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병제 지속 불가능…전 국민 공익복무하는 ‘공역제’ 어떨까

한겨레 2024. 2. 25.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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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문장렬의 안보 다초점
병역제도
“군대 좋아졌다”지만 과중한 병역
병역거부·성차별 등 새 논쟁거리
‘공동체 봉사’ 공익복무제 기본에
‘대체복무로 병역’ 방식 논의할 만
코로나19 여파로 중단됐다 2022년 6월에 재개된 신병 수료식(충남 논산 육군훈련소) 모습. 연합뉴스

최근 20여년간 병역제도는 선거 때마다 중요한 공약으로 거론됐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도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지난달 29일 “이르면 2030년부터 경찰과 소방 등의 공무원이 되려는 여성은 군복무를 해야만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공약했다.

대법원은 지난달 11일 ‘양심적 병역거부자’ ㄱ씨의 병역법 위반죄를 유죄로 확정했다. 그는 대체복무제가 시행되기 전에 입영통지서를 받고 불응해 기소됐지만, 항소심 재판 도중 대체복무제도가 시행됐고 심사위원회는 그의 대체역 편입을 결정했다. 그럼에도 유죄가 된 이유는 시점상의 문제가 아니라 ‘양심’이 의심스럽다는 것이었다. 양심이 법의 심판을 받는 ‘황당한’ 일이 실제 일어난 것이다.

병역제도는 의료·입시제도처럼 사회적으로 파급력이 매우 크다. 더욱이 병역은 국가안보와 국방과 군사력의 토대가 된다. 전쟁도 결국 인간의 활동이고 평화도 인간을 위한 것이다. 탈냉전기 미국이 소위 ‘군사혁신’을 통해 무기체계를 한껏 고도화하고 있을 때, 이미 “무기는 전쟁을 하지 않는다”(전략이론가 콜린 그레이)는 성찰이 나왔다.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 시대에 군인은 전쟁에서 무기체계의 도움과 ‘지시’를 더 많이 받고 일부 무기는 ‘자율성’이 커지겠지만, 어디까지나 인간이 만든 알고리즘에 따라 기능을 수행할 뿐 중요한 최종 결정권까지 위임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병영 민주화’에 급여 높아졌어도

우리 사회에서 병역제도는 직업군인이 아닌 의무복무자 중 주로 초급장교보다는 병사의 징집에 관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한국군의 병력 규모는 50만명으로 축소됐고, 그중 약 30만명이 병사(병장~이병)다. 복무 기간은 18개월로 단축됐고, 병역을 거부할 경우 법에 의거한 심사를 통해 3년간의 대체복무로 병역을 마칠 수 있다. 병영문화가 더 ‘민주화’되었고 숙식과 급여(병장 기준 월 200만원) 수준도 높아졌다. 과거에 비하면 “군대 좋아졌다”는 말이 나올 법하다. 그런데도 “군대 아직 멀었다”는 말이 더 많이 나온다. 왜일까.

세상이 변하고 사람들의 기대 수준은 군대가 좋아지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높아지고 논쟁의 마당은 넓어졌다. 국방이라는 본연의 문제뿐 아니라 사회·문화·경제·교육·윤리·기술·철학·인구학 등 수많은 분야의 중요한 이슈들이 현 병역제도의 지속가능성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오래된 두 가지 문제는 병역의 과중함과 징집의 불공평성이었다. 의무복무 기간은 줄었지만 청년기의 1년 반은 개인들에게 결코 짧지 않다. 대부분 징집 대상이 대학생이므로 병역 기간은 사실상 2년의 학업 중단과 같다. 한편, 군의 입장에서 짧은 복무 기간은 전투력의 저하를 의미한다. ‘쓸 만해지니 제대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병역 기간 중 각종 자격증 취득, 대학 학점 이수 인정제에 따른 학습, 취업 준비 등을 군이 나서서 지원해주기 때문에 병사가 군 본연의 업무와 학업(취업) 준비 둘 다 제대로 못 하게 될 수 있다. 병역을 무겁게 느끼게 하는 더 큰 요인은 병영생활이다. 군대 갔다 온 한국의 모든 남성들의 군대에 대한 ‘추억’은 전투 훈련장 못지않게 내무반에서 나온다. 한국군은 병영 부조리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견디거나 따라 했던 사람들의 재미없는 ‘영웅담’이 군에 대한 이미지 형성에 기여했다. 훈련소에서 부쳐 온 아들의 옷가지를 받아들고 엄마들이 울지 않을 수 없었다. 징집의 불공평성 문제는 각종 병역비리와 그에 관련된 ‘기술과 산업’의 발달을 가져왔다. 사실 그런 것들은 서로의 원인이자 결과였다.

최근 들어서는 전통적 병역비리 문제보다 성차별, 양심적 병역거부, 군인권,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전환 등과 같은 더 본질적이고 차원 높은 이슈들이 떠오르고 있다. 남녀 간 병역의 불평등은 법으로 ‘보장’돼 있다. 헌법은 모든 국민에게 국방의 의무를 부과하고 있지만(39조), 병역법은 남성에게만 의무를 부과하고 여성에게는 지원에 의하여 군복무를 할 수 있도록 했다.(3조 1항) 1999년 헌법재판소가 ‘군가산점제도’에 위헌 결정을 내리자 병역제도를 둘러싼 남녀 집단 간의 차별 논쟁이 격화되었고 여성 징병 요구가 커졌다. 불행한 일이지만 이 문제가 ‘표’와 연결되기 때문에 정치화도 피할 수 없다. 2018년 대법원은 양심적 병역거부에 처음으로 무죄를 확정판결하면서 입법부에 대체복무제도 도입을 권고했고, 그에 따라 이듬해 대체복무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고 2020년 6월 심사위원회도 출범했다. 누군 신념과 양심이 없어서 병역의무를 이행하냐는 ‘오해와 자조’가 농담의 수준을 넘나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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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감소 추세로 ‘결정된 미래’

병역제도의 근본적 개혁은 외부의 안보 환경과 우리의 국력과 군사력뿐 아니라 사회적 인식과 문화의 변화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 국민적 공감대 위에서 이뤄져야 할 것이다. 현존하는 모순과 부조리도 해소해야 한다. 시급한 문제이기도 하다. 인구 감소 추세로 ‘결정된 미래’는 당장 내년부터 병사 충원이 어려워지기 시작해 2035년부터는 현 병력 규모의 유지가 불가능해진다.

한 가지 대안은 완전한 모병제의 시행이다. 그동안 징병제·모병제 논란은 많았고 다양한 방식의 ‘징모 혼합제’도 제안되었다. 그러나 징병 요소가 조금이라도 포함된 제도는 앞에서 논의한 문제들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물론 완전 모병제는 ‘없는 집 자식만 군대 간다’는 새로운 계급 차별을 초래할 수 있고, 국가재정 소요가 커지고 국민의 안보의식이 해이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자세한 논의는 할 수 없지만 모병제를 채택하는 많은 국가들이 존재하니 우리도 추가적 병력 감축을 전제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또 하나는 ‘보편적 공익복무제’(또는 공역제)로서 모든 국민이 일정 기간 의무적으로 국가공동체를 위해 공익 봉사를 수행하는 것이다. 기간은 100살 시대에 생애의 1%(1년) 정도로 하고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제공한다. 복무자 중 일부는 자원에 의하여 더 짧은 기간(예컨대 9개월)에 더 많은 급여(최저임금+병역수당)를 받으면서 병역에 복무하도록 함으로써 병사를 충원한다. 따라서 이 제도에서는 공익복무가 기본이고 병역이 ‘대체복무’가 될 것이다. ‘공역제’는 모든 젠더와 거동 가능한 장애인까지 포함하므로 모병제보다 더 많은 정부 예산이 필요하겠지만 일종의 ‘보편적 청년수당’의 성격을 갖기에 국민경제에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도 있을 것이다.

병역제도는 국방의 토대가 되지만 국방전략이 병역제도를 결정하기도 한다.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의 실현을 국가안보를 위한 전략으로 채택한다면 병력 규모를 최소한의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과학기술을 활용해 강력한 전투력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나라와 군대에서 ‘대한의 건아들’이 자부심을 느끼면서 공역이든 병역이든 복무하는 모습을 그려본다.

전 국방대 교수

노무현 정부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기획실 국방담당, 문재인 정부의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등을 지냈다. ‘군사과학 기술의 이해’ 등의 저자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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