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살 '비건 아티스트' 소녀, 임지인과 대화를 나누다
임지인 님을 처음 만난 것은 2023년 7월 16일, 서귀포학생문화원에서 모여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 공사 현장을 답사한 제주기후평화행진이었다. 임지인 님은 어머니 최정희 님과 함께 채식 버거 30인 분을 정성껏 준비해왔다. 나는 행사 진행을 맡았고, 두 분은 이 날 노래 공연을 했다. 두 분이 집에서 채식 전시를 한다는 걸 알게 되어 행사가 끝난 뒤 두 분의 집으로 향했다. 이후 교류를 이어가다가 8년 간의 제주살이를 마무리하기 직전인 2024년 1월 6일, 두 분의 집에서 임지인 님을 인터뷰했다. 이 소녀의 지금을 기록해 나이가 들어가며 돌아볼 이정표로 선사하고 싶었고, 이 소녀의 사고와 활동을 알리고 싶었다. 인터뷰에 앞서 독자들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글을 부탁했다.필자주
나를 소개하려면 일단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을 우리 집으로 초대해야 한다.
우리 집은 좁은 골목길 가운데에 있다. 집에서 오른쪽 길로 가면 말 한 마리와 만난다. '당근이'는 빗질해주는 것과 내가 뜯어주는 칡넝쿨을 아주 좋아한다. 왼쪽 길로 가면 올레길 7코스의 바다가 펼쳐진다. 바닷가 바위들 사이 어딘가에는 깃발을 꽂고, 조개껍질과 유리 조각들을 모아 놓은 나의 동굴기지가 있다.
우리 집 대문 양쪽에는 키 큰 야자수가 서 있고, 아주 기다란 텃밭 정원과 으르렁거리고 있는 하얀 진돗개가 있다. 개집 지붕에는 내가 그린 새와 벽면에는 말과 나무, 아이들이 뛰논다.
현관문을 열면 하얀 회벽에 비치는 전구색 조명 빛이 따스하고, TV 대신 턴테이블, 기타와 젬베, 그리고 붓과 색연필들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책상 위에는 요즘 빠져 있는 아서 랜섬의 <제비호와 아마존호>, <오페라를 묻다>가 올려져 있다.
갓 구운 통밀빵 냄새가 그윽한 주방에서 엄마는 당신을 위해 자연식물식 밥상을 준비하고 있다. 샐러드와 고구마, 혹은 현미밥과 된장국에 산책할 때 뜯어온 번행초를 무쳐줄 수도 있다. 내가 말린 민트와 꽃차도 대접받을 수 있다.
그다음에는 당신에게 휘파람으로 노래를 들려주며 포구 쪽으로 산책을 권하고 싶다. 우리는 바닷길에 흐드러진 노란 감국꽃들도 보겠지만, <해안도로건설>과 <민군복합항 주변 어항 정비사업>이라는 공사가 한창인 현장과 만나게 된다. 나는 먼바다를 바라보며 점점 사라질 제주의 풍경들을 기록하고, 내가 부르는 노래에 담고 싶은 바람을 당신에게 들려줄 것이다.
* 임지인 (만13세)
홈스쿨 4년차, 비건 아티스트로 활동을 개시했다. <말의 바다>, <춤추는 허리 이동 프로젝트>에서 전시, 공연을 했다. 여러 장르의 고전에 탐닉하며 기타연주와 노래, 그림과 글쓰기, 생명 돌보기를 즐긴다. 제주를 지키기 위해 여러 연대에 참여하고 있다. 앞으로 동물, 장애, 채식 등에 대한 책들을 출판하고자 궁리 중이다.
윤여일 : 우리는 반 년 쯤 전 제주기후평화행진에서 처음 만났고, 그 날 지인 님의 집에서 채식 전시회를 한참 보았어요. 그래서 첫 대화는 더욱 인상적이었고, 지금의 인터뷰까지 이어진 듯해요. 집에서 채식 전시회를 하는 이유를 먼저 물어보고 싶어요.
임지인 : 보통 전시회는 전시공간으로 조성된 곳에서, 특별한 사람이 전문적인 내용으로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이미 저는 다섯 살에 전시회를 했어요. 이사를 앞두고 정들었던 이웃과의 송별회를 엄마가 모아둔 제 작품들을 전시하는 것으로 대신한 거죠. 이백 점이 넘는 그림과 이야기책들, 여러 종류의 공예품들로요. 처음에는 동네 분들만 초대했는데, 소개를 받아 다른 분들도 오셨고, 이어서 지역 신문사에서 취재도 나왔고, 그 인연으로 지역 방송에 <생방송, 화제 집중>이라는 프로에 단독 출연도 했어요. 어린 나이였지만, 그 경험으로 저 자신과 제가 표현한 것들이 자랑스럽게 생각되었어요. 그 다음에 작년 초에 홈스쿨 전시회를 했어요. 그간의 홈스쿨링을 돌아보는 의미에서 한 달간 홈스쿨에서 했던 내용을 전시하고 공연도 했어요.
이렇게 집에서 했던 전시회들이 바탕이 되어서 이번에는 테마를 정해 새로운 전시회를 하기로 했고, 비건으로 살아가는데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채식 전시회>를 하게 된 겁니다. 다른 곳도 아닌 생활 공간, 집에서 전시를 한다는 게 여러 가지로 수고롭게 하는 부분도 있지만, 채식은 매일 먹는 음식과 이어지기 때문에 요리해서 함께 먹고, 나누는 부분이 꼭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바로 집이 제격일 수 밖에 없었던 거죠.
윤여일 :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세 시간 정도 머물렀던 것 같아요. 사실 지인 님이 그날 공들여 보여준 전시물과 설명해준 자세한 정보들이 기억에 선명히 남아 있지는 않아요. 하지만 어떤 사람이 이토록 정성을 기울여야 할 활동이구나라는 공감은 지금도 간직하고 있어요. 제게 채식이라는 주제가 구체적인 사람의 모습을 통해 인격화된 날이었어요. 지인 님이 비건 아티스트로 활동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임지인 : 채식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채식이 음식 취향이나 건강에만 관련된 게 아니라 동물권 환경, 기후위기 또 차별 불평등 문제까지 이르는 그런 광범위한 분야랑 연결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리고 때마침 임흥순 감독님의 <기억, 바다, 샤워> 전시회에서 ‘말의 바다’를 통해 채식을 주제로 표현할 기회가 생겼을 때 음악과 그림으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겠다고 생각을 했죠. 말과 글과 함께 예술적 표현이 사람들의 마음에 더 와닿을 것 같았거든요.
저는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모든 놀이 속에 음악과 그림 등 예술적인 부분들이 항상 함께 있어서 이런 표현이 되게 당연하게 느껴지거든요. 그래서 그때 팜플렛에 제 소개를 넣을 때 저를 뭐라고 소개하면 좋겠냐고 해서 비건 아티스트라고 하고 싶다고 말했었어요.
윤여일 : 비건 생활하면서 겪는 즐거움도 어려움도 있을 것 같아요.
임지인 : 어려움은 사실 별로 없지만, 관계 맺기, 외식하기 그리고 수고로움 이런 것들 정도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음식이란 아주 중요하죠. 같은 음식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서로 엄청 공감이 생긴 것 같고 좋잖아요! 전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랑 음식을 먹을 때 곤란한 적이 있었어요. 어른들은 영양 있다고 생각하시는 고기 요리를 권해주시며 성장할 때 꼭 먹어야 한다고 하시니까 안 먹겠다고 하기 죄송했죠. 그리고 외식을 하기가 아무래도 어렵죠. 저희는 특히 채식 중에서도 자연식물식을 하니까 갈 수 있는 식당이 더 한정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도시락 싸는 일이 일상이에요. 외출할 때 가방이 하나 더 생기는 거죠. 하지만 가끔 아무 준비도 없이 나섰다가 먹을 만한 메뉴를 찾기 힘들어지면 배고프고, 지쳐서 힘들어요. 아무리 귀찮아도 준비를 하는 게 항상 낫더라고요.
채식할 때 가장 큰 즐거움은 일단 ‘맛있다’에요. 대부분 채식을 하면 풀만 먹으니 별거 없겠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채식을 제대로 하면 다양한 재료들로 맛있고 아름다운 밥상을 차릴 수 있어요. 그리고 음식을 먹을 때 정말 상쾌하고 행복해요. 동물의 사체를 먹는 것이 아닌 폭력 없는 밥상이니까 더 그런 것 같아요. 그리고 생명을 더 존중하게 되고, 소비도 줄고, 그러다 보면 삶이 소박해져요. 채식하면 감각들이 회복되어 보통 사람들이 잘 맡지 못하는 냄새들에도 예민해지고 음식 자체의 맛을 혀로 더 잘 느끼게 되는 것도 재밌어요!
아, 물론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져요. 피곤해도 빨리 회복되고요. 그리고 채식을 지향하고 실천하는 사람들과 연대할 수 있는 것도 좋아요. 보통 채식을 하려는 사람들은 건강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동물과 자연환경을 보호하고, 차별 없이 조화로운 세상을 꿈꾸더라고요. 그런 좋은 사람들을 만날 기회들이 생기는 것이 선물 같아요.
윤여일 : 비건 아티스트로서 활동하며 기억나는 장면은 무엇일까요?
임지인 : 지난가을, 임흥순 작가의 <기억, 바다, 샤워>라는 전시회에서 다섯 분의 여성들이 자신의 메시지를 표현하는 ‘말의 바다’가 펼쳐졌어요. 저도 그중의 한 사람으로 참여했죠. 그런데 그 날은 제가 주인공이 아니라, 제주 구좌읍 월정리의 젊은 해녀께서 이제까지 하수처리장 증축을 반대하며 투쟁하신 이야기를 하셨어요. 그 자리에 모두 오시지 못했지만, 함께 고생하신 해녀분들까지 위로해 드리려고 깜짝 공연한 거예요. <나락 한 알 속의 우주>라는 노래를 개사해서 <제주 바다 속에는>이라는 노래를 준비했어요. 무거운 분위기로 마쳐질 무렵, 예정에 없던 공연이 시작되자 깜짝 놀랐던 그 해녀분은 제 바로 앞에 앉으셔서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셨어요. 감동하신 다른 관객분들도 많으셨지요.
앙코르 곡으로는 로드리게즈의 <I wonder>를 불렀죠. 신나는 버전을 부르기 시작할 때 갑자기 관객들이 일어나기 시작하더니 춤을 추기 시작했어요. 손에 손을 잡고 공연장 여기저기를 돌아다녔지요. 저는 갑작스러운 춤에 놀랐지만, 점점 더 신나게 기타를 쳤고, 춤은 절정에 달하며 빨라졌고요. 저의 목소리나 기타연주로 누군가의 마음에 감동을 주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에요.
또 한 가지는 서귀포 한살림 동홍매장의 낡은 벽면에 벽화를 그린 건데요. 먼저 젯소를 칠하고, 페인트를 두 번 칠한 다음 그림을 그렸어요. 한살림의 판타지 세계를 표현하고 싶어서 나무와 꽃, 넝쿨식물이 가득한 숲 속에 돌로 만든 한살림 매장, 거기에서부터 구불구불 이어진 오솔길, 바닥에는 큼직한 호박들, 텃밭의 가지와 토마토, 오솔길 위에는 바구니에 장을 봐서 오가는 동물들을 그렸어요. 소나무 위아래로 별빛처럼 반짝이며 올라가는 민들레 홀씨도 있어요. 누구보다 한살림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 그 애정을 그림 속에 표현했어요.
제 그림을 보신 분들마다 감상을 자세히 이야기해주시기도 하고, 일부러 연락을 하셔서 고맙다고 하시기도 했어요. 특히 어린이들이 엄마와 장 보러 와서는 그림을 보며 한참 이야기를 하고, 사진도 찍고 그래요. 포토존이 되었다고 할까요!
윤여일 : 자신의 가치에 대해 공들여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이 영향을 받을 때 어떤 느낌을 받으시나요?
임지인 : <곶자왈 작은 학교>의 초등 모임인 오돌또기 친구들은 저와 엄마가 이끄는 ‘지구를 위한 요리’ 시간을 통해 조금씩 채식에 익숙해지더니 이젠 자진해서 모꼬지의 모든 식사를 비건 채식으로 하자는 결정을 내렸어요. 편식도 많이 하고, 야채 먹기를 힘들어하는 친구들도 많았는데 말이지요. 그리고 지난 채식 전시회 때 저희집에 오신 분들은 대부분 두세 시간 내내 전시물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채식 음식을 드셨어요. 그만큼 깊이 교감하고 대부분 전시회 후에 크고 작은 영향을 받았다고들 하셨죠.
저는 이런 변화들을 보면 일단 많이 놀라요. 음식은 오랫동안 좋아한 습관 같은 거잖아요. 그걸 바꾸는 데에는 큰 용기가 필요한데 도대체 저를 얼마나 믿길래 이러는가 하고 말이죠.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봤더니 제 뜻만 강요하듯 가르치려 드는 게 아니라, 정성스럽게 준비한 내용을 설명하고, 제가 좋다고 생각하는 음식을 함께 나누는 과정이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더구나 어른도 아닌, 어린 제가 말이죠.
그리고 어쩌면 그렇게 변한 사람들은 이미 내면에 변화에 대한 의지가 움트고 있었는데 그걸 제가 탁 건드린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전할 때는 욕심 없이 그저 제가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인상만 보여주면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윤여일 :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 경험했는데 음식을 비롯해 선물을 자주 나누고 있죠.
임지인 : 엄마는 어릴 적부터 선물하는 것을 놀이처럼 일상에서 가르쳐 주셨어요. 생일파티를 해도 초대한 친구들 한 명 한 명에게 제가 편지와 선물을 주게 도와줬고요. 하지만 그 선물이라는 게 돈을 주고 사는 경우보다는 대부분 만드는 것들이나 직접 구하는 것들이에요. 거창한 게 아니라, 소소한 거고요. 중요한 건 상대에게 꼭 필요하다고 느꼈던 것을 주는 거에요.
저희집에 많은 꽃을 캐가서 마당이 휑한 집 마당에 심어드리거나, 동네 카페 이모에게는 오래 전에 만들었던 낡은 칠판을 드려 <낮술 오케이>라고 쓰실 수 있게 해드렸죠. 채식을 시도하려는 분께는 간편하게 요리할 만한 채식재료 목록을 작성해서 드리기도 했고요.
신기하게도 선물을 준비해서 드리는 건 평범한 삶을 신나게 바꾸는 힘이 있어요. 보통은 특별한 날 선물을 하는데 선물을 평범한 날 하게 되면 그 날이 특별해지잖아요. 저는 제가 사는 매일이 특별하고 싶어서, 그리고 선물을 주기 전까지 설레고 싶어서 선물을 해요.
윤여일 : 최근에 <말의 바다>와 <춤추는 허리 이동 프로젝트 - 몸이동> 전시, 공연의 경험으로 무척 바빴죠. 어떤 경험이었나요?
임지인 : <말의 바다>와 <몸이동 프로젝트>의 공통점은 손이 많이 가고 정성이 들어가는 작업을 통해서 준비되었다는 점이에요. 그리고 하나의 전시와 공연 속에 다양한 표현을 했다는 점이고요.
<말의 바다>에서는 자연식물식 까나페를 시식할 수 있는 코너와 함께 채식에 관련된 여러 전시물을 전시하고, 제가 제작한 영상 상영에 이어 채식과 연관된 열네 가지 내용으로 개사한 <I wonder> 노래를 불렀어요. 노래와 함께 가사 내용에 맞춰 각기 다른 기법으로 그린 그림들을 보여 주었고요. 그리고 각각의 내용들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했죠. 마무리는 휘파람과 기타연주, 편지글 낭독하는 것으로 했죠.
사실 꼭 공들여 준비한 음식을 차리지 않고, 간편하게 구입한 채식 시식을 할 수도 있었겠고, 오랜 시간을 들여 각각 다른 기법으로 그린 그림들 대신 화면을 통해 사진을 보여줄 수도 있었겠죠. 물론 PPT자료로 설명을 진행할 수도 있었겠고요. 하지만 전 굳이 손이 많이 가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을 택했고, 그게 제가 전하는 내용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몸 이동 프로젝트>는 장애 여성 한 분과 함께 했는데 공연 몇 주 전부터 그 분과 친해지기 위해 긴밀하게 연락을 주고받고, 저희 집에도 오셔서 여러 차례 채식 식사도 함께 하고,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만들었어요. 저희 동네와 바닷가, 집에서 촬영을 해서 영상도 제작했지요. 영상 속에 저희가 그렸던 그림도 캐릭터로 들어갔죠. 공연은 영상이 흐르면서 연극과 노래 공연으로 이뤄졌는데 그 이십 분을 위해 들인 시간이 참 길었던 셈이죠. 장애인과 친하게 된 경험도 특별했습니다.
윤여일 : 지인 님은 바닷가를 돌아다니면서 동굴을 탐사하거나 말을 돌보고 있죠. 오늘 그곳들을 함께 다녔네요. 일상을 어떻게 보내며 자신을 돌보시나요. 그런 삶이 어떠한 충만감을 주는 것 같아요.
임지인 : 저는 제주 남쪽 바닷가 앞, 올레 7코스길로 이어지는, 마당이 큰 집에서 살기 때문에 일상에서 자연을 느낄 수 있어요. 진돗개와 바닷길을 산책하고, 집 앞에 있는 백마에게 칡넝쿨을 뜯어주며 털을 빗어주고, 바닷새들을 관찰하는 일을 매일 할 수 있지요. 텃밭 정원에 딸기, 허브들과 가지각색의 꽃과 나무들도 가꾸고요.
이렇게 제 하루의 일과 중에 무엇인가를 돌보고 가꾸는 시간은 꼭 필요해요. 이건 생명을 돌보면서 수고하는 시간이지만, 사실은 이 시간이 저 자신을 가장 잘 돌보고, 제 숨통이 트이게 해주는 것 같아요.
채식 중에서도 자연식물식을 하는 저는 외식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에 하루 중에 매 끼니를 준비하고 즐기는 시간의 비중도 커요. 한살림에서 장을 보고, 산책길이나 마당에서 야생초를 채집하는 것에서부터 재료를 씻고, 다듬고, 조리를 하는 과정도 대부분 엄마와 함께 하는 편이에요. 먹는 시간을 가장 좋아하는 저에게는 이 시간들이야말로 제 몸을 아끼고 돌보는 때고요.
저는 맨발로 땅을 밟고, 마당 잔디 위에 털퍼덕 누워서 하늘을 보는 시간, 동네 바닷길에 비밀스럽게 숨어 있는 나만의 동굴을 찾으러 어슬렁거리는 때를 늘 꿈꿔요. 아주 정신없이 바쁜 후에는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게 이런 일들이더라고요. 그리고 정말 그 시간을 맞으면 아무것에도 매이지 않은 자유를 느껴요. 평화롭고요. 그냥 "아~!"하는 탄성이 나오!
윤여일 : 보통 지인 님 또래 아이들은 어울려 노는 걸 좋아하잖아요. 지인 님도 그러시겠지만, 또한 평화로움을 추구하시는 것 같아요.
임지인 : 저를 그렇게 만든 건 제가 자란 환경과 제가 읽었던 책이란 생각이 들어요. 저는 유기농법이 시작된 충남 홍성에서 태어났어요. 거긴 논밭이 아주 넓게 펼쳐져 있었고 소나 염소, 새 등 동물들도 늘 주변에서 쉽게 만났어요. 아주 어릴 때부터 꽃을 좋아한 엄마와 정원을 가꾸고, 숲에 가서 벽난로에 지필 잔가지를 줍던 일이 생생해요. 아마 그래서 자연에 있을 때 가장 마음이 편한 것 같아요.
재미있게도 제가 가장 사랑하는 책들의 주인공들을 보면 대부분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 속에서 조용히 있는 시간을 끔찍히 사랑하죠.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의 ‘작은 나무’, <나의 산에서>의 ‘소로’, <산적의 딸 로냐>의 ‘로냐’, <초원의 집>의 ‘로라’ 등등 말이죠.
저는 제가 특별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어떤 아이나 저같이 자연 속에서 놀 시간이 있다면, 그리고 그런 환경이 주어진다면, 그 속에서 여유로움, 평화를 느낄 수 있어요. 이것은 그저 모든 생면이 느낄 수 있는 ‘자연스러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윤여일 : 지인 님은 홈스쿨링을 하잖아요. 어떠한 방식으로 하시나요. 그 방법을 어머니와 어떻게 함께 정하시나요?
임지인 : 저는 우리나라 유기농업이 시작된, 충남 홍성의 홍동면에서 태어나서 일곱 살 때까지 살았어요. 그곳에는 우리나라 대안 교육의 선구자, 풀무학교가 있었고, 언니는 그 학교를 다녔고요. 덕분에 저도 자연스럽게 풀무학교에 들락거리며 각종 행사에도 꼭 참여했지요. 어린 나이였지만, 입시 교육이 아니라, 몸으로 하는 공부와 스스로 찾아서 읽고 토론하고 발표하는 공부, 다양한 예술표현이 늘 풍성했던 축제가 있었던 분위기를 즐겼고 좋아했어요. 저는 어린이집에 다니며 모내기를 하고, 텃밭을 가꾸며 시골길과 산기슭을 산책하고, 흙투성이가 되도록 온몸으로 놀았어요.
하지만 아무래도 시간표에 맞춰 정해진 교육과정에 따라 학교에 얽매인 이상 뭔가 쫓기는 마음으로 하루하루가 분주했지요. 저만의 리듬과 색깔로 표현하고 싶은 것을 느긋하고 편안하게 하지 못한다는 갑갑함도 쌓였어요. 그런 중에 이사를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학교생활을 정리하고, 홈스쿨링을 하게 되었어요. 초반에는 학교생활에서 들여진 습관이 가시지 않아 뭔가 시간표를 짜야 할 것 같은 강박이 있었어요. 칠판에 표로 작성한 내용은 멋지고 풍성했지만, 계획대로 안 되면 괜히 불안했어요.
그러다가 제풀에 꺾여 점점 시간표 짜기는 사라지고, 매일 아침을 먹으며 하루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상의해서 함께 결정하게 되었어요. 나들이가 될 수도 있고, 가까운 이웃에 방문하는 일정이 될 수도 있고요. 미뤘던 무언가를 해야 하는 날도 있고, 종일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싶은 날도 있죠. 특별한 요리를 할 수도 있고요. 또 어떤 날들은 저희가 상상도 하지 못 했던 일들이 일어나기도 하죠.
저는 제 삶을 역동적으로 살려고 홈스쿨을 해요. 집에서 전시회를 벌이고 그에 이어 커다란 전시관에서 퍼포먼스를 하기도 해요. 로켓이 발사되는 앞에서 시위도 하고, 갑자기 공연을 하기도 하죠. 그런 과정에서 다양한 친구들을 사귀게 되고요. 집 앞에 사는 말이 탈출하면 달려가서 소방관 아저씨들 앞에서 제가 말을 구조해요. 그 말이 제 말만 잘 듣거든요. 요즘엔 그 말을 행복한 농장에 보내기 위해 탄원서도 쓰고, 트럭을 타고 건초를 사러 가기도 하지요!
학교에서는 모든 교육내용이 미리 계획되고, 그 시스템 내에서 관리되지만, 저의 홈스쿨에서는 예견할 수 없는 일들이 기다리고 있어요. 그야말로 하루하루가 흥미진진합니다. 언제 무슨 특별한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너무 재미있지 않나요!
윤여일 : 지인 님은 고유함, 충만감, 평화로움을 추구하며 예술가적 기질로 느껴져요. 실제로 회화, 작곡, 전시, 공연 등으로 활동하고 있고요. 지인 님에게 예술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임지인 : 제가 기억하는 한 우리 집에서는 음악이 끊겨있던 적이 없어요. 그래서 제게 음악이란 배경처럼 언제나 깔려있던 거였어요. 어렸을 때 스티커에 귀를 대고서 듣는 것도 좋아했어요. 그렇게 하고 있으면 음악의 리듬이 귓속으로 들어와서 몸 전체로 퍼져나가는 느낌이 들거든요. 또 어떤 악기가 어떤 소리를 내는지도 잘 구별할 수 있었어요.
특히 저는 리듬악기를 좋아했거든요. 리듬악기가 탁 울리는 순간 뭔가 가슴이 진동하는 듯한 느낌이잖아요. 아기 때 언니가 다녔던 풀무학교 행사 때 가서 풍물놀이의 그 말발굽 소리 같은 북, 장구 소리를 들으며 행진을 함께 했던 기억이 나요. 그때의 신나는 분위기와 땅을 울리는 풍물 악기들 속에 휘말린 듯한 묘한 느낌? 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요!
스스로 악기를 배우고 싶어했던 때는 사실 작년 정도부터였던 것 같아요. 예전부터 음악과 다양한 악기들에 대한 관심은 많았지만 배울 기회나 적극적인 열정은 그리 없었거든요. 악기를 배우면서 음악을 공부하게 되니까 음악에 대한 이해를 더 잘 하게 되었고 음악이 구체적으로 느껴지고 알게 되었죠. 음악을 연주하는 시간은 저한테 가장 그야말로 쉬는 시간이기도 하고요. 가장 행복한 일이죠!
그림 그리는 거는 손가락 힘이 생기기 시작할 때부터 쓱쓱 그렸어요. 그냥 하얀 종이에 뭔가를-그것이 한 줄의 선이라도-그린다는 것 자체가 좋았던 것 같아요. 저는 그림을 그리는 법을 배운 적도 한 번도 없었어요. 그러니까 더 저만의 색깔을 살려서 그림을 잘 그릴 수 있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캐릭터나 사진을 보아야만 그림을 그리죠. 아무것도 보지 않고 상상으로 그리고 그속에 저만의 이야기에 넣어서 그리니까 특별한 그림을 그리게 되는 것이죠. 저는 그림을 그리는 거 말고도 아기 때부터 창작하는 일들을 모두 즐겼어요. 마당에서 진흙과 꽃, 나뭇잎을 갖고 아름답고 예술적으로 밥상을 차리기도 하고 엄마와 목재를 잘라 가구를 만들기도 했죠. 내 마음대로 창작하고 창조해내는 일은 커다란 기쁨이자 놀이입니다.
윤여일 : 지인 님이 생각하는 제주는 어떠한 땅인가요. 제주에서의 생활이 지인 님의 예술과 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임지인 : 제주는 제가 어른이 되었을 때 어릴 적 기억이 가장 또렷하게 날 곳이죠. 아름답기 때문에 고민이 많아지는 땅, 그래서 슬프기도 한 곳이에요. 만약 제가 육지의 어느 도시에 살았다면 지금 느끼고 있는 기후위기, 환경의 변화, 개발의 문제 등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제주는 육지에 비해 정말 작은 섬이지만, 우리나라 그 어느 곳보다 변화의 속도가 피부로 느껴져요.
저는 4년 전에 지금 사는 마을로 이사를 왔는데 그 사이에 엄청나게 변했어요. 해안도로가 뚫리고, 정겨운 골목과 오래된 나무들을 없애고 또 얼기설기 다른 도로들도 생기고, 타운하우스, 호텔, 카페와 빵집, 식당들이 빼곡히 들어섰고요. 민군복합항 주변 어항 정비사업이라는 공사까지 해서 포구의 모습이 완전히 바뀌고 있어요.
이런 변화가 너무 안타까워서 요즘은 기억하고 싶은 제주의 풍경, 오래된 골목과 큰 나무들, 아직 개발이 되지 않은 자연스러운 곳들, 옛날 정취가 있는 가게들 등을 그리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그림책으로 만들어도 좋고요.
물론 제주의 난개발을 막고자 노력하는 시민활동에 관심이 더해지고요. 제주라는 섬은 기후재앙과 전 지구적인 여러위기들을 더 잘 들여다볼 수 있도록 축소해 놓은 작은 세상 같기도 해요. 관심만 있다면 그런 면이 훨씬 더 잘 드러나지요.
윤여일 : 2030년은 지인 님이 스무 살 되는 때네요. 그때 세상은 어떨 것 같나요?
임지인 : 기적같이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고 탄소 배출을 줄이고 그래서 환경이 극단적으로 나아진다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기후재앙이 지금보다는 안 좋아져 있을 것 같아요. 예견하는 학자들이 말하는 미래는 너무 끔찍해서 사실 생각하기 싫어져요.
하지만, 요즘에 제주의 여러 현장에서 활동하는 분들을 만나게 되는 기회도 생겼고, 자기만 위하기보다 다른 생명들, 차별받거나 파괴되는 것들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내 생각보다 많구나 하고 놀라게 되었어요.
세상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실천하는 소수의 사람들의 힘으로 엄청 바뀌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환경이 안 좋아질수록 한편으로 이런 분들이 각각 혼자 있기보다 점점 더 힘을 합치고, 뭔가 지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더 애쓰게 되겠죠. 함께 모여 영향을 주고받으면 서로에게 힘이 되니까요. 그리고 거기서 창조적인 일들이 또 나오고, 그런 연대가 세계 곳곳에서 자꾸 생기지 않을까요? 아마 저도 그 속에 있을 것 같고요!
윤여일 : 현재 시점에서 성인이 되어서 치중하는 활동은 무엇이 될 것 같나요. 지인 님은 여러 활동적, 표현적 기질이 많아서 자신의 미래를 지금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 궁금해요.
임지인 : 지금 제가 하고 있는 활동들과 연결되겠죠. 저는 아직까지는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요. 농사도 짓고 동물들이랑 교감하는 그런 일도 하고 싶고, 그림 그리는 화가나 아니면 버스킹하는 그런 음악가가 되고 싶기도 하고 틈틈이 글도 써서 작가도 되고 싶고… 이것저것 다 하고 싶은데 이런 활동들이 하나의 맥으로 이어지면 다 가능할 것 같아요.
제 속에 넘치는 것을 여러 형태로 표현하는 것이니까요. 제가 사람들과 관계 맺는 것을 좋아하니까 공동체에서 일하며 이런 역할들을 하는 것도 가능할 것 같아요. 아직까지는 딱 한 가지를 정하지 않았지만 모두 연결된 일이니까 하나의 일일 수도 있겠죠.
윤여일 : 지금 책 출판도 궁리하고 있죠.
임지인 : 저는 어릴 때부터 글 쓰는 걸 좋아했어요. 왜냐하면 소리 내서 엄마에게 읽어주는 게 너무 재밌었거든요. 제가 글을 좀 유머 있게 쓸 때가 많아서 더 그랬죠. 저희 식구는 제가 홈스쿨링을 시작한 때부터 사 년째 가족신문(<워터십다운 타임즈>)을 계절마다 발행하고 있어요. 그걸 읽으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지난 계절에 어떤 중요한 일이 있었는지, 그때 어떤 감정을 느꼈고, 생각을 했는지 자세히 알 수 있어요. 엮어보니 역사가 되더라고요.
내년에 제가 꼭 하고 싶은 일 중 하나는 출판을 하는 거예요. 일단, 지난 채식전시회 이야기, 채식을 주제로 하는 책을 쓰고 싶어요. 채식에 관한 책은 많이 출판되고 있지만, 저 같은 청소년이 비건을 실천하며 그 영향력을 미치는 과정에 관한 책은 새로울 것 같아요. 동물에 대한 책도 쓸 이야기는 많아요. 이미 그림책으로 만들어 둔 ‘망고’라는 개 이야기. 우리 동네 백마 '당근이'도 충분히 책 주인공이 될 만해요. 요즘에 장애 여성과 하게 된 공연을 통해 새롭게 깨닫게 된 장애인에 대한 생각도 책으로 쓰고 싶고요.
이외에도 책을 쓸 수 있는 내용은 무궁무진해요. 저는 바로 제 자신과 가까운 곳에서 글감을 발견하곤 해요. 글감이 풍부하다는 사실이 바로 책을 쓰고 싶어지는 마음을 만들죠.
윤여일 : 최근 활동이 부쩍 늘어나고 있는 것 같아요. 자신의 삶에서 어떤 변화가 진행 중이라고 여기시나요?
임지인 : 지난 가을 집에서 했던 작은 전시회가, 4.3평화공원의 특별전시실에서의 정식 전시와 공연, 종합토론으로, 그 다음에는 서울에서 장애여성들과의 극공연으로 연결되었어요. 물론 지금 인터뷰까지 하고 있고요. 처음에는 적응이 잘 안 될 만큼 너무 빠르게 진행되더라고요. 학교에 다닐 때는 학교를 중심으로 맺어진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홈스쿨링을 하면서부터, 특히 전시회를 하면서 여러 사람들을 향해 대문을 열어젖힌 다음부터는 그 관계의 폭이 아주 넓어졌어요.
요즘에는 거의 폭증되는 느낌이에요. 그저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는 말이 아니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훌륭하고, 마음을 깊이 나눌 수 있는 만남이라는 말이에요. 이런 가운데 저도 모르게 점점 용감해지고, 용기가 생기고, 자신감도 더해져요. 익숙했던 것들 속에 편히 있기보다 겁이 없어져서 새롭게 시도하는 것에도 호기심이 생겨요. 물론 바빠지니까 얽매이는 느낌이 들 때도 있고, 몸이 피곤하기도 하지만, 이런 특별한 기회들이 저에게 일어나는 게 감사하고 신기해요.
[윤여일 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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