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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엔 단 32점 뿐… 나비박사 ‘석주명’ 표본, 일본 대학 소장 확인

김명지 기자 2024. 2. 25.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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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엔 단 32점 뿐… 나비박사 ‘석주명’ 표본, 일본 대학 소장 확인

'나비박사' 석주명 선생의 나비 표본을 일본 규슈대학이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석 선생이 1940년에 낸 '조선산 나비 총목록'이 영국 왕립학회 도서관에 소장돼 있을 정도다.

석 선생은 자신을 이어서 표본을 관리할 사람이 없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채집한 75만 마리 나비 가운데 60만 마리의 표본을 스스로 불태웠고, 나머지 15만 마리 표본은 서울 남산 국립과학박물관에 보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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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선생 스승 재직한 일본 규슈 대학
석주명 선생(위 사진). 석주명 선생이 직접 채집해 만들어 놓은 우리나라 희귀종 나비표본. / 조선일보 DB

‘나비박사’ 석주명 선생의 나비 표본을 일본 규슈대학이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5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국립생물자원관은 일본 규슈대가 석 선생 표본을 소장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조만간 표본 조사와 확보를 위해 대학 측과 접촉할 예정이다. 규슈대학은 석 선생의 스승인 일본 곤충학 권위자 오카지마 긴지 교수가 재직한 곳이다. 석 선생은 오카지마 교수 권유로 한반도 나비를 연구했다.

석 선생은 일제 강점기 한반도의 나비를 채집하고 분류한 세계적인 나비학자다. 석 선생이 1940년에 낸 ‘조선산 나비 총목록’이 영국 왕립학회 도서관에 소장돼 있을 정도다.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인 동물학자들은 나비들이 조금만 다른 특징이 있으면 새로운 종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한국의 나비가 무려 844종까지 늘어났다.

석 선생은 이를 바로 잡고자 배추흰나비 16만여 마리의 무늬를 비교했고, 무늬가 다르다고 해서 다른 종이라고 판단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같은 종류라도 성, 계절에 따라 몸의 크기와 무늬가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고, 한국의 나비가 총 248종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는 이를 80편이 넘는 논문을 통해 남겼다.

석 선생이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채집하고 연구한 나비가 약 75만 마리에 이른다. 하지만 그가 직접 수집한 표본은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에 소장된 나비 32종의 원형 액자 표본이 유일하다.

석 선생은 자신을 이어서 표본을 관리할 사람이 없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채집한 75만 마리 나비 가운데 60만 마리의 표본을 스스로 불태웠고, 나머지 15만 마리 표본은 서울 남산 국립과학박물관에 보관했다.

이후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국립과학박물관이 포격을 맞으면서 15만 마리 표본은 모두 불탔다. 석 선생은 표본을 지키기 위해 서울에 남았으나, 조선 인민군으로 오해를 받아 총에 맞고 유명을 달리했다.

석 선생은 우리말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다. 각 지역을 다니며 나비를 채집하는 동안 지방마다 녹아 있는 독특한 방언에 흥미를 느껴 ‘제주도 방언집’ ‘조선 나비 이름 유래기’ 등 언어 관련 책 여러 편을 남겼다. 이는 우리말로 나비 이름 짓기로 이어졌다. 그 당시에는 우리말로 된 나비가 거의 없었다. 이에 석 선생은 조선 나비 248종에 우리말 이름을 직접 지었다.

석 선생은 이 같은 연구 성과를 인정받아 전 세계에 30여명밖에 되지 않는 세계나비학회 회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석 선생은 영국 ‘왕립 아시아학회 한국지회’ 의뢰로 ‘조선산 나비 총목록’을 펴냈는데, 일제 강점기에 조선의 학자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연구서를 내놓은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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