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0년간 축구 국가대표팀은 ‘원팀’이 아니었다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2024. 2. 25.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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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해외파-국내파 갈등에서 최근 세대 간 갈등으로···감독 카리스마만으로 문제 해결할 수 없어

(시사저널=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축구 국가대표팀의 오랜 키워드는 투혼이었다. 태극마크를 다는 그 순간 국가를 위해, 팀을 위해 헌신하는 애국지사가 돼 어떤 희생과 고통도 감수할 것이라는 게 오랜 믿음이었다. 축구 국가대표팀은 그런 '선공후사'의 마음을 지닌 조직으로 비춰졌고, 큰 성공을 거두면 감독의 리더십과 선수들의 관계는 조직관리론의 새로운 모델처럼 조명됐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최근 끝난 카타르아시안컵에서 한국은 무기력한 경기로 일관했다. 부임 후 1년간 각종 논란을 일으킨 클린스만 감독에게 비판의 초점이 맞춰진 시점에 모두가 예상 못 한 사실이 알려졌다. 요르단과의 4강전 하루 전날 대표팀 숙소 식당에서 벌어진 이강인과 손흥민의 물리적 충돌이었다. 중요한 경기 전날 가벼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이강인과 젊은 선수들을 손흥민을 비롯한 고참들이 꾸짖으며 시작된 언쟁이 몸싸움으로 번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손흥민은 손가락을 다치는 부상까지 입었다. 

국민은 큰 충격을 받았다. 손흥민은 대표팀 주장이자 역대 최고의 선수고, 이강인은 그 뒤를 이을 미래의 스타다. 아홉 살 차이의 선후배 충돌, 그것도 관계자들의 각종 전언을 통해 어린 선수의 하극상으로 묘사되자 대표팀이 원팀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역대 가장 영향력이 큰 유럽파들을 중심으로 한 한국 축구의 '황금세대'가 나섰음에도 왜 64년의 비원이던 아시안컵 우승을 달성하지 못했는지 진단이 나왔다.

2월6일(현지시간) 2023 아시안컵 4강전 한국과 요르단 경기가 끝난 후 선수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 연합뉴스

팀보다 커진 선수들, 팀워크보다 각자도생

최근 10년간 대표팀 안에서는 잦은 잡음이 들렸다. 과거에는 지도자와 선수들 간 갈등과 항명이 있었다면, 최근에는 선수들 간 갈등이었다. 유럽을 비롯해 중동·일본·중국 등으로 향한 해외파와 K리그를 중심으로 한 국내파 간 갈등이 시작이었다. 일부 해외파가 많은 연봉으로 얻은 재력을 명품 등을 통해 과시하는 일이 생기며 국내파를 소외시킨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당시만 해도 해외파는 숫자가 적었다. 팀 운영 차원에서 최강희·홍명보 감독 등은 이 부분을 통제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해외파를 강하게 눌렀지만 그럴수록 반발만 거세졌다.

그 흐름이 이제는 세대 갈등으로 바뀌었다. 출생연도가 엇비슷한 선수끼리 그룹을 형성해 그들만의 세력을 이루고, 서로 기싸움을 주고받는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이미 지난해 초에는 손흥민과 김민재의 갈등설이 불거졌다. 두 선수가 서로의 SNS 팔로어를 취소하면서 시작됐다. 대표팀을 리드하는 고참급과 그에 못지않은 영향력을 지닌 96년생 멤버들 간 보이지 않는 갈등은 이전부터 조금씩 알려진 상황이었다. 결국 김민재가 먼저 사과하고, 손흥민도 화답하며 문제는 일단락됐다.

이강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아시안컵에서 그는 지난해 함께했던 아시안게임 멤버들, 20대 초반 또래 선수들과 어울렸다. 최근 표현에 따르면 이들은 주변 분위기나 조직의 원칙보다는 자신의 생각과 사고를 기반으로 행동하는 Z세대다. 이것이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집중하길 원했던 선배들과 대치되며 충돌까지 일어났다. 자율을 강조한 클린스만 감독의 팀 운영 원칙이 Z세대의 방임과 방종을 불렀다는 지적이다. 

최근 한국 축구는 각 포지션에서 역대 최고의 선수가 등장하고 있다. 공격의 손흥민, 허리의 이강인, 수비의 김민재는 과거 선배들이 보여준 기량을 아득히 넘어 유럽 최고 레벨에서 월드클래스로 인정받고 있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는 원팀의 정신을 넘어서는, 팀보다 더 가치가 높은 선수들이 등장한 것이다. 그런 현실 속에서 대표팀이 규율과 원칙을 느슨하게 하자 선수 개인의 우수한 기량과 소속팀의 위상이 대표팀 내 입지를 규정하는 바로미터가 되고 말았다.

사회적 분위기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불만이 있어도 뒤에서 분을 삭이는 정도로 마무리되던 것이 이제는 말과 행동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시대가 됐다. 열정페이를 지적하며 당당하게 반발하는 것이 요즘 세대다. 이강인의 경우 성장 환경이 판이하게 다른 케이스다. 10세에 스페인으로 가 그곳에서 줄곧 성장했다. 이런 상황이 사고의 차이를 부채질한다.

최근 일본은 이강인과 동갑내기인 젊은 에이스인 구보 다케후사의 발언에 충격을 받았다. 구보는 아시안컵 참가를 앞두고 "리그 중에 아시안컵이 열리는 게 아쉽다. 내게 돈을 주는 팀은 레알 소시에다드다"라고 말했다. 국가의 부름이 더 이상 영광스럽지 않다는 인식의 표현이었다. 우리보다 전력이 더 우위라는 평가가 있던 일본은 8강에서 탈락했고 구보의 발언은 다시 논란이 됐다. 

축구가 개인 스포츠라면 달라진 사고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는 오롯이 개인이 책임지면 된다. 문제는 축구는 팀 스포츠라는 사실이다. 개성의 문제, 사고의 차이, 감정의 충돌을 감수하면서 팀 안에서 공존하고 성과를 내야 한다. 손흥민이 최근 대표팀에서 벌어지는 갈등의 한 축이 되는 것은 주장으로서 팀의 정신을 이끌고, 때론 쓴소리를 해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최근 영국 런던에서 만나 아시안컵 대회 기간 중 다툼에 대해 화해한 손흥민과 이강인 ⓒ 연합뉴스

이강인과 손흥민은 화해했는데, 축구협회는?

그렇다고 대표팀의 갈등을 언제까지 가장 훌륭한 선수가, 선수들 내부의 리더가 책임질 순 없다. 선수들 간에 벌어진 문제지만 조직의 시스템을 보면 갈등을 관찰하고, 빠르게 조치를 취해 팀을 다시 조화롭게 만드는 감독의 능력이 중요하다. 뛰어난 감독의 능력 중 전술 이상으로 선수 관리의 리더십이 주목받는 것은 소위 말하는 빅클럽에서도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클린스만 감독은 선수들의 편의를 무조건 용인하는 방임의 리더십으로 일관했다. 축구협회도 책임 회피에만 바빴다. 

결국 이 문제는 결자해지 양상으로 갔다. 한국 시간으로 2월21일 오전 이강인이 자신의 SNS에 입장문을 올리고 사과했다. 파리에서 런던으로 날아가 손흥민을 직접 만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고, 대표팀의 다른 구성원들에게도 일일이 연락해 사과했다고 밝혔다. 손흥민도 곧바로 이강인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본인 SNS에 올리며 후배의 사과를 껴안았다. 선수들끼리 일단 갈등을 봉합하며 상처를 어루만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어른들의 역할은 사실상 없었다. 대표팀 내에 권위적 문화가 있는지, 자기중심적 문화가 만연하진 않은지 살폈어야 했다. 이를 통해 대표팀 운영방식에 개선이 필요하면 새로운 규율을 제시해야 했다.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과정에서 벌어지는 소통과 팀워크 문제를 언제까지 선수들 스스로 풀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대한축구협회는 이것이 새로운 감독 선임으로 모두 해결될 것이라고 착각하는 분위기다. 카리스마 있는 감독 한 명으로 이 문제가 해결될 문제였다면 지난 10년 사이 대표팀을 오간 7명의 감독 중 누군가는 이미 종결지었을 갈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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