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뒤 돌변, 외교관도 구금·도청·협박” 前 주중 일본대사가 본 시진핑

최유식 기자 2024. 2. 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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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식의 온차이나]
다루미 전 주중 일본대사
“집권 정통성 위기 극복 내세워
마오쩌둥식 일인집권체제 구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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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월간 문예춘추 2월에 게재된 다루미 히데오 전 주중 일본 대사의 회고록. /문예춘추, RFA

2020년부터 작년 말까지 3년 동안 주중 일본 대사를 지낸 다루미 히데오(垂秀夫) 전 대사가 귀국하자마자 일본 월간지 문예춘추에 재임 시절을 담은 회고록을 게재했습니다. 시진핑 주석 집권 이후 중국의 변화, 일본 외교관에 대한 구금과 도청, 협박 등에 대해 직설적으로 비판을 가했어요.

그는 일본 외무성의 대표적인 ‘중국통’입니다. 난징대에 유학해 중국어에 능통하고 중국 내 인맥도 풍부하죠. 천안문사태 발발한 직후인 1989년 6월 주중 일본대사관 2등 서기관으로 부임한 이후 네 차례에 걸쳐 10년가량 중국에서 근무했습니다. 홍콩, 대만 등지에서 근무한 경력도 있어요.

그는 시 주석에 대해 “집권 후 전혀 딴 사람처럼 변했다”고 했습니다. 시 주석은 부주석 시절이던 2009년 일본을 방문해 아키히토 일왕을 면담한 적이 있어요. 다루미 전 대사는 당시 외무성 중국몽골과장으로 안내를 맡았는데, 접견 인사가 70명이나 돼 시 주석이 장시간 대기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불만이나 짜증내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 부드럽고 겸허한 인물이라는 인상을 줬다고 해요.

◇“공산당 집권 정통성 흔들”

다루미 전 대사는 시 주석 집권 뒤인 2015년 일본 집권 자민당의 니카이 도시히로 총무회장을 수행하고 시 주석을 예방했는데, 그때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고 합니다. 주변에 경호원이 진을 치고 있어 가까이 접근하기조차 어려웠다고 해요. 그는 “경계와 보안이 후진타오 주석 때보다 훨씬 더 삼엄했다”고 썼습니다.

시 주석 집권 직후 중국은 30년 고도성장에 따른 부패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었고, 경제난으로 실업률도 높았어요. 국민 사이에서는 공산당 집권의 정통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인데도 공산당이 계속 통치하도록 내버려 둬야 하느냐’는 질문이 나왔다는 거죠.

시 주석은 덩샤오핑의 고도성장 노선을 이어갈 것인지, 마오쩌둥식 강국 노선을 택할 것인지 갈림길에 섰는데, 시 주석은 후자를 택했다고 다루미 전 대사는 평가했습니다. 마오식 권력 집중으로 집권 정통성 위기를 극복하는 쪽을 택했다는 겁니다.

공산당 최고 지도부인 상무위원회를 구성하는 7명의 상무위원은 후진타오 주석 시절만 해도 당 총서기인 후 주석과 대등한 권한을 보유했지만, 시진핑 집권 이후에는 총서기의 부하로 위상이 떨어졌다고 해요. 상무위원은 매년 말 당 총서기인 시 주석에게 업무 보고를 하고, 전용열차나 전용기를 이용할 때도 총서기 판공실의 심사를 받는다고 합니다.

2009년12월 일본을 방문한 시진핑 당시 중국 국가 부주석이 일본 아키히토 일왕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중국정부망

◇“국가안보 위해 경제 희생”

베이징 외교가는 중국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반간첩법 등 국가 안보 위주의 정책을 펴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분위기라고 해요.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 대사들을 만나면 “시 주석이 국가 안보를 위해 경제는 희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많았다고 합니다.

다루미 전 대사는 시 주석이 일흔을 넘은 고령인 만큼 포스트 시진핑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고 주문했어요. 시 주석 사망 이후 중국 정국이 안정을 유지할지는 미지수이지만, 이웃 국가로서 정책 변화에 대한 대응책은 미리 준비해둬야 한다는 겁니다.

그는 거침없는 발언으로 중국 측과 맞서서 ‘중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인물’로 통하는데, 그러다 보니 주중 대사로 근무하면서 중국 당국의 감시에 시달렸다고 해요. 미행과 도청 등으로 다루미 전 대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고, 일본대사관 주최 행사에 알고 지내던 중국 측 인사를 초청하는 것도 막았다고 합니다.

2020년 10월 주중 일본 대사로 임명됐을 당시 일본 TV에 나온 다루미 히데오 전 대사. /NHK

◇미행·도청으로 일거수일투족 감시

일본 외교관들이 자주 찾는 베이징의 한 일본식당에는 도청기가 설치돼 있었다고 해요. 다루미 전 대사는 베이징 주재 일본 기자들과 만나 식사를 할 때 도청을 우려해 민감한 정치 문제는 언급을 피했다고 합니다.

중국 국가안전부(국정원 격)는 2022년2월 공산당 기관지 광명일보의 평론부 부주임인 동위위를 베이징 신차오호텔에서 체포했는데, 당시 그와 함께 점심을 먹었던 일본 외교관도 함께 체포해 구금했다고 해요. 다루미 대사는 “외교관계에 관한 빈협약 위반”이라며 즉각 석방을 요구했지만, 중국 외교부는 “외교관으로서 신분에 맞지 않는 활동에 종사한 만큼, 관계기관이 법에 근거해 조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13개국 대사가 연합으로 중국 외교부에 항의하자 그제야 석방했다고 해요.

2021년12월 아베 신조 전 총리가 대만 국책연구원 주최 포럼 화상 연설에서 “대만의 비상사태는 일본의 비상사태이기도 하다”고 발언했을 때는 저녁 시간에 중국 외교부로 불려갔다고 합니다. 갈 수 없다고 하자 “앞으로 다루미 대사의 면담 요청을 모두 보이콧하겠다”고 협박해 할 수 없이 저녁 늦게 외교부를 찾았다고 해요.

전랑 외교관으로 손꼽히는 대변인 출신 화춘잉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차관보)가 다루미 전 대사를 맞았는데, 30분 동안 아베 전 총리 발언에 대한 항의문을 줄줄이 읽어내려갔다고 해요. 다루미 전 대사가 “우리가 면담을 요청할 때는 차일피일 일정을 미루다가 중국 측이 필요할 때는 ‘당장 오라’고 호출하는데, 이것이 귀국의 예의냐”고 반박하면서 한바탕 설전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문예춘추 온라인판에 게재된 다루미 히데오 전 대사의 회고록. 화춘잉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차관보)와 나눈 설전을 자세히 다뤘다. /문예춘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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