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임시 감독 '한 발 물러선' 축구협회, 단순한 '반대 여론 잠재우기'면 곤란하다
[스포티비뉴스=박대성 기자] 줄곧 정식 감독을 외쳤던 전력강화위원회가 임시 감독으로 선회했다. 태국과 월드컵 지역 예선 전까지 정식 감독을 선임하겠다던 결정에서 한 발 물러섰다. 하지만 임시 감독 결정이 어떤 인물을 일찍이 점찍어두고 6월로 미루기 위한 임시 방편이라면 곤란하다.
한국 대표팀은 지난해 2월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김판곤 협회 부회장·홍명보 전무이사 아래에서 만들었던 투명하고 합리적인 프로세스를 모두 부수고 톱-다운 방식으로 내리찍은 선임이었다. 전력강화위원장에 마이클 뮐러를 선임했지만, 허울 뿐이었고 클린스만 감독 선임 배경에 '강남스타일처럼 신명나는 축구'라는 기막한 수식어를 뱉을 수 밖에 없었다.
클린스만 감독은 한국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이후 줄곧 아시안컵 우승을 외쳤다. 9월 사우디아바리아전(1-0 승)까지 이기지 못했지만 아시안컵까진 지켜봐야 했다. 프리미어리거와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경쟁 팀 등 역대급 전력을 보유한 대표팀은 아시안컵 직전 7경기 연속 무실점에 연승으로 일단은 기대감을 올렸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예상대로였다. 클린스만 감독은 전술은 없었고 개인에게 의존하는 경기력이 더 커졌다. 역대급 선수단을 보유하고도 한 수 아래 팀에 연달아 실점했고 대응 능력은 찾기 어려웠다. 최대 규모 코칭 스태프를 데려가 대회를 준비했지만 과학적인 접근은 전무했고 체력적인 부담을 묻는 질문에 "프리미어리그 등 유럽 톱 레벨에서 뛰는 선수들은 2~3일 간격으로 경기를 하니 괜찮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토너먼트에서 두 번 연속 연장전에 '해줘 축구' 에너지는 떨어졌다. 한국보다 전력은 떨어져도 철저하게 분석하고 준비했던 요르단에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0-2로 졌다. 클린스만 감독은 13경기 무패(90분 경기 기준)에 아시안컵 4강 진출을 했다며 으름장을 놨지만 여론의 뭇매를 맞고 1년 만에 경질됐다.
김판곤 부회장이 협회를 이끌던 시절, 4년 동안 우리가 명확하게 어떤 축구를 해야 하고, 가진 자금 아래에서 한국 축구를 원하는 감독을 찾는 프로세스를 등진 결과였다. 클린스만 감독 경질 이후 정해성 전력강화위원장 중심에 새 위원회를 개편했지만 "3월 두 경기만 맡으려는 감독이 있겠나. 시간이 부족한 만큼 국내 지도자에게 정식 감독을 제안하려고 한다"는 말이 큰 비판을 받은 이유다.
태국과 홈&어웨이로 열리는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예선은 3월 21일에 열린다. 정해성 감독이 세웠던 차기 감독 선임 기준은 8가지였다. ▲감독의 전술적 역량 ▲취약한 포지션을 해결할 육성 능력 ▲지도자로서 성과를 냈다는 명분 ▲풍부한 대회 경험을 갖춘 경력 ▲선수, 축구협회와 축구 기술·철학에 대해 논의할 소통 능력 ▲MZ 세대를 아우를 리더십 ▲최상의 코치진을 꾸리는 능력 등을 (클린스만 감독 경질 기준)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에 모두 검토해 정식 감독을 데려온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만약 데려온다면 또 절차와 과정은 없고, K리그 개막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현직 감독들을 빼 오는 방법이 유일했다.
축구 팬 기본 정서와 동떨어진 비(非)상식적인 일이 일어나려고 하자, 각종 규탄 성명서가 쏟아졌다. 유력한 차기 감독으로 지목됐던 홍명보 감독 소속팀 울산HD 서포터즈가 가장 크게 반발했다. 신문로 축구회관 앞에 트럭 시위를 했고 "협회는 최근 한국 축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태에 그 어떤 책임감도 느끼지 않고 오롯이 K리그 감독을 방패 삼아 책임을 회피하려 하고 있다"라며 반대했다.
엄청난 비판 여론에 일단은 발을 뺀 모양새다. 정식 감독을 고수했던 자세에서 임시 감독으로 선회했다.
임시 감독에 모든 걸 집중하기보다 6월 이후 지휘봉을 잡을 정식 감독을 위한 선임 프로세스에 집중해야 한다. 지난해 9월, 독일축구협회가 한지 플릭 감독을 경질하고 2005년 이후 감독직을 수행하지 않았던 대표팀 단장 루디 펠러에게 임시로 지휘봉을 맡긴 점을 짚어보면, 전력강화위원회 내에서 두 경기 정도는 맡아도 된다.
3월엔 임시 감독으로 굳혀진 결정이 활활 타오른 여론을 '잠깐' 잠재우기 위함이라면 곤란하다. 3월 임시 감독 성적이 좋았다고 정식 감독으로 물 흐르듯 이어지는 결정이 아니라, 파울로 벤투 감독 선임 이유와 배경을 조목조목 설명했던 김판곤 전 위원장 시절처럼 어떤 방식과 이유로 차기 감독이 선임됐는지 명확하고 공개적인 배경 설명이 필요하다.
국내 감독을 선임하더라도 마찬가지 방식이 적용돼야 한다. 월드컵과 유럽에서 꽤 좋은 성적을 냈던 에르베 르나르 등을 포함한 감독들도 레이더 망에 있을 수 있다. 유럽5대리그 등 좋은 시스템 속 뛰고 있는 대표팀 선수들을 위해서라도 철저한 선임 과정이 필요하다.
또 '시나리오'대로 '톱-다운 방식' 선임 느낌이 든다면 다시 큰 비판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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