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코드는 '항일'? '파묘'에 열광하는 이유 [정유진의 속닥무비]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영화는 항상 우리 곁에서 즐거움과 감동을 주는 친구 같은 존재입니다. 친구들과 '속닥속닥' 하면 기쁨은 배가 되고, 슬픔은 잦아듭니다. [정유진의 속닥무비]를 통해 영화 속 비하인드 스토리 및 배우, 감독, 스태프의 열정 등 업계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며, 친구 같은 영화와 더 친해지는 자리를 마련해 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파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영화의 주요 내용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파면 팔수록 생각지 못한 것들이 줄줄이 튀어나와 보는 이들을 당황스럽게 만든다. 그런데 어쩐지 그 '험한 것'들의 면면이 재밌다. 'K-오컬트'의 경계선을 살짝 벗어난 독특한 영화 '파묘'(감독 장재현)를 본 관객들 사이에서는 영화와 관련한 다양한 여담이 등장해 감상의 재미를 더한다.
거액의 돈을 받고 수상한 묘를 이장한 풍수사와 장의사, 무속인들에게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담은 오컬트 미스터리 영화. 개봉 전 소개된 '파묘'의 로그라인은 장 감독의 전작 '검은 사제들' '사바하'를 떠올리게 했다. 과학으로는 해석하기 어려운 영적인 세계에서 '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이 풀어나가는 모종의 어둠과 음모. 매력적인 배우들이 맡은 네 캐릭터 상덕(최민식 분), 화림(김고은 분), 영근(유해진 분), 봉길(이도현 분)을 중심으로 기묘하면서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라는 기대가 충만했다. 그리고 이 기대는 현실에서 증명되고 있다. 지난 22일 개봉한 '파묘'는 베일을 벗은 지 3일째인 24일 기준(이하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 입장권 통합 전산망 집계), 누적 관객 145만명을 돌파하며 승승장구 중이다.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는 영화 속 대사처럼, 극장에서 개봉, 공개된 '파묘'는 허리가 끊긴 영화다. 외형적으로 전반부와 후반부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반부는 관객들이 '파묘'에 대해 기대했음 직한 오컬트 미스터리가 펼쳐진다. 악에 받친 영적 존재로 인해 불거지는 오컬트-호러스러운 전반부의 수난이 어느 정도 정리되고 나면, 후반부에는 새로운 미스터리가 시작된다. 앞서 주인공들이 의뢰받은 묘와 관련돼 숨겨져 있던 비밀에 관한 것이다. 여기서는 아픈 역사가 배경으로 등장한다. 과거 일제가 한반도의 정기를 막기 위해 우리나라 곳곳에 쇠말뚝을 박았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이 스토리가 후반부 서사의 중심이 되고 이웃 나라에서 건너온 상상 못 한 존재가 등장해 오컬트 장르의 관습을 파괴한다.

이 후반부를 장악한 소재들에 대한 이야기가 현재 온라인에서 화제다. 한 커뮤니티에서는 영화 주인공들의 이름인 상덕, 영근, 화림, 봉길 등이 모두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의 이름과 같다는 점을 지적한 게시물이 눈길을 끌었다. 이 게시물의 작성자는 영화 속에 나오는 차량들의 번호가 '1945'(광복한 해) '0301'(삼일절) '0815'(광복절)로, 모두 근현대사 속에서 독립과 관련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날들을 가리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절의 이름이 보국사가 '나라를 지킨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 점, 이 절을 만든 스님의 법명이 원봉으로 의열단장이었던 독립운동가 약산 김원봉의 이름으로 설정된 것도 영화가 일제강점기 항일 정신, 혹은 과거 청산 등의 주제를 숨겨진 '코드'로 사용하고 있다는 추측을 하게 만든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특별한 존재는 일본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영화에서는 "전쟁의 신"이라고 묘사된다. 그런 존재를 '파묘'하는 주인공들의 영화의 주제를 형성한다.
주인공이자 영화의 내레이터 중 한 명인 상덕을 연기한 최민식의 필모그래피 역시 이 '항일 코드'와 연결해 읽으면 흥미롭다. '명량'에서 무려 이순신 장군을 연기했던 최민식은 '대호'에서는 일제로부터 압박받는 조선의 명포수 천만덕, '봉오동 전투'에서는 홍범도 장군 역을 맡았다. 이번에는 독립운동가 김상덕의 이름을 따온 캐릭터를 연기하며 극중 이순신 장군이 그려진 100원짜리 동전을 묫자리에 던지는 그의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는 관객들이 많을 것이다.
보고 난 뒤 할 이야기가 많은 영화들은 흥행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장재현 감독이 심어놓은 '파묘' 속 '항일 코드'는 영화에 다채로운 해석의 여지를 활짝 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해석의 여지가 많은 영화는 입소문을 내는 데도 유리하지만 재관람 유도에도 유리하다. 과거 '곡성' 역시 해석의 여지가 다양한 결말로 관객들을 '현혹'시키며 687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 흥행을 이뤄냈다. '파묘' 역시 개봉 초반부터 극장가를 후끈 달구고 있다.
eujene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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