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지원유세? 표 떨어져’…사법 리스크보다 위험한 공천 파동

성한용 기자 입력 2024. 2. 25. 07:35 수정 2024. 2. 25.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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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52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2일 국회 당대표실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통합하는 민주당을 만들겠습니다. 정당의 힘은 다양성에서 나옵니다. 다름은 배제나 제외의 대상이 아니라 역할 분담을 통한 시너지의 자산입니다. 공정하고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당 운영을 위해서 우리 박용진 후보도 공천 걱정하지 않는 그런 당 확실하게 만들겠습니다.”(함성과 박수)

“사랑하는 당원 동지 여러분 정치에서 약속은 누구나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약속을 제대로 지키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국민의 삶과 국가의 운명을 통째로 책임지는 정치는 유능해야, 그 유능은 말이 아니라 실천으로 실적으로 증명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한번 더 여쭙고 싶습니다. 약속을 확실히 지킬 당대표 누구입니까?”(‘이재명’ ‘이재명’ 연호)

이재명 대표가 2022년 8월6일 오전 강원도 원주시 한라대학교 대강당에서 열린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 합동연설회에서 했던 연설입니다. 지금도 유튜브 채널 ‘델리민주’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중 연설을 이처럼 호소력 있게 하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이 대표는 탁월한 연설가입니다. 이 대표는 8·28 전당대회에서 77.77%의 압도적 득표율로 당선됐습니다. 경쟁자였던 박용진 의원의 득표율은 22.23%였습니다.

이재명 열성 지지층과 충돌한 박용진

이 대표가 약속을 지키는 정치인이라면 박 의원이 공천을 걱정하지 않아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박 의원은 현역 의원 평가에서 하위 10%를 받아 공천 탈락 위기에 처했습니다. 경선에서 30% 감점을 받기 때문입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대부분의 민주당 전현직 의원, 당직자들은 박 의원이 매우 뛰어난 의정활동을 하는 의원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박 의원이 도대체 어떻게 하위 10%에 들어갔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재명 대표와 임혁백 공천관리위원장은 지금까지 박 의원이 어떻게 하위 10% 평가를 받았는지에 대해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의문을 풀 수 있는 한 가지 단서가 있습니다. 박 의원은 이 대표 열성 지지층과 ‘수박 논쟁’을 벌이는 등 여러 차례 충돌했습니다. 박 의원이 하위 10% 통보를 받았다고 기자회견을 한 뒤 어떤 기자가 이재명 대표 측근에게 “박용진 의원 하위 10%에 대해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많더라”고 물었습니다. 이 측근은 “나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들었다. 박용진 의원은 사실 의정활동을 그렇게 열심히 안 했다는 게 주변 평이더라”고 했습니다. 무심코 한 말이지만 박 의원에 대한 이 대표와 측근들의 시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것입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지난 21일 국회에서 열린 비공개 의원총회를 마치고 걸어 나오고 있다. 뒤쪽에 ‘의정활동 하위 10%’에 속했다고 당 공천관리위원회로부터 통보받은 박용진 의원이 보인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김영주 국회부의장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김 부의장이 지난 19일 “하위 20% 평가에 모멸감을 느낀다”며 탈당했습니다.

이 대표는 페이스북에 “김 부의장님은 제가 참 존경하는 분”이라며 “제 개인이 주관적으로 점수를 드렸다면 부의장님은 분명 좋은 평가였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김 부의장은 “저를 존경한다는 대표님의 말씀이 가슴에 와닿지 않고 조롱하는 말로 느껴졌다”고 맞받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재명 대표의 정무조정부실장 출신으로 경기 성남분당갑에 예비후보로 등록한 김지호씨가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썼다가 지웠습니다.

“김영주 부의장님, 민주당 대선배님 탈당하신다니 많이 아쉽고 섭섭하네요. 경선승복, 선당후사 선배님들에게 귀에 피가 나도록 들은 이야기인데 많이 아쉽습니다. 부디 앞으로는 마음 편하게 지인분들과 일본 여행 다녀오시길 기원합니다.”

김영주 부의장이 지난해 6월 후쿠시마 오염수 파동 와중에 국회 본회의장에서 지인과 일본 여행 일정 문자를 주고받다가 사진 찍힌 일을 비꼰 것입니다. 김영주 부의장의 ‘조롱’이라는 표현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닙니다.

지난 22일에는 서울 동작을 지역구가 전략 지역으로 지정되어 공천에서 배제된 이수진 의원이 탈당했습니다. 서울 마포갑 지역구가 전략 지역으로 지정되어 공천에서 배제된 노웅래 의원은 국회 대표실에서 무기한 단식 농성에 들어갔습니다.

하위 10%나 20%를 통보받은 의원들은 이의 제기를 하고 있지만, 임혁백 공천관리위원장은 회의를 열지도 않고 “이유 없다”며 줄줄이 기각하고 있습니다.

당내 부글부글…집단탈당·분당 위험도

당내 여론은 부글부글 끓고 있습니다. 비이재명 성향의 의원들은 물론이고 친이재명 성향의 의원이나 당직자들도 불만을 터뜨리기 시작했습니다. 공천 결과는 물론이고, 공천 과정도, 사후 관리도 엉망진창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민주당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가히 ‘이재명발 공천 파동’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공천 파동의 여파는 민심 이반으로 나타납니다. 수도권에서 단수 공천을 받은 한 후보는 “지역구에서 표가 10%씩 뚝뚝 떨어져 나가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라고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얼마 전 경선에서 승리한 수도권 현역 의원도 “본선을 앞두고 걱정이 태산”이라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경선을 앞둔 한 현역 의원은 “지금은 공천 때문에 조용히 있지만, 공천만 확정되면 이재명 대표와 함께 찍은 사진을 다 떼고 지원 유세를 온다고 해도 거절할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이 대표가 지원 유세를 하면 오히려 표가 떨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문학진 전 의원은 이 대표가 사퇴하고 정계 일선에서 물러날 것을 요구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마지막 정무수석을 지낸 이철희 전 의원은 이 대표 총선 불출마를 해법으로 제시했습니다. 정세균·김부겸 전 국무총리는 “이재명 대표가 지금의 상황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권노갑·정대철·이강철·강창일 등 당의 원로들은 “이재명 대표가 일련의 사태에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이 대표는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지난 20일 오후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하위 평가자들의 당연한 불만을 내부 분열로 왜곡해서는 안 됩니다. 앞으로 더 많은 원망이 나올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모든 원망은 대표인 제게 돌리십시오. 온전히 책임지고 감내하겠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총선에서 승리하겠습니다.”

지난 22일 기자간담회에서는 “약간의 진통,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진통이라 생각해달라”며 “툭하면 사퇴 요구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365일 내내 대표가 바뀌어야 할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이 대표의 측근은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라고 본다. 밀고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대표 쪽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이재명 대표가 당이 아닌 다른 전략 단위의 보고를 믿고 공천 잡음이 곧 가라앉고 총선은 이길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고 전했습니다. 마구잡이 적합도 조사로 지탄을 받고 있는 조정식 사무총장은 “최근 총선 공천과 관련하여 사실이 아닌 추측성 오해와 발언으로 왜곡된 상황도 발생하고 있다.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사안에 대해서는 당직자 여러분께서도 주의를 당부드린다”고 입단속에 나섰습니다.

이 대표와 조 사무총장의 안이한 인식은 시간이 갈수록 공천 파동의 위력을 증폭시킬 위험이 있습니다. 지금은 이 대표, 조 사무총장 사퇴 및 불출마 정도 요구에 머물고 있지만, 총선 참패가 눈앞에 보이기 시작하면 당원·지지자들이나 의원들이 어떻게 나올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어쩌면 이 대표와 최고위원 등 지도부 전원 사퇴 및 불출마 요구, 또는 의원들의 집단 탈당이나 분당 사태로까지 치달을 수도 있습니다. 총선은 정당의 존폐가 걸린 건곤일척의 승부이기 때문입니다. 패배가 뻔한 선거를 앞두고 가만히 있을 당원·지지자들이나 의원들은 없기 때문입니다.

“이대로면 총선 참패…대선도 마찬가지”

2023년 2월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이 부결됐습니다. 9월21일에는 체포동의안이 가결됐습니다. 그러나 법원이 9월27일 구속영장을 기각했습니다. 이른바 ‘사법 리스크’의 1차 고비를 그런대로 잘 넘겼습니다. 올해 1월2일에는 부산에서 흉기로 목을 찔리는 습격을 당하고도 살아남았습니다. ‘테러 리스크’도 넘긴 것입니다.

그러나 이재명 대표가 지금 맞닥뜨린 ‘총선 리스크’는 ‘사법 리스크’나 ‘테러 리스크’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위험합니다. 이재명 대표는 물론이고 민주당 전체의 존폐가 걸렸기 때문입니다. 수도권에 출마하는 민주당의 한 의원은 “지금 이대로 가면 총선 참패는 불 보듯 뻔하다”며 “총선 이후에도 이재명 대표가 당권을 계속 쥐려고 고집을 부릴 수 있어서 걱정”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만약 공천 파동과 이로 인한 총선 참패로도 교훈을 얻지 못하면 민주당은 차기 대선에서 집권 기회를 잃을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지난해 12월28일 서울 종로구의 한 음식점에서 오찬 회동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마무리하겠습니다.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라는 말이 있습니다. 막다른 위기에서 한발 더 내디딘다는 뜻입니다. 현애살수(懸崖撒手)라는 말이 있습니다. 매달려 있는 낭떠러지에서 손을 놓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현애살수는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이 대표에게 해준 말이기도 합니다. 이 대표의 판단과 선택에 민주당과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렸습니다. 이 대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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