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1호선’ 개통, 침울 그 자체…“자력으로 해냈다” 축제 분위기 아니였다는데 (2) [사-연]

한주형 기자(moment@mk.co.kr) 입력 2024. 2. 25.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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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울했던 1호선 개통일
1971년 4월 서울시청 광장에서 지하철 1호선 착공기념식이 열리고 있다. [서울역사아카이브]
1971년 4월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대통령 내외와 서울시장 그리고 수많은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지하철 1호선의 기공식이 성대하게 열렸습니다. 대한문 앞에 설치된 5개의 파일을 박기 시작하자 수천 개의 오색풍선과 천 마리의 비둘기가 하늘 위로 날아갔습니다. 봄기운이 완연한 광장에는 지하철의 노래가 울려 퍼졌고 뒤이어 콘서트와 불꽃놀이 행사가 열리는 등 이날 서울은 온종일 축제 분위기가 가득했습니다.
1971년 10월 대한문 앞에서 지하철 1호선 건설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서울역사아카이브]
1972년 제작된 지하철 1호선 건설예정 노선도. [서울역사아카이브]
기존의 철로를 고속철도화하는 경인선·경부선·경원선 구간과 다르게 서울역~청량리역 간 9.54km은 신설 구간이었습니다. 구간의 역명은 ‘서울역-시청앞-화신앞-종로3가-종로5가-동대문-신설동-제기동-청량리동’이었습니다. 화신앞역은 지금의 종각역에 해당하는 역인데, 이 앞에 위치했던 ‘화신백화점(신신백화점)’의 명칭을 빌려 역 이름을 지은 점이 흥미롭습니다. 후에 6호선과의 환승을 고려해 만들어진 동묘앞역도 이 때 노선도에는 없었습니다.

신설 구간은 땅에 기둥을 박고 토사를 파낸 뒤 콘크리트 박스를 설치하고 다시 토사를 메우는 방식인 ‘굴착식 흙막이 공법’을 통해 지어졌습니다. 콘크리트 박스 안에는 지하철 운행에 필요한 각종 구조물이 들어갔습니다. 착공과 함께 도심구간에서 지하 15~20m를 수직으로 굴착하는 대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공법은 굴착을 위해 도로를 막아야 했고, 공사기간동안 세종로와 종로 등 통행량이 많은 주요 도로의 정체가 불가피했습니다.

1971년 8월 숭례문 인근에서 지하철 1호선 건설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서울시와 문화재위원회는 이 일대 공사로 심각한 갈등을 빚었는데, 숭례문이 훼손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긴 논쟁 끝에 문화공보부는 숭례문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장치를 철저히 한다는 조건으로 노선 변경 없이 지하철 공사를 허가했다. [서울역사아카이브]
1973년 12월 지하철 1호선 종로3가역-종각역 구간(왼쪽)과 서울역 구간(오른쪽)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서울역사아카이브]
지하철이 통과할 때 생기는 진동이 지상의 건물에 그대로 전달되면 손상이 올 수 있습니다. 1호선은 서울 도심을 가로지르는 노선이었고, 구간 중에는 숭례문과 흥인지문을 비롯한 주요 문화재가 즐비했습니다. 문화재 뿐 아니라 지상의 고층건물이나 교량, 지하도와 하천에 미치는 피해가 없도록 고려해야 했습니다. 때때로 문제와 맞닥뜨릴 때는 새로운 공법을 찾아 적용해가며 공사를 진행했습니다. 불과 십년 전만 해도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지만, 한강 제방과 경부고속도로, 청계천 고가 등 역사 속 굵직한 토목공사를 시행해가며 우리 기술도 지하철공사를 독자적으로 시공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 상태였습니다. 1호선 대부분의 공사를 우리 기술로 시행하였고, 일본은 그 감독 역할을 했습니다.
1971년 10월 박정희 대통령(가운데)과 양택식 서울시장이 지하철 공사현장을 시찰하고 있다. [서울역사아카이브]
서울 지하철 개통 이전인 1973년 지하철 역내를 찾은 어린이들이 신기한 듯 선로에 붙어 역사를 구경하고 있다. [국가기록원]
특수구간을 어떻게 통과하는가에 따르는 일부 문제를 제외하고는 토목공사는 큰 문제없이 진행되었습니다. 다만 1973년 초 유류파동으로 철근 가격이 두 배가 넘게 폭등하였고, 각종 건설자재의 품귀현상이 빚어졌습니다. 이러한 난관을 차근차근 극복하며 건설한 첫 번째 지하철은 우리 토목공사기술에 지대한 발전을 가져왔습니다. 동시에 ‘우리도 자력으로 지하철 건설을 할 수 있다’는 국가적 자신감을 세우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서울 지하철 1호선에서 운행될 전동차 6량이 1974년 3월 부산항에 입항하고 있다. 이날 도입된 차량들은 4월부터 시운전에 투입되었다. [서울기록원]
공사를 시작한지 3년 4개월 만인 1974년 8월, 1호선 청량리~서울역 7.9km의 구간과 경부선 서울역~수원 41.5km, 경인선 구로~인천 27km, 경원선 용산~청량리~성북 18.2km 구간이 개통되었습니다. 경인선에는 개봉역, 송내역, 동암역이 추가됐고, 경부선에는 남영역, 대방역, 구로역, 가리봉역(현 가산디지털단지역), 관악역, 명학역, 화서역이, 경원선에는 휘경역(현 외대앞역)이 신설되었습니다. 노선을 달릴 전동차로 일본과 차관 협정을 통해 히타치제조사에서 생산한 186량을 들여왔습니다. 일본, 중국, 북한에 이어 우리나라도 아시아에서 네 번째로 지하철을 개통한 국가가 되었습니다.

잠깐 샛길로 새서, 우리가 북한보다 지하철 건설이 늦었다는 점이 새삼 놀랍게 느껴집니다. 평양도시철도는 1968년 착공하여 1973년 9월 천리마선 봉화역~붉은별역 구간을 개통했습니다. 우리보다 1년 더 빠르게 완공된 셈인데, 당시는 체제경쟁이 심했던 시기라 우리도 이에 자극을 받아 공사에 더욱 박차를 가했을 것이라고 추측됩니다. 북한 지하철은 대부분의 역이 지하 20층(150m)에 이를 정도로 역사와 선로가 깊게 지어진 것이 특징인데, 이는 유사시에 방공호로 활용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1974년 8월 지하철 1호선(종로선) 개통식이 열리고 있다(왼쪽). 개통행사는 원래 성대하게 열릴 계획이었으나, 행사 직전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으로 단촐하게 치뤄졌다. 오른쪽은 식을 마친 후 지하철을 시승하는 내빈들의 모습. [정부기록사진집]
다시 1호선으로 돌아와서, 1974년 8월 15일에는 지하철 1호선의 개통행사가 성대하게 열릴 예정이었습니다. 대통령 내외를 비롯한 귀빈들이 전원 참석하기로 한 행사는 국무총리 주재로 축소되어 성급하게 마무리되었습니다. 이날 개통식 직전의 행사였던 광복절 경축식에서 육영수 여사가 저격되어 생사의 기로에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축제 분위기가 가득했어야 할 행사장은 침울하고 엄숙한 분위기가 감돌았습니다. 다음날 신문 지면은 육 여사의 서거 관련 소식들로 채워졌고, 1호선 개통과 관련한 기사는 안쪽면의 귀퉁이에서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1974년 발행된 1호선 개통 기념 초대 승차권. [서울시]
1978년 1월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지하철 1호선을 탑승하고 있다. [국가기록원]
2호선을 서울의 3핵을 잇는 순환선으로
2호선의 건설이 구체화된 것은 1호선이 착공한 지 얼마 되지 않은 1971년 6월이었습니다. 초기 2호선 계획은 일본조사단이 제시한 안에 따라 김포공항에서 여의도를 지나 4대문 안 을지로를 거쳐 왕십리, 삼성동, 개포동에 이르는 노선이었습니다. 건설에 소요되는 비용은 6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었습니다. 이 막대한 예산을 자체적으로 조달할 수도, 외국으로부터 끌어올 수도 없었던 상황이었기에 2호선 건설계획은 지지부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습니다.
1976년 서울특별시 도시계획도. 순환선인 지하철 2호선 노선도와 주요 도로계획과 남서울대공원의 건립위치(과천)가 표시되어 있다. [서울역사아카이브]
1975년 구자춘 시장은 인구의 강북 집중을 해소하고 도시기능의 발전을 위해 서울을 구도심(사대문 안)과 영등포, 영동의 세 핵으로 나누는 ‘삼핵 도시론’을 발표합니다. 아마 사-연 구독자 분들이라면 서울의 도시발전사에서 이 ‘삼핵 도시론’이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지 알 고 계실 것 같습니다. 구 시장이 제시한 도시계획의 틀에서, 지하철 2호선은 일본조사단의 제안과는 전혀 다른 노선으로 구상되기 시작합니다. ‘세 개의 도심을 연결하는 순환전철의 건설’이 새로운 노선안의 핵심 개념이었습니다.
1978년 2월 착공을 앞둔 서울 지하철 2호선의 모형을 서울시청 관계자들이 살펴보고 있다. 모형에는 착공되는 강남구간과 함께 강남구간 완공 후 착공될 강북선의 선로를 그대로 표시하여 40개 지하철역 위치까지 표시되었다. [서울기록원]
2호선은 을지로~왕십리~잠실~영동~관악~영등포~신촌~을지로를 잇는 타원형의 순환선으로 다시 기획되었습니다. 총 노선의 길이는 48.8km로, 1984년 전면 개통을 목표로 하며 수요와 예산에 맞추어 전 구간을 넷으로 나눠 건설할 계획이었습니다. 1976년과 1977년 일본의 기술조사단이 내한하여 2호선의 경제타당성을 검토했습니다. 조사를 마친 이들은 수요가 많은 강북구간을 우선 건설하고 개발이 진행 중인 강남구간을 추후에 건설할 것을 권고합니다. 또한 건축비의 감축을 위해 도심부 12.8km만 지하철로 하고, 교외의 11.1km 구간은 고가철도를 건설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구자춘 서울시장(오른쪽 두번째)이 1978년 4월 서울 지하철 2호선 건설현장을 시찰하고 있다. [서울기록원]
지난 사-연 강남 개발 편에서 2호선 건설 과정에 대해 간단하게 이야기 한 적이 있습니다. 포병장교 출신으로 독도법에 능했던 구 시장이 서울시 지도를 펼쳐 놓고 자를 대고 선을 이어가며 단숨에 구상했다는 일화를 소개했습니다. 1호선 건설 이전 일본 조사단이 5개 지하철 노선을 제시한 것과 같이, 도시에 지하철이 들어설 때는 시민들이 많이 거주하는 시 외곽에서 중심지를 거쳐 다시 외곽에 닿는 방사형의 노선이 여럿 들어서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리고 그 노선이 포화상태에 이르면, 그 후에야 순환선을 건설합니다. 이 순환선은 기존의 노선들과 교차하고 환승이 가능하게끔 하여 이를 통해 부도심의 발전이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우리는 두 번째로 건설된 지하철을 순환선으로 만들었고, 이는 지하철 건설 공식에 전면으로 반하는 시도였습니다. 순환선이 먼저 만들어진 덕분에 이를 보조할 지하철 3호선과 4호선의 건설도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1978년 신천동, 한양대, 성수동 일대에서 지하철 건설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각각 윗줄 왼쪽과 오른쪽, 아랫줄 왼쪽). 아랫줄 오른쪽은 1980년 을지로4가역 건설공사현장의 모습. [서울역사아카이브]
2호선 건설은 1977년 정부의 4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포함되었으나, 자금조달이 지지부진해 재원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서울시는 자체자금에 지하철 공채를 발행해 2호선 건설을 결심할 정도로 이에 적극적이었고 그해 6월 어렵게 정부의 승인을 받아냈습니다. 대신 일본조사단의 권고안이었던 강북지역 우선 건설이 아닌, 사당에서 영동과 잠실을 거처 신설동까지 이르는 강남구간을 먼저 건설하는 조건이었습니다. 당시 허허벌판이었던 영동은 한창 개발 중이었고, 이곳에 닿는 교통편의 연결이 시급했기 때문입니다.
1979년 1월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동~성내동을 연결하는 잠실철교의 교각이 공정률 60%를 넘기고 있다(왼쪽). 오른쪽은 같은 시기 완공된 당산철교의 모습. 합정역과 당산역을 잇는 당산철교는 당시 한강의 3번째 철교로 철도교량으로서는 국내에서 가장 긴 다리였다. [매경DB]
1978년 3월 2호선 강남구간의 기공식이 열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강북구간도 착공에 돌입합니다. 2호선의 공사 과정에서 본래 계획된 노선의 일부가 수정되었습니다. 당시 기술력으로는 영등포역 운영에 방해 없이 지하에 대형 터널을 짓는 것이 불가능했고, 영등포역을 1·2호선 환승역으로 만들려 했던 계획을 고쳐 신도림역을 신설했습니다. 한편 상왕십리역에서 성동경찰서를 지나 한양대역으로 연결하려는 계획이 경원선과의 연결성을 고려해 왕십리역의 지하를 통과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고가노선으로 계획되었던 당산~문래 구간과 신림~낙성대 구간, 삼성~잠실 구간은 전부 지하화 되었습니다. 지하구간의 증가로 건설비용은 올라갔지만, 큰 예산을 들여 철도 지상구간의 지하화를 추진하는 지금의 추세를 생각해보면 얼마나 다행인 결정이었는지 모릅니다.
1980년 10월 시운전중인 지하철 2호선 열차가 잠실철교를 지나고 있다. [서울역사아카이브]
1983년 1월 서울 지하철 2호선 교대앞역에서 시민들이 하차하고 있다. [매경DB]
1980년 10월 2호선 1단계 구간인 신설동~종합운동장간 개통을 시작으로 1982년에는 강남구간이 교대역까지 연장되었고, 이듬해는 을지로입구~성수, 교대~서울대입구 구간이 개통되었습니다. 순환선이 온전한 모습을 갖추고 운행을 시작한 것은 1984년 5월이었습니다. 타원형의 순환선이 개통하며 신설동~성수 구간은 지선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참고자료>

ㅇ「서울지하철건설삼십년사」, 서울시

ㅇ 최항길,「서울 도시철도 120년」, 메이트

정부기록물과 박물관 소장 자료, 신문사 데이터베이스에 잠들어 있는 빛바랜 사진들을 열어 봅니다. ‘사-연’은 그중에서도 ‘길’, ‘거리’가 담긴 사진을 중심으로 그곳의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연재입니다. 거리의 풍경, 늘어선 건물, 지나는 사람들의 옷차림 등을 같은 장소 현재의 사진과 이어 붙여 비교해볼 생각입니다. 사라진 것들, 새롭게 변한 것들과 오래도록 달라지지 않은 것들이 무엇인지 살펴봅니다. 과거의 기록에 지금의 기록을 덧붙여 독자님들과 새로운 이야기를 이어 나가고 싶습니다. 해당 장소에 얽힌 ‘사연’들을 댓글로 자유롭게 작성해 주세요. 아래 기자페이지의 ‘+구독’을 누르시면 연재를 놓치지 않고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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