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돈벌어 쏘나타·그랜저 살게”…‘경차 싫은’ 20대 벤츠·BMW 타는데 왜? [세상만車]
X세대, 역사상 가장 돈 많아
“그돈이면 수입차” 소용없다
들어보셨나요. 어렴풋이 들은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하다고 여기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힌트를 드리겠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긴 이름입니다.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아하”하고 생각나시는 분들이 있나요. 코미디·개그 프로그램에서 들어보신 적이 있지 않나요. 마지막 힌트입니다. ‘풀 네임’(전체 이름)입니다.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치치카포 사리사리센타 워리워리 세브리깡 무두셀라 구름이 허리케인에 담벼락 담벼락에 서생원 서생원에 고양이 고양이엔 바둑이 바둑이는 돌돌이”
장수를 기원하며 오래 산 사람이나 동물을 모두 집어넣어 만든 세상에서 가장 긴 이름입니다. 여기에 무드셀라가 있습니다.
무드셀라는 구약성서에 등장합니다. 방주를 만든 노아의 할아버지로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산 사람이라고 합니다.
심리학에 따르면 무드셀라 증후군은 과거의 나쁜 기억은 빨리 잊어버리고 좋은 기억만 남기려는 심리 현상을 뜻합니다. 고통을 최소화하려는 생존 본능 가운데 하나죠.
무드셀라가 969세까지 살면서 자주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경향을 보였다는 것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무드셀라 증후군은 개인에게 영향을 주기도 하지만 추억을 공유하는 특정 세대에 더 크게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이는 특정 세대를 타깃으로 삼은 마케팅에 효과적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기업들은 해당 세대가 막강한 경제력을 가졌을 때 무드셀라 증후군을 활용하는 마케팅을 적극 펼칩니다.
일종의 무드셀라 마케팅인데, 좀 더 유식하게 말하면 레트로(Retro)·뉴트로(Newtro) 마케팅입니다.
X세대는 한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관심 대상입니다. ‘역사상 가장 부유한 세대’라고 부릅니다. 인구도 많은데다, 왕성한 경제활동을 펼쳐 소득 수준도 높기 때문이라고 하죠.
통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1950년대생은 603만명(11.7%), 1960년대생은 851만명(16.5%), 1970년대생은 828만명(16.1%), 1980년대생은 705만명(13.7%), 1990년대생은 679만명(13.2%)으로 집계됐습니다.
베이비붐 세대인 1960년대생(1960~1969년생)이 가장 많고, 그 다음이 1970년대생(1970년~1979년생)입니다.
1970년대생 대부분은 아직 왕성한 경제활동을 펼치고 있지만 1960년대생 상당수는 은퇴시기에 접어들었습니다.
소득과 소비도 X세대가 주축인 40~50대가 가장 높았습니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가구주가 40~50대인 가구의 월 평균 소득이 가장 많았습니다.
50대가 636만원으로 1위였습니다. 40대는 632만원, 39세 이하는 473만원, 60세 이상은 365만원으로 그 뒤를 이었습니다.
월평균 가계지출도 비슷한 경향을 보였습니다. 40대가 508만원으로 가장 높았습니다. 50대는 493만원, 39세 이하는 362만원, 60세 이상은 267만원으로 나왔습니다.
2010년대 중·후반부터 현재까지 TV·라디오에서 X세대를 겨냥한 드라마·영화·음악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응답하라’ 시리즈가 대표적이죠.
걸그룹 에스파도 X세대의 문화대통령으로 불렸던 서태지와 아이들의 시대유감을 리메이크하기도 했습니다.
유통업계에서도 X세대의 레트로 감성을 자극하는 광고와 과자(종합선물센트)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삼성패션연구소도 올해 패션시장 키워드로 ‘와인드업’(WINDUP)을 선정하면서 X세대에 주목했습니다. 실질적 구매력과 경제력을 갖춘 X세대를 적극 공략하라고 조언했죠.
글로벌 시장조사회사 민텔(MINTEL)도 올해 전망을 통해 X세대는 구매력이 높고 건강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있다며 이들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자동차회사들은 예전에 ‘20대=경차·소형차, 30~40대=중형차, 50~60대=대형차’ 등식에 맞춰 단순하게 마케팅을 펼쳤습니다.
이제는 다릅니다. “세상 달라졌다”며 유통·패션업계처럼 연령대별·성별 맞춤 마케팅을 진행합니다.
유통·패션업계의 움직임을 눈여겨 본 자동차회사들은 ‘응답하라 1988’ 방영 이후 X세대의 무드셀라 증후군을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자동차는 옷이나 과자와 달리 집 다음으로 비싼 재산목록 2호라 구매결정이 쉽지 않고, 경기가 좋지 않으면 구매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는 단점을 ‘좋은 추억’으로 보완했습니다.
전략은 성공했습니다. 효과가 매우 뛰어났습니다. 국토교통부 자동차 통계를 사용하는 카이즈유 데이터연구소를 통해 연령대별 차종 구매현황을 분석해본 결과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X세대를 ‘추억’으로 공략한 현대차 그랜저가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국민차이자 국가대표 아빠차가 됐습니다.
한때 ‘국민차’였던 현대차 쏘나타도 X세대의 추억에 힘입어 국가대표 중형세단 자리만큼은 지키고 있죠.
기아 쏘렌토는 8만4410대로 2위, 기아 카니발은 7만833대로 3위를 기록했습니다.
그랜저는 지난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 연속 1위 자리를 차지하면서 ‘넘사벽’(넘기 어려운 사차원의 벽)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덩달아 아반떼와 쏘나타에 이어 국민차 자리도 차지했습니다. 지난 2022년에 SUV 대세에 힘입은 기아 쏘렌토에 일격을 당해 2위로 밀려나는 굴욕을 겪었다가 다시 명예를 회복했습니다.
그랜저 1위에는 큰 손인 40~60대의 지지가 큰 힘이 됐습니다.
지난해 연령별 신차 등록대수를 살펴보면 50대(28만9972대)가 가장 많았습니다. 점유율은 27.5%에 달했죠. 40대(25만7358대)는 24.4%로 그 다음이었습니다.
30대(21만909대)는 20.0%, 60대(17만9101대)는 17.0%, 20대(7만5296대)는 7.2%, 70대 이상(4만211대)은 3.8%로 조사됐습니다.
50대 선호 1위는 그랜저(2만7530대)였습니다. 2위 쏘렌토(1만8325대)보다 1만대 가량 더 구입했습니다.
60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랜저(1만7375대), 쏘렌토(1만1107대), 현대차 싼타페(9636대) 순이었습니다.
X세대가 많은 40대는 쏘렌토(1만6652대)를 가장 많이 샀습니다. 다만 2위 그랜저(1만6260대)와 392대 차이에 불과했습니다.
20~30대에서 그랜저는 판매 5위 안에 들지 못했습니다. 쏘렌토는 30대에서는 스포티지 다음으로 2위를 기록했습니다.
판매 10위까지 알아보면 쏘렌토는 20대에서는 9위를 기록했지만 그랜저는 순위권에 들지 못했습니다.
그랜저는 X세대 파워에 힘입어 남성 선호 차종 1위, 여성 선호 차종 4위를 기록했습니다. 쏘렌토는 남성 선호 차종 2위를 기록했지만 여성 선호 차종 5위권에는 들지 못했습니다.
지난해 중형 세단 싸움에서도 무드셀라 증후군이 작용했습니다. 쏘나타(3만7912대)는 추억에 힘입어 젊은 층이 선호하는 기아 K5(3만4071대)에 승리를 거뒀습니다.
쏘나타는 ‘아빠차’, K5는 ‘오빠차’ 성향을 각각 지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참고로 경제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20~30대는 가격이 저렴한 국산 경차를 선호하지 않습니다. 수입차도 가격이 다른 차종들보다 비싼 BMW·벤츠 차종을 많이 삽니다.
지난해 20~30대 남성은 BMW 3·5시리즈, 여성은 벤츠 C·E클래스의 ‘큰 손’으로 여겨졌습니다.
1986년 출시된 그랜저와 1985년 나온 쏘나타는 장수 모델입니다. 당시 초·중·고를 다닌 X세대가 선망하던 차였습니다.
40대 이상이 젊었을 때 쏘나타는 ‘중산층의 상징’, 그랜저는 ‘성공하면 타는 차’로 여겨졌죠.
2019년 방영된 그랜저 CF에도 교복을 입은 학생이 친구에게 “나중에 성공하면 뭐할꺼야”라고 묻자 철길 위를 지나가는 1세대 그랜저를 보고 “그랜저 사야지”라고 답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업계 관계자는 “40대 중반을 넘어서면 실용성보다는 편안함을 중시하는 편이어서 SUV보다는 세단을 많이 산다”며 “쏘나타와 그랜저는 중장년층이 선호하는 편의·안전사양을 대거 갖춰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아울러 “40대 이상이 젊었을 때 쏘나타와 그랜저는 아무나 살 수 없었던 ‘고급차’였다”며 “당시 각인됐던 성공 이미지가 두 차종을 선택하는 데 영향을 준 것은 물론 쏘나타·그랜저 인기에 한몫하고 있다”고 분석했죠.
라떼 향수는 특정 계층이 소비한 상품을 구입하면 자신도 해당 계층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파노플리(Panoplie) 효과와 결합했습니다.
현재 성공한 사람들만 타거나 부유했던 사람들의 전유물이었던 그랜저·쏘나타를 지금 사더라도 자신의 가치나 품격이 덩달아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는 뜻입니다.
20여건에 달하는 품질 논란(그랜저), 호평이 쇄도한 K5의 거센 도전(쏘나타), 디자인 불호 논란, 그 돈이면 수입차를 살 수 있는 수준으로 올라간 가격 등에도 건재한 이유입니다.
무드셀라 증후군은 20~40대 젊은 층에도 영향을 줍니다. 부모 세대의 추억을 ‘힙’하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추억에 기대는 레트로 마케팅을 발전시켜 전통과 정통을 새롭게 해석하는 뉴트로 마케팅이 나온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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