식과 의상 등에 관한 오류를 지적했다. 예를 들어 당시 여성들이 착용했던 히잡은 지금처럼 목과 머리를 모두 가리는 대신 머리에만 걸치는 모양이었다.

로시니는 빨리 작곡하기로 유명한 작곡가였다. 작곡 실력도 뛰어났지만 자기 작품의 곡을 재활용하는 ‘자기복제’의 대가였기 때문이다.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은 21살 때 27일만에 작곡했다. 루이지 모스카가 작곡한 오페라의 대본을 가져와 자신이 작곡한 음악을 붙였다. 일부 대목은 남에게 작곡을 맡겼다. 초연 이후 로시니가 모스카의 음악을 표절했다는 논란이 있었는데, 한 공연에서 아리아 ‘조국을 생각합시다’를 모스카 버전으로 들려줘 로시니와의 ‘수준 차이’를 증명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은 1813년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초연한 이후 211년이 지나서야 한국 무대에 올랐다. 한국에선 로시니의 다른 오페라 <세빌리야의 이발사> <윌리엄 텔>만 계속 공연돼왔다. 유정우 오페라평론가는 “한국도 소수의 인기 오페라만 반복해서 무대에 올리는 시대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완성도나 재미가 훌륭한 작품은 계속 소개해야 오페라의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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