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차전지·블록체인, 초전도체까지 합니다”… 만성 적자 연예기획사의 정체

이경은 기자 입력 2024. 2. 25. 08:42 수정 2024. 2. 26.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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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전도체 사업 추가’ 예고에 연이틀 상한가
[왕개미연구소]

신재생에너지, 블록체인·암호화폐, 이차전지, 무인 항공기, 커피 수입, 신문업, 경영컨설팅, 연료전지, 나노물질, 반려동물, 전자상품권, 환전·외화이체, 그리고 초전도체...

최수종·하희라 등이 소속돼 있는 연예기획사 ‘아센디오(옛 키위미디어그룹)’가 추진하겠다고 밝힌 신사업 리스트 중 일부다. 아센디오 정관에는 ‘사업 다각화’ 목적에서 추진 중인 신규 사업이 130개가 넘는다. 작년 10월에는 신규 사업을 한꺼번에 44개나 추가하기도 했다. 대부분 본업과 큰 연관이 없어 보이는 전문 분야다.

급기야 지난 21일엔 최근 국내 증시의 핫한 테마 중 하나인 ‘초전도체’를 사업 목적에 새롭게 추가할 계획이라고 공시했다. 이 소식이 알려진 22일, 아센디오 주가는 바로 가격제한폭(30%)까지 급등했다. 다음 날인 23일에도 아센디오는 상한가 행진을 이어갔고, 주가는 1960원에 마감했다. 최근 2년래 최고가다. 23일 하루 거래량은 3900만주에 육박해, 코스피 거래량 순위 1위였다. 사업 목적에 ‘초전도체’를 추가했을 뿐인데, 시가총액은 이틀새 829억원이나 불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정다운

✅만성 적자이지만 코스피 상장사

영화 ‘범죄도시’를 제작·배급하기도 했던 아센디오는 지난 1989년 상장 이후 숱한 부침을 겪었다. 지난 2019년에 완전 자본잠식에 빠져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까지 밟았고, 1년 넘게 장기간 거래가 정지되기도 했다. 지난 2020년 4월 회생절차가 종결되면서 거래가 재개됐다.

아센디오는 12년째 돈을 벌지 못하고 있는 만성 적자 기업이지만, 삼성전자·하이닉스 등과 똑같은 코스피 상장사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코스피는 한국 자본시장을 대표하는 만큼 상장 절차가 까다롭지만 상장 유지 조건은 허술해서 비상장 기업이 우회상장이나 인수·합병(M&A) 대상으로 눈독을 들인다”면서 “좀비 기업들은 상장사 지위를 유지하지 못하도록 엄격한 시장 감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정부의 밸류업(기업가치 개선) 프로그램이 성공하려면 저평가 기업들을 압박하는 것 뿐만 아니라, 재무 상태가 나쁘면서 테마성 공시를 남발해 개미들을 울리는 잡주를 걸러내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웃나라 일본은 ‘무늬만 상장사’인 좀비 기업들을 퇴출시키기 위해 주식시장 구조를 대대적으로 뜯어 고쳤다. 원래 1부, 2부, 마자스, 자스닥 등으로 나뉘어 있던 시장 구조를 지난 2022년 프라임(글로벌기업), 스탠다드(중견기업), 그로스(신흥기업) 등 3개로 재편한 것이다. 일본거래소그룹 관계자는 “상장사들은 시장별 상장유지 기준을 지키지 못하면 오는 2025년 3월부터 순차적으로 상장폐지된다”고 말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한유진

✅“신사업하겠다”고 했지만 결과는...

기업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신규 사업을 모색하는 것은 분명 필요한 과정이다. 절차적으로도 사업 목적 추가나 변경은 매우 간단하다. 주주 총회를 열어 정관만 바꾸면 된다.

그런데 증시에서 유행하는 ‘테마 업종’만 골라서 사업 목적에 추가하고, 주가 급등을 대주주의 돈벌이 기회로 삼는 행태가 늘고 있어 문제다. 세력이 주가를 인위적으로 띄우고 먹튀하는 과정에서 개인 투자자들은 심각한 손해를 입을 수 있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기업들은 수익 창출 목적에서 신사업을 추진하고 공시하는 것인데 (거래소에서) 이런 것까지 규제할 수는 없다”면서 “악의적으로 이용하는 기업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막는다면 선량한 기업까지 피해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개인 투자자 스스로 주의해서 매매해야 한다는 얘기다.

증권시장의 불법 행위를 감시하는 금융감독원은 ‘신사업 추가’ 관련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지난해 실태 조사를 진행했다. 7개 테마업종(메타버스, 가상화폐·NFT, 2차전지, 인공지능, 로봇, 신재생에너지, 코로나)을 신사업으로 추가한 233개 상장사의 사업 추진 현황을 점검했는데, 절반이 넘는 129개사(55%)에서 사업 추진 현황이 전혀 없었다.

금감원 관계자는 “신사업 추진 발표 이후 사업 진행이 부실한 기업에 대해서는 불공정거래 혐의 여부를 점검하고 필요하면 기획조사도 실시하겠다”면서 “특히 신사업 발표 이후 주가가 급등한 경우엔 매매 동향을 면밀히 점검하고 이상매매 발견시 신속 조사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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