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버린 엄마의 내연남을 죽였다···피의 복수가 부른 역설적 영광 [사색(史色)]
[사색-58] 그녀에겐 내연의 애인이 있었습니다. 남편이 아주 싫어서였습니다. 그럴 만도 했습니다. 가정을 돌보지 않고, 동성연애에만 탐닉했으니까요. 남편은 남자친구에게 가정의 재산을 나눠주기도 했습니다. 하나뿐인 아들을 위해 남겨뒀던 소중한 재산도 빼돌리려 했었지요. 그때 그녀는 애인과 함께 결심합니다. “남편을 죽여야겠어.”
음모는 성공합니다. 남편은 아내의 공격을 에상 못하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아들마저 두 사람의 뜻에 동참했다니. 남편은 충격 속에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다시 피의 전쟁이 시작됩니다. 결국 사달이 벌어집니다. 아들이 내연남을 죽이고, 엄마도 집에서 쫓아내 버렸지요. 새로운 시대의 개막이었습니다.
막장 드라마 전개와도 같은 이 이야기가 중세 잉글랜드 왕실에서 있었습니다. 에드워드 3세와 그의 어머니 이사벨라 왕비의 이야기입니다. 사색 전편에서 다룬 동성애자 남편인 에드워드2세부터 시작된 또 다른 드라마를 오늘 소개합니다.
에드워드 3세는 잉글랜드에서 가장 인정받는 군주 중 하나입니다. 아버지 에드워드 2세가 불러온 혼란을 잠재우고 대내외적으로 잉글랜드를 강대국으로 올려놓은 존재기 때문입니다.
모친과 그 내연남에 의한 즉위였으니, 에드워드 3세가 힘을 쓸 여지가 없는 건 당연했습니다. 10대 초반의 어린 왕은 두 사람의 꼭두각시에 불과했지요. 당시 잉글랜드를 지배하는 건 프랑스 출신의 여왕 이사벨라와 로저 모티머였습니다.
“이제 내가 직접 통치한다.”
에드워드 3세는 야망이 있는 사내였습니다. 두 사람의 꼭두각시로 평생을 살고 있을 위인이 아니었지요. 자신의 세력을 알음알음 규합하고 있었습니다. 윌리엄 몬태규와 같은 인물이 에드워드 3세의 대의에 동참했지요. 다른 귀족들도 에드워드의 편에 섭니다. 로저 모티머와 이사벨라의 폭정을 더는 참을 수 없어서였습니다.
에드워드 3세의 작전은 성공합니다. 어머니의 연인을 처형대에 세우는 데 성공했지요. 어머니 이사벨라는 간청합니다. “아들아, 로저 모티머를 가엽게 여겨다오.”
스코틀랜드엔 사면초가였습니다. 민족 영웅 로버트 1세가 이미 세상을 떠나서였습니다. 왕 데이비드 2세는 고작 8살에 불과한 어린아이. 패배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지요. 할리던 전투에서 에드워드 3세는 대승을 거뒀습니다.
에드워드 3세의 어머니이자 프랑스의 공주인 이사벨라가 상속권이 없으니, 에드워드 3세 역시 프랑스의 왕이 될 수 없다는 선언. 발루아 가문의 필립 6세가 프랑스 왕위에 오른 배경입니다.
필립 6세는 불안했습니다. 에드워드 3세의 기세가 매서웠기 때문이었습니다. 더구나 에드워드 3세는 프랑스 영토 내에 알짜배기 땅인 아키텐을 ‘귀족 작위’로서 지배하고 있었지요(물론 이 땅에 대해서는 프랑스 왕에 대한 충성서약인 오마주가 필요했지만요).
필립 6세가 에드워드의 ‘반역’을 명분으로 영지 아키텐 몰수를 선언합니다. 프랑스에서 가장 부유한 땅을 직접 소유하려는 ‘정치적’인 작업이었지요.
프랑스는 역시 잉글랜드의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에드워드 3세는 전쟁에 있어서 탁월한 전략가였습니다. 잉글랜드 귀족들에게 확실하게 작위를 약속하면서 내부 결속력도 다졌지요. 심지어 어머니의 내연남이던 로저 모티머의 손자를 사면해 자신의 사람으로 포섭합니다. 그는 도움이 된다면 과거는 잊어버리는 그릇을 가진 사내였지요.
그 유명한 크레시 전투에서 잉글랜드 군은 프랑스 군을 압도했습니다. 해안 도시 칼레로 쳐들어가 항복을 받아냈지요(자신을 희생해 시민들을 지키려 했던 칼레 귀족들의 이야기가 로댕의 ‘칼레의 시민’이란 작품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습니다).
아들 장 2세가 그의 뒤를 이었지만, 그는 푸아티에 전투에서 잉글랜드의 포로로 잡히고 말았지요. 프랑스의 왕이 런던으로 끌려가는 수모를 당한 것이었습니다.
100년 전쟁 초기, 잉글랜드는 그야말로 대승을 거뒀습니다. 에드워드 3세는 장 2세와 브리타뉴 조약을 체결합니다. 에드워드는 프랑스의 왕좌를 포기하는 대신 프랑스 서남부의 광활한 영토의 지배권을 손에 넣었습니다.
<네줄요약>
ㅇ1300년대 초반 혼란의 잉글랜드를 바로 세운 건 에드워드 3세였다.
ㅇ그는 어머니 이사벨라와 내연남 로저 모티머의 지배를 벗어나 18살에 ‘친정’을 선언했다.
ㅇ스코틀랜드와 전쟁에서 승리한 뒤에는 프랑스와 전쟁을 선포해 크게 이겼다.
ㅇ100년 전쟁 초반부 잉글랜드가 승기를 잡은 배경이었다.
<참고문헌>
ㅇ찰스 디킨스, 영국사 산책, 옥당북스, 2023년.
ㅇ윌터 스콧, 스코틀랜드 역사이야기, 현대지성사, 2005년.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K-주식 결전의 날 다가온다”…주말 사이 투자자들 잠 못 든다는데 - 매일경제
- “아가씨, 남기면 환불해 주나”…5명이 2인분 고집, ‘진상 손님’의 반전 - 매일경제
- 기업 밸류업 앞두고 기관 외국인 미친듯이 산 주식 - 매일경제
- “삼겹살 2kg이 2만원” 진짜 맞나요?…‘바가지 NO’ 삼삼한 축제 열린다 - 매일경제
- ‘친명횡재 비명횡사’ 野 공천파동 난리인데…한동훈은 험지 돌며 ‘표심잡기’ - 매일경제
- “계약 몇건이면 대기업 연봉 건진다”…그런데 한달새 1300곳 문닫아, 대체 무슨 일? - 매일경제
- ‘컷오프’ 이수진 “이러니 이재명 주변 사람들이 자살 했구나”…개딸 폭로 - 매일경제
- “이강인, ‘손흥민에 하극상’ 때문에 100억 손해…‘경제적 처벌’ 무거워” - 매일경제
- ‘26일 로또청약’ 디퍼아 줍줍에 100만명 몰린다?…‘이것’ 모르면 낭패 - 매일경제
- 日 기자의 조언 “이정후,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이치로를 찾아가라” - MK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