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직도 자폐를 잘 모른다 [독서일기]
박재용 지음
이상북스 펴냄
신성아의 〈사랑에 따라온 의혹들〉(마티, 2023)은 독자를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데려간다. 국회의원 보좌관이던 지은이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이 소아백혈병 진단을 받자 직장에 사표를 내고 딸의 전속 간병인이 되었다. 할리우드의 재난 영화는 가족의 재발견으로 끝난다. 갈등과 앙금은 해소되고, 용서와 화해를 바탕으로 가족의 귀중한 가치를 깨닫는 것이다. 집안에 중환자가 생겨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간병기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지은이도 새삼 놀랐듯이 “이 글은 소재를 배신하고 말았다. 아이의 병에서 출발했으면서도 아이를 중심으로 한 진단-치료-종결의 연대기는 아니게 된 것이다.”
지은이는 책 곳곳에서 “정치의 실패는 사랑을 무너트린다”라고 말한다. 왜 그럴까. 먼저 정치는 이견을 조정하며, 모두에게 가장 이로운 해결 방식을 찾기 위해 소통하고 타협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정치의 이런 가치는 민주주의 시스템뿐만 아니라 사랑의 지속에도 필요하다. 그런데 사랑하는 두 사람이 가족을 이루고 나면, 어느 일방에 의해 정치는 폐기된다. 가정에서 이뤄지는 의사결정은 구성원들의 인생에서 결정적 분기점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결정은 정치를 건너뛴다. 예컨대, 아이가 중병에 걸렸을 때 직장을 사직해야 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답정너’는 모성을 가졌다고 상정되는 엄마, 돌봄에 자질 있는 여성이라고 말한다. 상호소통과 타협 없이 전가되는 일방적인 희생은 사랑을 위태롭게 한다.
두 번째 이유는, 정치가 시대의 변화에 맞는 정책을 내놓지 못할 때이다. 한국의 합계출산율 0.78명은 다른 나라의 언론과 학자들이 걱정할 만큼 심각하지만 정치권은 육아와 돌봄노동의 문제를 바로 보지 못한다. “여성들은 사회 진출이 늘어나며 엄연히 공적 역할을 획득했는데 남성들은 가정 내 역할을 바꾸지 못했다. 남성들이 새로운 역할에 적응하도록 도와야 할 사회가 기존의 고정된 성역할을 은밀한 방식으로 강화해온 탓이 크다. 이 낡은 프레임을 바꾸지 않는 이상, 한국의 출산율은 단 한 계단도 오르지 못할 것이다.” 정치의 실패는 연애나 결혼, 출산율만 무너뜨리지 않는다. 한국의 암 환자는 215만명인데, 암을 국가적 관리의 대상이 아닌 불운한 극소수에게 닥치는 재난으로만 여기면 감당 못할 약값과 병원비로 가족이 깨지고, 가족을 버리는 일이 생긴다. 도처에서 사랑이 무너지는 것이다.
〈물욕의 세계〉(현암사, 2024)를 쓴 누누 칼러는 그린피스에서 소비자 대변인으로 6년 가까이 일하기도 한 환경운동가이자, 10년간 비판적 소비 연구를 하면서 윤리적 소비를 전파해왔다. 지은이는 두 가지 활동에 열심이었으면서도 자신의 쇼핑 욕구는 신념대로 되지 않았고, 그 때문에 죄책감과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그런 지은이는 이 책에서 쇼핑 중독의 원인을 여러 시각으로 헤쳐 보인다. 제일 먼저 나온 신경생물학적(혹은 행동생물학적) 설명에 따르면, 인간은 행복할 때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나오는데, 쇼핑에서 도파민 분비를 맛본 사람은 계속해서 같은 행위를 반복하게 된다.
‘소확행’을 누리는 한 세상은…
그러나 쇼핑에서 발생하는 행복은 도파민 가설로만 모두 설명되지 않는다. 쇼핑 중독은 교환가치가 사용가치보다 우월한 삶의 양식으로 고정된 자본주의 시대의 습성으로, 특정 물건을 사용하게 되었다는 기대(충족)만으로 행복해진 것이 아니다. 쇼핑은 집단 소속감을 주고, 자긍심을 갖게 하며, 유명인과 나를 한 인물로 만들어준다. 인플루언서들의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활약으로 쇼핑 욕구는 더욱 뜨거워졌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는 그것이 무엇이든 어딘가에 이르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며, “자본주의 사회의 일부로 남기” 위한 최고의 방법이다.
지은이가 인용하기도 한 지그문트 바우만은 대담집 〈지그문트 바우만, 소비사회와 교육을 말하다〉(현암사, 2016)에서 지갑을 탈탈 터는 쇼핑 행위는 자기 포기와 자기희생이라는 현대판 선행을 쌓는 것이며, 인색함은 죄라고 말한다. 이는 자본주의 양식에 어울리는 풍자다. 쇼핑은 소비자에게 자율성과 진정성과 자기주장을 최대한으로 표현한 삶이라는 만족감을 선사함으로써 그들이 타인에 대한 관심은 물론 사회변혁에 무감각해지게 만든다. 다이소에서 ‘소확행’을 누리는 한 자본주의는 변하지 않는다.
박재용의 〈처음 만나는 자폐〉(이상북스, 2024)는 청소년용으로 나왔지만, 어른이 읽어도 손색이 없는 책이다. 한국의 경우 아동 100명당 2.6명 정도가 자폐에 해당될 만큼 비율이 높다지만 자폐에 대하여 모르기는 청소년이나 성인이나 똑같기 때문이다. “자폐란 ‘사회적 의사소통과 상호작용의 결함’이 있고, ‘제한적이고 반복적인 행동이나 흥미 또는 활동’을 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언어상으로는 이처럼 명료하게 정의되지만, 자폐 증상은 상당히 폭넓다. 그래서 거의 모든 공식 영역에서 자폐증 대신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정신장애가 아닌 신경다양성의 일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유전이 원인이라고 하지만, 부모가 자폐가 아닌 경우에도 자녀에게 자폐가 나타날 수 있다(육아 방식이나 태도는 자폐를 만들지 않는다).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자폐인의 상동행동은 감각이 외부 자극의 보충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거나, 반대로 예민해진 감각을 분산하기 위한 자구책이다. 주변인이 보기에는 이상할지 몰라도, 자폐인에게는 꼭 필요한 행위이다. 또 맥락과 상관없이 말을 따라 하는 반향어는 자폐인이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스트레스의 표현이기도 하다). 말이 서툴러 지능이 떨어져 보이기도 하지만 자폐인은 한국말을 잘 못하는 외국인일 뿐, 자폐인이 곧 지적장애인인 것은 아니다.
예술가나 과학자 중에서 일상에 필요한 행동과 대인관계는 서툴지만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훌륭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이 있다. 자폐인 가운데도 한 가지에만 재능을 지닌 사람이 있다. 하지만 몇몇 영화나 드라마를 떠올리면서, 자폐인 개개인을 특출난 재능 유무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인간은 재능 유무로 평가될 존재가 아니다. 주변에 해코지하는 사람이 없는 동네의 길고양이들은 한층 여유롭고, 경찰이 학교 주변을 자주 순찰하면 범죄 위험이 낮아진다. 동물도 인간도 주변의 배려와 제도의 보완 속에서 삶의 질이 높아진다. “자폐인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들이 가진 다양한 특징, 그리고 공통적인 특징 또한 성격처럼 고유한 것이니 반드시 고쳐야 할 것은 아니죠. 다만 비자폐인이 주도하는 사회에서 자폐인 또한 보다 원만하게 살아가기 위해 배워야 할 것, 훈련해야 할 것이 있는 거죠.”
장정일 (소설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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