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人]⑮ 주현철 변호사 “권도형, 한국선 무죄 나올 수도… 금융 범죄 처벌 수위 높여야”
국내선 금융 범죄로 볼 근거 부족…무죄도 가능
빗썸 관계사 주가 조작 혐의자들도 잇따라 석방
가상자산 정책, 규제·육성 모두 고민해야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가 왜 그토록 간절히 국내로 송환되기를 원하고 있을까요. 그가 만약 한국 법정에 선다면 무죄 판결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지난 2022년 77조원 규모의 투자 피해를 낳은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주범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가 미국 법정에 선다. 법조계에서는 권씨가 미국에서 100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에 대해 법무법인 이제(利諸)의 주현철 미국변호사는 권씨가 한국으로 송환됐다면 무거운 처벌을 내리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주 변호사는 지난 23일 조선비즈와 인터뷰에서 “권도형에 대해 중대한 금융 범죄를 저질렀다고 규정할 수 있는 핵심 포인트는 ‘증권성’에 대한 판단이다”라고 설명했다. 미국의 경우 금융 당국과 법원이 신속하게 테라를 증권으로 규정했기 때문에 권씨에게 증권 사기 혐의를 적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은 지금껏 증권성 판단을 미루고 있어, 권씨를 금융 사기범으로 단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주 변호사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테라, 리플 등 논란이 있는 가상자산에 대해 신속히 증권성 여부를 판단한다”면서 “이를 통해 미국은 가상자산 시장의 불확실성을 최대한 줄이고, 권씨와 같은 금융 범죄자를 제대로 처벌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반면 국내 금융 당국은 테라 폭락 사태 후 2년이 지나도록 증권성 여부에 대해 제대로 의견조차 내지 않았고, 그럴 의지도 없어 보인다”고 비판했다.
그는 “권도형의 조력자로 의심받는 인물들은 가벼운 처벌을 받거나, 최악의 경우 단죄를 피할 수도 있다”면서 “한국도 미국과 같이 경제·금융 범죄에 대해 무기징역까지 가능하도록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 변호사는 법조계를 대표하는 가상자산 시장 전문가로 꼽힌다. 오랜 기간 기업 인수합병(M&A)과 국제 분쟁 자문 등의 업무를 해 온 그는 지난 2022년 윤석열 정부 출범 당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경제1분과에서 유일하게 가상자산 담당 위원으로 참여했다. 현재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한국은행에서 가상자산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정부의 가상자산 관련 정책 방향과 관련해 주 변호사는 규제와 육성이 적절히 융합돼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는 “지난달 미국이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를 승인한 후 가상자산 시장은 대규모 신규 자금이 들어오고 있다”면서 “가상자산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만들기 위해 범정부 차원의 통합 정책 컨트롤타워를 만드는 방안도 검토해 볼 만하다”고 말했다. 다음은 주 변호사와 일문일답
―최근 몬테네그로 법원이 권도형의 미국 송환을 결정했다. 권씨는 법원이 한국의 범죄인 인도 요청을 기각한 데 대해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왜 이토록 한국행을 고집하는 것일까.
“권도형이 미국 땅에 들어서면 눈을 감는 날까지 감옥 밖을 나가기 어려울 수 있다. 징역 100년 이상의 형벌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미국은 가뜩이나 금융 사기를 엄하게 심판하는데, 여러 범죄를 저질렀을 때 각 사안의 형량을 합산하기 때문이다. 이미 금융위기 당시 ‘폰지사기’ 주범인 버나드 메이도프가 징역 150년형을 받고, 감옥에서 사망한 사례가 있다.
반면 권씨가 한국으로 송환된다면? 최악의 경우 그는 무죄 판결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처벌을 받아도 고작해야 징역 10년을 넘기기도 어려울 것으로 본다. 그것도 2심, 3심으로 갈수록 형량이 줄어들 것이다. 조력자로 의심받는 인물들과 입을 맞추기도 국내가 훨씬 쉽지 않나.
권도형의 미국 송환 결정을 두고 몬테네그로의 전·현직 법무장관이 충돌했다고 하더라. 전직 장관이 범죄인 인도를 먼저 요구한 한국으로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현직 장관은 이를 두고 권도형과 그가 모종의 거래를 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그만큼 권도형에게는 한국으로의 송환이 간절한 상황이다.”
―국내가 미국보다 훨씬 가벼운 형이 내려질 것이라고 보는 근거는.
“증권성 판단의 차이 때문이다. 미국 SEC는 테라 폭락 사태 이후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신속하게 테라를 증권성 코인으로 규정했다. 뉴욕 연방법원 역시 지난해 SEC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테라가 증권으로 규정되면서, 권도형은 무기명 증권 판매로 400억달러(약 53조원) 규모 이상의 사기를 저지른 금융 범죄자가 됐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테라 폭락 사태 후 2년이 지나도록 증권성 여부에 대한 판단이 나오지 않았다. 금융위는 ‘증권성 토큰 가이드라인’만 발표했지, 테라를 증권으로 규정하지는 않았다. 국내에서 SEC와 같은 역할을 하는 금융위가 아직도 판단을 미루고 있으니 테라 폭락 사태에 대한 수사도 전혀 진전이 없는 상태다.
지난해 검찰은 권도형과 함께 주범으로 지목된 신현성 전 차이코퍼레이션 대표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면서 테라를 증권이라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신 대표 역시 영장이 기각됐다. 이런 상황에 권도형이 법정에 선들 제대로 단죄를 할 수 있을까. 한국에서 재판을 받는 조력자들은 미국 법정에 서는 권도형보다 훨씬 가벼운 처벌을 받을 것이다.”
―국내 금융 당국이 SEC처럼 증권성 판단을 과감하게 내리지 못하는 이유가 뭐라고 보나.
“시장의 혼란을 우려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한국은 원화마켓 가상자산 거래소가 5개나 있다. 만약 테라를 증권으로 규정할 경우 그동안 이 코인을 상장해 거래를 중개했던 거래소들이 모두 처벌 대상이 된다. 미국은 이미 SEC가 여러 코인을 증권으로 규정해 바이낸스, 코인베이스 등 대형 거래소를 증권법 위반 혐의로 제소했고, 거액의 벌금을 물렸다. 국내 금융 당국이 두나무 등 거래소를 제소할 경우 법적 분쟁이 일어날 것이다. 이 같은 혼란을 우려해 특정 코인에 대한 증권성 판단을 미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법원이 확실히 권도형에게 징역 100년 이상의 중형을 내릴까.
“현재로서는 가능성일 뿐이지, 확정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징역 100년 이상이 나와야 할 범죄자가 의외의 무죄 판결을 받는 나라가 또 미국이다. 과거 1994년 아내 살해 혐의로 중형이 예상됐던 O.J. 심슨이 초호화 변호인단의 힘을 빌려 무죄 판결을 받기도 했다.
권도형은 미국으로 송환된 후 변호인단을 새로 선임할 가능성이 있다. 지금껏 법률대리인으로 썼던 덴튼스란 로펌은 사실 미국에서 큰 힘이 있는 곳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SEC에서 일한 경험이 있거나, 연방법원에서 근무 경력이 있는 변호사들로 구성된 로펌의 도움을 받으려 할 것으로 본다. 미국에서 재판이 상급심으로 올라가면 테라의 증권성 여부에 대한 판단이 새로 내려질 수도 있다.”
―한국은 경제 사범에 대한 처벌이 비교적 관대하다는 지적이 많다. 미국변호사로서 이런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한국은 경제 사범에 너그러운 나라라고 느낄 때가 많다. 굳이 권도형 케이스를 거론하지 않아도 사례가 많다. 지난해 가상자산 거래소인 빗썸의 관계자 주가 조작에 가담한 혐의를 받은 원영식 초록뱀 회장은 구속된 지 불과 5개월 만에 보석으로 석방됐다. 빗썸의 실소유주 논란이 있었던 강종현씨 역시 몇 달 만에 풀려났다. 미국은 지능 범죄나 금융 사기를 저지른 인물들이 이토록 쉽게, 빠른 시기에 보석 허가를 받을 수가 없다.
지금 국내 가상자산 시장은 이른바 ‘사기꾼들의 놀이터’로 불린다. 자전거래나 시세조종, 부당한 상장 등의 각종 범죄가 끊이지 않는다. 아직 가상자산 관련 법 체계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탓도 있지만, 경제 사범에 대한 처벌 수위가 지나치게 낮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미국처럼 경제 사범도 무기징역이 가능하도록 법을 개정하지 못한다면 테라 사태와 같은 대규모 금융 사기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화제를 돌려보자. 윤석열 정부 출범 당시 인수위 경제1분과에서 가상자산 전문위원으로 일했다. 지금은 금융위, 한국은행에서 가상자산 자문위원으로 정책 결정에 참여하고 있다. 현 정부의 가상자산 정책을 어떻게 보나.
“아직 가상자산을 규제의 대상으로 보고, 산업으로 키우려는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사실 윤석열 대통령은 블록체인 산업에 관심이 있었다. 대선 후보 당시 ‘디지털산업진흥청’을 만들겠다는 공약도 내놓지 않았나. 2022년 테라 폭락 사태, 지난해 김남국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코인 대량 보유·매매 파문 등을 겪으면서 진흥보다는 규제 중심으로 가게 된 것으로 본다.”
―최근 정치권이 4월 총선을 앞두고 가상자산 관련 공약을 준비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미 지난 21일 공약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평가한다면.
“민주당이 발표한 공약에 비트코인 현물 ETF의 투자와 발행을 허용하겠다는 내용이 있다. 공감한다. 비트코인은 유일하게 시세 조종이 불가능하고 화폐의 대안으로 쓰일 만한 가치를 인정받은 가상자산이다. 미국에 이어 최근 홍콩도 비트코인 현물 ETF의 승인을 준비 중이다. 여러 금융 선진국에서 인정받은 비트코인 현물 ETF를 국내에서 별다른 이유 없이 계속 규제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금융 소비자들의 투자 기회를 가로막는 것은 물론 국내 자산운용사의 사업 기회까지 박탈하는 해묵은 규제에 불과하다고 본다.
민주당의 공약에는 가상자산 매매 수익에 대한 공제 한도를 현행 25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늘리고, 기관투자자의 가상자산 시장 참여를 허용하는 방안 등도 포함됐다. 그러나 코인 관련 범죄에 대한 예방이나 시장 감시 기능 강화 등과 관련된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시절 가상자산 시장을 사실상 방치해 테라 폭락 사태의 책임이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젊은 층의 표심을 공략하기 위해 시장을 키우는 공약에 집중한 게 아닐까 생각된다.”
―총선 이후 정부와 정치권이 가야 할 가상자산 정책의 방향에 대해 조언한다면.
“가상자산을 사기나 규제의 대상으로만 볼 시기는 지났다. 이미 비트코인이 미국 등 금융 선진국에서 자산으로 인정을 받았고, 이더리움 현물 ETF도 제도권에 들어올 것이다. 시장은 커지고, 금융과 여러 산업 영역에서 가상자산과 블록체인 기술의 쓰임새는 더욱 늘 가능성이 크다.
한국도 투자자 보호, 시장의 안정과 함께 블록체인을 산업으로 육성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일본의 경우 기시다 내각 출범 후 정부와 자민당이 손잡고 적극적으로 블록체인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있다. 범정부 차원에서 규제와 육성을 아우를 수 있는 통합 컨트롤타워가 출범한다면 정책 결정에 더 속도가 붙을 것이다.”
☞ 주현철 변호사는
▲미국 보스턴대 경제학과 학·석사 ▲미국 보스턴대 로스쿨 법학전문석사(J.D.) ▲법무법인 광장, 지평지성, 리인터내셔널, 제현, 이제 미국변호사 ▲윤석열 정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전문위원 ▲금융위원회 디지털자산 민관합동 태스크포스(TF) 자문위원 ▲금융위원회 금융발전위원회 자본국 자문위원 ▲한국은행 머니앤뱅킹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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