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냄새나서 사람들이 피하나’…나를 갉아먹는 ‘관계사고’
체취 강박증
재활 돕는 30대 남성 물리치료사
긴장하면 땀…악취 날까 전전긍긍
자신만의 상상 ‘피해의식’ 갇혀
약물치료 뒤 ‘인지 왜곡’도 교정
30대 남성 민영(가명)씨는 병원에서 물리치료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가 만나는 환자들은 척추협착증이나 디스크로 허리가 좋지 않은 분들입니다. 그는 환자들의 통증이 줄어들도록 물리치료를 해주고, 재활을 돕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여느 때와 같이 환자에게 물리치료를 하는데 갑자기 담당 환자가 손으로 코를 쥐며 고개를 젓는 일이 있었습니다. 민영씨가 놀라서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니 환자는 그에게 ‘병원 악취’가 나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물리치료를 끝내고 화장실에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니 몸에 땀이 많이 나 있었습니다. 민영씨는 어릴 때부터 땀이 많았는데, 특히 긴장하면 목욕을 하고 난 것처럼 온몸이 젖을 때가 있었습니다. 혹시 환자가 자신의 땀 냄새를 맡고 불쾌하지 않았을까 걱정되었습니다.
며칠 뒤 근무 스케줄을 확인하던 민영씨는 자신이 담당해온 환자 중 몇명이 다른 물리치료사로 치료 일정을 변경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도 이런 일이 자주 있었는데 그는 이제서야 자신의 몸에서 냄새가 나서 환자들이 피한 게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는 일을 시작하기 전에 화장실에 가서 씻고 향수를 뿌리지 않고서는 일을 하기 힘들어졌습니다. 환자들이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리면 ‘내가 냄새가 나서 그런가’ 하는 생각에 덜컥 심장이 내려앉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여러번 옷 갈아입고 향수 뿌리고
어느 날 출근길 지하철에선 민영씨 옆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이 갑자기 맞은편으로 자리를 옮겼고, 민영씨의 얼굴을 외면하는 듯했습니다. 민영씨는 옆 사람이 자신의 냄새 때문에 다른 곳으로 옮겼는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 뒤로 민영씨는 자신의 몸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을 피한다는 믿음이 강해졌습니다. 셔츠를 가지고 나와서 하루에도 몇번씩 옷을 갈아입고 향수를 뿌려야 할 정도로 냄새에 대한 집착이 강해졌습니다.
그러던 중 민영씨는 부모님의 소개로 선을 보게 되었습니다. 선보는 자리에서 자신의 몸에서 냄새가 나지는 않는지, 만약 냄새가 난다면 어떤 냄새가 나는지 상대방에게 계속 물어보게 되었습니다. 상대방은 민영씨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받았고 결국 다시 만날 약속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민영씨는 자신의 몸에서 냄새가 나기 때문에 상대와 다음 만남을 이어나가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민영씨는 그 뒤로도 자신의 몸에서 냄새가 나지 않을까 걱정하며 과도하게 긴장했고, 그 때문에 땀이 점점 더 많이 났습니다. 땀이 나면 바로 씻고 옷을 갈아입고 향수를 뿌리지 않고는 못 견뎌, 계속 같은 행동 패턴을 반복했습니다. 가족들이 아무리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다”고 해도 믿지 않았습니다. 냄새에 집착하는 것 외에 민영씨는 다른 문제가 없었지만, 가족들은 민영씨가 냄새에 너무 과도하게 신경 쓰는 게 문제라며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에 함께 방문하자고 했습니다.
민영씨는 검사 결과 불안·우울감이 높고 자신의 체취와 관련된 생각이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냄새와 관련된 것 이외에 논리적인 사고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민영씨는 이 생각이 지나치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떨쳐버리기 무척 힘들었습니다. 주위에서 일어나는 상황들이 자신의 냄새와 관련이 있다는 과도한 연관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이를 ‘관계사고’(Idea of reference, IOR)라고 하는데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동 또는 환경 현상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기 위해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말·행동·현상이 객관적으로는 자신과 무관한데도 스스로 연결고리를 찾고 이를 사실이라고 여기게 됩니다. 관계사고가 있으면 자신만의 상상 체계를 만들고 이를 통해 부정적인 생각이나 피해의식을 갖고 현실을 해석하게 되어 예민해지고, 우울이나 불안이 심해질 수 있습니다.
☞한겨레S 뉴스레터 구독하기. 검색창에 ‘한겨레 뉴스레터’를 쳐보세요.
☞한겨레신문 정기구독. 검색창에 ‘한겨레 하니누리’를 쳐보세요.
청소·균형·위해…다양한 강박
민영씨는 강박증에 우울증이 함께 있는 것으로 진단됐습니다. 강박증은 강박적 사고(obsession) 및 강박 행동(compulsion)을 특징으로 하는 질환입니다. 강박증이 있으면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어떤 생각이나 충동·장면이 침투적이고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강박 사고를 경험하게 됩니다. 강박 사고나 완고하게 따르는 규칙에 의해 일어나는 반복적인 행동 또는 심리 내적인 행위인 강박 행동을 보이게 됩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개인마다 다르지만 청소(오염 강박 사고와 정리 강박 행동), 균형(대칭성에 대한 강박 사고와 반복하기, 정리정돈하기, 숫자 세기), 금기시된 생각들(공격적, 성적이거나 종교적인 강박 사고와 관련 강박 행동), 위해(자해나 타해에 대한 공포와 확인하기 강박 행동)의 증상이 있습니다. 강박 증상이 심해지면 우울증이 동반되고 우울증이 동반되면 자신의 강박 증상이 더 힘들게 느껴지고, 불안으로 관계사고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민영씨는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약물치료와 함께 인지행동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강박증은 약물치료를 통해 60∼70% 정도 증상이 감소합니다. 인지행동치료는 왜곡된 생각을 교정하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피하거나 고개를 돌리는 것이 자신의 냄새 때문이라는 ‘인지 왜곡’을 교정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서 멀어질 수도 있고 가까워질 수도 있고, 이러한 일들은 무작위로 발생합니다. 그런데 타인과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상황이 자신의 냄새 때문에 발생했다고 관련성을 부여하게 되면 강박적인 사고가 있는 사람은 여기에 집착하게 됩니다. 행동치료를 통해 그 생각이 언제 발생하는지, 어느 경우에 심해지는지 확인하고 왜곡을 스스로 바꿔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민영씨는 담당 의사 상담과 약물치료를 통해 냄새에 집착하는 강박 증상을 줄일 수 있었습니다. 그 뒤 다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할 때 자신에게서 냄새가 나는지 목록으로 만들어보았습니다. 그 각각의 행동들이 자신의 냄새와 연결되어 있다는 인지 왜곡을 교정했습니다. 치료를 통해 민영씨는 자신의 냄새에 대한 집착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이제 관계사고도 없어져서 사람들의 행동을 자신의 냄새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치료 뒤 긴장이 줄어들자 땀도 덜 나게 되고 에너지 소모도 줄어들었습니다. 이제 물리치료사로서 일을 하는 데 훨씬 마음이 편해지고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책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상담소’를 썼습니다. 글에 나오는 사례는 특정인을 지칭하지 않으며, 이해를 돕기 위해 여러 경우를 통합해서 만들었습니다. 자세한 것은 전문의와의 상담과 진료가 필요하며, 쉽게 자가 진단을 하거나 의학적 판단을 하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트럼프, ‘헤일리 안방’ 사우스캐롤라이나 경선 승리…승부 쐐기
- 한동훈이 선택한 함운경 “낮은 출산율은 운동권 탓”
- 민주당 “한동훈, 야당 스토킹 말고 김건희 특검법 결단해야”
- 징병제 지속 불가능…전 국민 공익복무하는 ‘공역제’ 어떨까
- 군 미필 전공의, 사직서 수리되면 곧장 입대해야
- 오늘도 달 보긴 어려울 듯…월요일 영하 5도까지
- “어용노조가 직장 괴롭힘 조사…피해자 의견도 안 듣고 끝냈어요”
- 정부 “국립대 의대 교수 1천명 증원”…의협 “어디서 구하냐”
- [만리재사진첩] 159개 깃발 든 이태원참사 유가족 “윤석열 정권 심판!”
- 영화 ‘파묘’ 3일째 100만 관객…‘서울의 봄’보다 빠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