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고대 로마시대부터 와인 양조/최대 와인산지는 알렌테주/척박한 땅 비디게이라서 최고의 포도 생산/며품 캐리어 리모아 전 오너 비디게이라에 퀸타 도 파랄 설립/50년 수령 올드바인으로 빚는 ‘명작’ 탄생/프로축구 벤피카 구단 공식 와인 선정/레스토랑·수영장 갖춘 호텔도 오픈/‘완벽한 휴가’ 즐기는 와인투어 ‘맛집’으로 입소문
목젖을 타고 흐르는 와인은 우아한 향수를 품었나 보다. 비강을 채우기 무섭게 커다랗고 하얀 수백만송이 모란과 작약이 가득 펼쳐진 아름다운 정원으로 순간이동을 한다. 포도 품종은 이름도 생소한 안타옹 바즈(Antao Vaz). 상큼한 석류, 귤, 살구향과 우아한 꽃향기에 은은한 꿀 향기까지 피어오르니 순간 정신이 아찔하다. 포르투갈 최대 와인산지 알렌테주(Alentejo)가 품은 보석, 비디게이라(Vidigueira) 올드바인 포도밭에 섰다.
◆고대 로마시대부터 와인을 빚다
포르투갈 와인은 아직 한국 소비자들에게는 좀 생소하다. 알콜도수 높은 달콤한 주정강화 포트와인과 마데이라 정도만 와인샵에서 가끔 볼 수 있을 뿐 좀처럼 만나기 쉽지 않아서다. 하지만 포르투갈 와인의 역사는 고대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역사가 깊다. 기원전 31∼27년에 포도나무가 심어졌는데 비디게이라 근처에서 포도 양조에 사용된 토기 조각, 화강암으로 만든 포도압착기, 포도씨앗 등이 발견됐다. 생산량도 대단하다. 국제와인기구(OIV)에 따르면 포르투갈은 2022년 기준 세계 9번째 와인수출국으로 생산량의 47%를 수출한다. 와인 수출액은 9억4100만유로이며 포르투갈 식품 수출량의 10.4%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산업이다. 연간 생산량은 6800만헥토리터(HL)로 세계 10번째 와인 생산국이며 전 세계 와인시장 점유율은 2.7%에 달한다.
포르투갈 와인의 매력은 다양성. 와인 양조에 사용되는 품종만 250종이 넘어 그리스, 이탈리아에서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토착품종을 자랑한다. 포도밭 1㎢당 토착 품종 식재 밀도만 따지면 2.7로 1위이며 프랑스(0.42), 이탈리아(1.0), 스페인(0.43), 독일(0.07) 등 주요 와인생산국을 압도한다. 국제 품종까지 포함하면 340종이 넘는데 토착 품종과 국제 품종의 장점을 잘 결합해 빼어난 와인을 만들어 낸다. 포르투갈 와인이 ‘블렌딩의 마법사’로 불리는 이유다. 와인을 오래 즐기다보면 뻔한 국제품종보다 생소한 품종들을 찾기 마련인데 포르투갈은 그럴 때 새로운 와인세상으로 모험을 떠나게 만든다. 포르투갈은 유럽대륙의 서쪽 끝이라 다른 나라의 품종과 섞이지 않고 떼루아에 맞는 품종이 잘 보존되고 있다.
◆알렌테주의 보석 비디게이라
리스본에 차로 3시간을 달려 알렌테주로 들어서자 지평선이 보이는 광활한 들판에 올리브 농장과 포도밭이 번갈아 등장한다. 가도 가도 끝없이 나타나는 포도밭은 역시 포르투갈의 최대 와인산지답다. 포르투갈 와인 산지는 14개이며 31개 DOC에서 와인을 생산한다. 이중 리스본 동쪽 알렌테주는 포르투갈 국토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최대 와인산지다. 평야지대라 포도재배가 쉽고 기계수확이 가능해 가성비 뛰어난 와인이 생산된다.
포도가 자라는데 매우 이상적인 기후도 지녔다. 바다와 멀리 떨어져 있고 스페인과 인접한 알렌테주는 매우 건조하고 일교차가 큰 대륙성 기후를 띤다. 여름철 한낮에는 섭씨 40도까지 치솟지만 밤에는 섭씨 19도로 뚝 떨어진다. 이런 기후에선 낮에 포도의 당도가 쭉쭉 올라가고 밤엔 포도가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 신선한 산도를 잘 움켜쥐기에 당도와 산도의 밸런스 뛰어난 포도가 만들어진다.
대표적인 곳이 ‘포르투갈 와인의 보석’으로 소문난 알렌테주 비디게이라다. 알렌테주의 주요 생산지는 비디게이라, 보르바(Borba), 에보라(Evora), 그란자-아마렐레야( Granja-Amareleja), 모우라(Moura), 포르탈레그리(Portalegre), 레돈도(Redondo), 레겐고스(Reguengos) 등 8곳이다. 화강암 토양인 포르탈레그리 와인은 신선함과 복합미가 뛰어나다. 보르바, 에보라, 레돈도, 레겐고스 와인은 신선한 과일향이 돋보이며 우아한 매력을 지녔다. 남쪽의 그란자-아마렐레야, 모우라, 비디게이라는 가장 척박한 땅으로 포도가 살아 남기위해 뿌리를 깊숙하게 내리면서 집중도가 뛰어나면서 미네랄이 좋은 와인이 생산된다.
◆올드바인 생명력을 와인에 담다
비디게이라에서 요즘 핫한 와이너리 퀸타 도 파랄(Quinta Do Paral)로 들어서자 커머셜 디렉터 마리아 피카(Maria Pica)가 반가운 미소로 맞는다. 지난해 한국에서 열린 론칭행사에서 만난 그를 다시 보니 기쁨이 두배다. 와인은 현재 수입사 이코앨앤비를 통해 한국 소비자와 만나고 있다. 퀸타 도 파랄은 바로 명품 캐리어 브랜드 ‘리모와(Rimowa)’의 전 오너 디터 모르첵(Dieter Morszeck)이 설립한 와이너리. 그는 일생의 꿈인 포르투갈 최고의 명품 와인을 선보이겠다는 일념으로 리모와를 매각하고 2017년 와이너리를 일궜다.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세계 유명 와인 품평회에서 다양한 메달을 수상하며 알렌테주를 대표하는 와이너리로 급성장했다. 포르투갈 프로축구 2022-2023 프리메이라리가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한 벤피카가 구단의 공식 와인으로 선정했을 정도다. 이유가 있다. 대량으로 기계수확하는 알렌테주의 보통 와이너리와 달리 수령 50년 이상의 포도를 손수확해서 만들기 때문이다. 척박한 땅에서 자라는 올드바인은 깊게 뿌리를 내리면서 다양한 지층의 성분을 포도에 저장하기에 집중도가 뛰어나고 복합미가 풍성해진다.
알렌테주 스타 와인메이커 루이스 모르가도 레아우(Luis Morgado Leao)를 모셔온 것도 뛰어난 와인이 탄생한 배경이다. 루이스를 따라 올드바인 포도밭으로 들어서니 이리저리 비틀리며 자란 굵은 몸통을 자랑하는 올드바인들이 영험한 기운을 내뿜으며 도열해 있다. 포도밭 한가운데 선 커다란 나무는 눈을 의심하게 만든다. 어른 세명이 팔을 활짝 벌려야 겨우 껴안을 수 있는 올리브 나무로 무려 600살을 훌쩍 넘겼다. 마리아가 좋은 기운이 몸속으로 전달된다며 안아보란다. 눈을 감고 올리브 나무를 두 팔로 꼭 안는다. 바람에 사각거리는 올리브 이파리와 새소리가 가슴 깊이 스며들며 대자연의 싱싱한 생명력이 몸에 고스란히 전달되는 기분이다.
셀러로 들어서니 오크통에서 와인이 맛있게 익어가는 중이다. 흙으로 빚은 앙포라와 콘크리트 탱크, 여러해 사용하는 대형 나무통 뱃도 눈에 띈다. 루이스는 신선한 과일향과 생기발랄한 산도를 최대한 뽑아내기 위해 산소 접촉을 절제하는 이런 다양한 양조방식을 사용한단다. 테이스팅룸으로 들어서자 마리아가 새집처럼 생긴 나무통을 내미는데 박쥐의 안식처다. 박쥐가 해충을 잡아먹기 때문에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도 건강한 포도를 재배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설명이다. 자연을 존중하는 와이너리의 철학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와이너리 인근에 럭셔리 부티크 호텔도 곧 오픈할 예정이다. 햐얀색 외관에 포르투갈 특유의 붉은 지붕을 얹은 이국적인 호텔로 들어서자 마치 동화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하다. 포도밭을 배경으로 수영을 즐길 수 있는 풀장과 미쉐린 가이드 스타급 수준의 레스토랑까지 갖췄다. 또 컨퍼런스와 이벤트홀, 피트니트 센터에 강사와 함께 요리도 만들어 볼 수 있는 키친랩까지 갖췄으니 휴가를 보내기에는 이보다 완벽할 수 없다. 조만간 알렌테주 와이너리 투어의 명소가 될 것 같다.
루이스가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며 아린또 품종으로 빚은 전통방식 스파클링 와인 한잔을 건넨다. 상큼한 산도와 부드러운 버블, 방금 즙을 짜낸 듯한 신선한 복숭아와 사과향에 효모향까지 어우러지니 여행의 피로가 순식간에 날아간다. 아린또 품종은 산도가 높아 포르투갈에서 스파클링 와인에 많이 쓰이는 품종이다. 복합미가 뛰어난 매우 우아한 품종으로 리슬링과 비슷한 아로마 캐릭터도 지녀 장기 숙성도 잘 된다. 포르투갈에서도 호텔에만 공급하는데 조만간 한국에 수입될 예정이다.
퀸타 도 파랄 비냐스 벨류스 오리젬(Vinhas Velhas Origem)은 50년 수령의 토착품종 안타옹 바즈 100% 빚는다. 비냐스 벨류스는 올드바인이란 뜻이다. 이 품종은 알렌테주에서만 생산되는 토착 품종이다. 기본급 와인을 잘 만드는 와이너리는 모든 와인을 잘 만드는데 퀸타 도 파랄이 그렇다. 기본급 클래식 화이트는 안타옹 바즈를 주품종으로 베르데호, 베르멘티노, 비오니에를 섞어서 만든다. 클래식 화이트는 코에 갖다 대는 순간 화이트 페퍼가 비강을 파고 들며 잠시후 깨볶는 향으로 이어진다. 상큼한 귤껍질의 시트러스향으로 시작돼 잔을 흔들면 파인애플, 패션후르츠 등 열대과일향이 피어나며 뛰어난 밸런스와 우아한 산미가 돋보이고 여운도 길게 이어진다. 이런 부르고뉴 빌라주급 샤르도네 같은 우아함이 오리젬에서 몇배로 증폭된 느낌이다. 토착품종의 잠재력이 올드바인과 루이스의 손길을 거쳐 드디어 폭발한 모양이다. 평론가들에게서 좋은 점수를 받을 것 같다.
퀸타 도 파랄 비냐스 벨류스 브란코(Vinhas Velhas Branco) 역시 50년 수령의 안타옹 바즈 70%, 페룸 30%를 섞어 토착품종의 매력을 극대화시켰다. 깊고 우아한 효모향과 상큼하면서 풍부한 열대과일향, 미네랄이 긴 여운을 남긴다.
퀸타 도 파랄 리제르바 틴토는 알리칸테 부셰 40%, 카베르네 소비뇽 40%, 말벡 10%, 마르셀란 10%를 섞어 만들며 프렌치 오크와 미국 오크에서 16개월 숙성한다. 블랙베리 블랙체리 등 농익은 검은 과일향으로 시작해 시간이 지날수록 우아하면서 스파이한 검은 후추향, 삼나무향이 피어 오르며 우아한 피니시는 길게 이어진다.
퀸타 도 파랄 비냐스 벨류스 틴토(Vinhas Velhas Tinto)는 50년 수령의 아라고네즈 50%, 틴타 그로사 50%로 만든 플레그십 레드로 프랑스 오크에서 18개월 숙성한다. 붉고 검은 과일향과 깊고 고요한 숲속에 서 있는 듯한 흙내음, 스파이시한 노트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지고 벨벳처럼 우아하고 부드러운 탄닌이 돋보이며 숙성잠재력이 뛰어난 와인이다. 퀸타 도 파랄은 주정강화 와인 콘테사 1703(Condessa 1703)도 선보이고 있는데 디저트와 함께 즐기기 좋다.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꿀맛이다.
알렌테주의 또 다른 와인산지 에보라는 고대 로마시대의 역사를 간직한 도시여서 함께 묶어서 여행하기 좋다. 파르테논 신전 축소판으로 원형이 잘 보존된 템플 로마노가 인상적이다. 에보라 대성당 지붕 위에 오르면 고즈넉한 마을 풍경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17세기에 지은 에보라 뼈 예배당도 놓치지 말기를. 포르투갈에서 가장 오래된 뼈 예배당으로 5000구의 뼈로 벽, 기둥, 천정을 장식해 간담이 서늘하다. 예배당 입구 ‘우리, 여기있는 뼈들이 너희를 기다린다’ 문구는 짧은 인생을 사는 우리네 삶을 돌아보는 깊은 울림을 준다.
최현태 기자는 국제공인와인전문가 과정 WSET(Wine & Spirit Education Trust) 레벨3 Advanced, 프랑스와인전문가 과정 FWS(French Wine Scolar), 뉴질랜드와인전문가 과정 등을 취득한 와인전문가입니다. 매년 유럽에서 열리는 세계최대와인경진대회 CMB(Concours Mondial De Bruselles) 심사위원, 소펙사 코리아 소믈리에 대회 심사위원을 역임했고 2017년부터 국제와인기구(OIV) 공인 아시아 유일 와인경진대회 아시아와인트로피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보르도, 부르고뉴, 상파뉴, 루아르, 알자스와 이탈리아, 포르투갈, 호주, 독일 체코, 스위스, 조지아, 중국 등 다양한 국가의 와이너리 투어 경험을 토대로 독자에게 알찬 와인 정보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