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업계 ‘전청조’가 돌아왔다...그는 누구, 지금은 뭐하나 봤더니 [김기정의 와인클럽]

김기정 전문기자(kim.kijung@mk.co.kr) 2024. 2. 25.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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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정의 와인클럽 38- 루디 쿠니아완의 귀환
와인업계 전청조로 불리는 루디 쿠니아완. 인스타그램 캡쳐
와인업계의 ‘전청조’ 같은 인물이 있습니다. 가짜 와인을 제조한 혐의로 지난 2012년 미연방수사국(FBI)에 체포된 중국계 인도네시아인 루디 쿠니아완(Rudy Kurniawan) 입니다.

진짜보다도 더 진짜 같은 가짜와인을 만들어 세상을 놀라게 했던 쿠니아완이 7년간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4년 전 풀려났습니다. 감옥에서 풀려난 그가 그동안 어떤 활동을 했을지가 와인업계의 큰 관심사였습니다.

24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비넥스포 파리에 참가자들이 입장을 위해 줄을 서 있다. 비넥스포
저는 지난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와인 파리 및 비넥스포 파리’에 다녀왔습니다. 파리 와인 박람회 ‘비넥스포(vinexpo)’는 독일 프로바인(Prowein), 이탈리아 빈이탈리(Vinitaly)와 함께 세계 3대 와인 박람회로 불리는데요, 이곳에서도 쿠니아완의 ‘귀환’이 참석자들 사이에 화제로 떠올랐습니다.

감옥에서 나온 그의 활동이 조금씩 세상에 알려졌기 때문인데요. 쿠니아완은 싱가포르 프라이빗 파티에서 와인제조가로 명성을 날리며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고 합니다. 파티 참석자들은 최고급 와인 로마네 콩티, 페트뤼스를 쿠니아완이 만든 와인과 비교 시음했는데 그 결과가 흥미롭습니다.

이번 주 김기정의 와인클럽은 희대의 사기꾼 루디 쿠니아완의 귀환과 관련한 이야기입니다.

싱가포르의 ‘심판’
미국서 체포되기 전 루디 쿠니아완(오른쪽)의 모습. 당시 그는 와인수집가로 이름을 날렸다. 인스타그램 챕쳐
와인 전문매체인 와인서처(Wine-Searcher)는 위조 와인 전문가인 머린 다우니(Maureen Downey)의 말을 인용해 쿠니아완의 복귀 활동을 비교적 상세하게 전했습니다. 당시 상황을 재구성해 봅니다.

지난해 7월 싱가포르의 고급 회원제 클럽인 파인스 클럽(Pines Club). 회원들이 각자 가져온 와인들을 꺼냅니다. 로마네 콩티 1990년 빈티지, 페트뤼스 1990년 빈티지. 와인 애호가들이라면 평생 한 번쯤은 마셔봤으면 하는 최고급 와인들입니다.

7명이 시음자로 나섰습니다. 이들은 진품 로마네 콩티, 진품 페트뤼스와 쿠니아완이 제조한 와인을 놓고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진행합니다. 블라인드 테이스팅이란 와인의 라벨을 가린채 시음을 통해 와인의 품질을 평가하는 방법입니다.

결과는 쿠니아완이 만든 와인의 승리. 참석자 중 한 명이 남긴 시음평입니다.

“사람들은 루디의 와인을 좋아했어요. 왜냐하면 더 신선하게 느껴졌거든요.”

루디 쿠니아완은 파인스 클럽에서 열린 블라인드 테이스팅 한 달 전에도 유사한 이벤트를 벌였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15명이 참석했는데 참석자 중 대다수가 쿠니아완이 만든 와인이 더 맛있다고 평가했다네요. 이때도 도멘 자크 프레드릭 뮈니에 르 뮈지니 1982년 빈티지, 슈발 블랑 1982년 빈티지 등 최고급 와인과 쿠니아완이 만든 와인이 경합을 벌였습니다. 또 다른 시음평입니다.

“루디의 와인에 대한 지식, 상상력, 기술은 마술 같아요. 루디 쿠니아완은 와인 천재입니다.”

와인 천재, 쿠니아완은 누구인가
12일(현지시간) 파리에서 열린 비넥스포 현장에서 참가자들이 와인을 시음하고 있다. 비넥스포
파리 와인 엑스포인 비넥스포 참석자 일부는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심지어 ‘싱가포르의 심판’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지난 1976년 파리에서 열린 블라인드 테이스팅에서 캘리포니아 와인이 프랑스 최고급 와인을 제치고 높은 점수를 받게 된 사건을 ‘파리의 심판’이라고 부른 것처럼 이번에 루디가 만든 와인이 세계 최고급 와인을 이긴 사건을 놓고 ‘싱가포르의 심판’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것이지요.

쿠니아완이 누구인지 모르는 분들을 위해 그에 대해 간단히 설명할게요. 쿠니아완은 인도네시아에서 태어났습니다.

집안의 사기 전력이 화려합니다. 루디 쿠니아완의 외삼촌은 2억달러(약 2700억원)의 은행사기 혐의로 종신형을 받았지만 해외도피했습니다. 또 다른 외삼촌은 4억2000만달러(약5600억원)의 횡령 혐의로 17년 형을 받고 수감 중 뇌물을 주고 탈옥에 성공했습니다.

가짜와인 제조 및 판매 혐의로 미국서 체포된 루디 쿠니아완이 7년감의 감옥생활을 마치고 2020년 인도네시아로 추방될 떄의 모습. 미 이민세관단속국(ICE)
쿠니아완도 처음엔 와인 수집가로 활동했습니다. 프랑스 부르고뉴의 최고급 와인 로마네 콩티를 좋아해 닥터 콩티(Dr. Conti)로 불렸습니다. 그는 미국서 수십억원어치의 와인을 구매했고, 때마침 와인가격이 급등하자 다시 경매에 되팔기도 했습니다. 그는 진품 와인을 사고 되파는 과정에서 시세차익만 본 게 아니라 자신이 직접 가짜 와인을 만들어 경매에 되팔기 시작합니다.

욕심이 과했던 것일까요? 아니면 그의 와인제조 기술을 너무 믿었을까요

결국 쿠니아완은 수백만달러에 달하는 가짜 와인을 판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2014년 8월 10년 형을 선고받습니다. 그는 2006년에만 경매를 통해 1만2000병의 가짜 와인을 판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2020년 11월 석방된 쿠니아완은 인도네시아로 추방됐고 그의 이야기는 신 포도(Sour Grapes)라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를 통해 2016년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한국어 제목은 ‘타짜의 와인’입니다. ‘타짜의 와인’은 김기정의 와인클럽 16회에서 다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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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법적인 와인 제조자로 부활할까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쿠니아완은 합법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우려가 있는 게 사실입니다. 쿠니아완이 친구들을 위해 가짜 와인을 만들었다면 이를 시장에 내다 팔 수도 있지 않을까요? 쿠니아완은 과거 고급와인의 빈 병을 구해다 자신이 만든 와인을 채워 팔기도 했습니다.

와인 제조가로서 쿠니아완의 능력은 전문가들도 인정할 수준이었습니다. 이름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쿠니아완에 와인 제조 컨설팅을 의뢰한 와이너리도 나오고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루디 쿠니아완의 재판에 증거물로 제출된 와인들. 페트뤼스 매그넘 사이즈(맨 왼쪽)와 로마네 콩티.
그는 상대적으로 가격이 싼 와인을 혼합해 최고급 와인의 맛을 내는 독특한 비법을 가지고 있는데요. 1945년 샤토 무통 로칠드의 맛을 내려면 산화된 나파밸리 와인 4분의 1과 보르도 와인 4분의 1 섞어야 한다는 둥 그만의 제조법이 있었던 겁니다.

그가 가짜와인을 팔다 적발된 것도 와인의 맛이 다르거나 풍미가 없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존재하지도 않은 와인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경매에 나온 와인 중에는 페트뤼스 매그넘 1921년 빈티지도 있었는데 페트뤼스는 1921년 빈티지 매그넘을 만들지 않았던 겁니다.

국내 한 와인수입사의 광고. 로마네 콩티 한 병이 6500만원에 달한다. 인스타그램 캡쳐
사실 페트뤼스나 로마네 콩티 같은 초고가 와인은 와인 생산자가 아니고서야 ‘맛’으로 ‘가짜’를 구분하는 건 쉽지 않을 겁니다.

최근 국내 한 와인수입사가 로마네 콩티 판매광고를 올렸는데 가격이 한 병에 6500만원이었습니다. 이런 와인을 매일 마실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같은 와인이라도 그동안의 보관 상태, 또 마실 때의 온도, 음식 등에 따라 맛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이건 가짜 와인같아요”라고 말하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영화 캐치 미 이프 유캔(Catch Me If You Can)을 보면 희대의 사기꾼이자 수표 위조범으로 활동한 프랭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체포된 뒤 결국에는 위조 수표 감별사로 활동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루디 쿠니아완이 자신의 재능을 살려 천재 와인제조자로 새로운 인생을 설계할지 아니면 다시 범죄의 길로 들어서게 될지 와인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김기정 매일경제신문 컨슈머전문기자가 와인과 관련해 소비자들이 궁금해하는 내용들을 풀어드립니다. 김 기자는 매일경제신문 유통팀장, 식품팀장을 역임했고 레스토랑 와인 어워즈(RWA), 아시아와인트로피 , 한국와인대상 심사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기자페이지에서 ‘구독’을 누르면 쉽고 빠르게 와인과 관련한 소식을 접할 수 있습니다. 질문은 kim.kijung@mk.co.kr로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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