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 조던도 ‘형님’으로 모실 농구화가 있었다고? 세계 최초 농구화는 ‘이것’ [추동훈의 흥부전]

추동훈 기자(chu.donghun@mk.co.kr) 입력 2024. 2. 24.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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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부전-44][브랜드로 남은 창업자들-38]마퀴스 밀 컨버스

지난 2월 18일 저녁, 미국 인디에나에서는 73번째 NBA 올스타 경기가 열렸습니다. 전세계 농구 스타들이 한데 모인 가운데 경기에 참여한 선수들은 제각기 화려한 디자인을 자랑하는 농구화를 신고 경기를 펼쳤습니다.

지금은 나이키, 아디다스, 언더아머로 대표되는 스포츠 브랜드에서 르브론 제임스, 데미안 릴라드, 스테픈 커리와 같은 슈퍼스타들의 시그니처 농구화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는데요. 사실 세계 최초의 기능성 농구화를 만든 브랜드는 위의 브랜드가 아니란 사실, 알고 계시나요. 오늘은 세계 최초의 기능성 농구화 ‘Non Skid’를 만든 회사, 컨버스의 창업자 마퀴스 밀 컨버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미퀴스 밀 컨버스
고무가 가져올 혁신 내다본 제화공, 컨버스
잉글랜드 혈통을 가진 마퀴스 밀 컨버스는 1861년 10월 피터 밀스 컨버스와 사라 컨버스의 아들로 뉴햄프셔주 라임이란 도시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에서도 마퀴스 컨버스는 굉장히 미스터리한 인물입니다.

그가 1908년 컨버스를 창업하기 이전의 이야기는 사실 알려진 것이 별로 없습니다. 미국에서도 그의 창업 전 이야기에 대해선 ‘카더라’ 뿐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일부 자료에는 그가 1861년 태어난 것은 맞지만 10월이 아닌 8월, 그리고 뉴햄프셔주가 아닌 매사추세츠 몰든에서 태어났다고도 합니다. 몰든은 그가 컨버스를 설립한 도시이기도 합니다.

컨버스 광고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컨버스의 아버지 피터 컨버스 역시 신발을 만들고 제작하는 제화공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장인 정신과 신발에 대한 사랑을 가지로 자라온 마퀴스 컨버스는 직접 신발을 만들고, 신발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는 등 관련 전문성을 차근 차근 쌓아 올렸습니다. 그리고 그가 청년기를 보내년 19세기 후반 신발 산업에는 새로운 혁신이 대두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전통적 관점에서 신발은 가죽을 오리고 한 땀 한 땀 바느질해 만들어내는 수제화의 개념이었습니다. 하지만 산업혁명기를 지나치며 기계를 활용한 대량생산과 표준화, 공정화에 대한 개념이 확산했고 신발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는 신발 생산 방식의 변화를 꾀하게 했습니다.

산업혁명이 가져온 스니커즈의 탄생
산업혁명은 생산기술 뿐 아니라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 변화라는 측면에서도 신발 산업에 전환점을 제공합니다. 걸어가거나 동물의 힘을 빌려 이동했던 과거와 달리 기계를 조립해 만든 자동차의 생산은 여행을 떠나거나 여가생활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고 이러한 여가 생활을 즐기기 위해선 기존의 딱딱하고 불편한 신발을 개선해야할 필요성도 커졌습니다.

그렇게 등장한 것이 폭신폭신한 소재로 오랜 시간 신어도 발이 덜 아픈 고무 밑창 신발입니다. 세계 최초의 고무 밑창 신발은 1876년 영국 ‘뉴 리버풀 러버’(New Liverpool Rubber Company)가 만든 샌드슈즈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신발은 크로켓 게임을 위해 제작된 일종의 운동화였습니다.

컨버스 신발
지금은 저렴한 가격에 대량 생산이 가능한 고무라는 소재가 흔하지만 처음 고무신발이 탄생한 당시만 해도 고무는 제작도 쉽지 않고 가격도 비싼 소재였습니다. 그렇다보니 고무 밑창을 달고 있는 운동화는 상류층과 부자들의 전유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반대로 가죽으로 제작하는 신발이 상대적으로 저렴했고 대다수 신발은 가죽을 이용해 제작하는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컨버스 역시 이러한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전문가였고 머지않아 고무 밑창 신발의 시대가 올 것이라 예견했습니다.

그 사이 산업혁명은 고무 밑창의 대중화에도 크게 기여합니다. 1892년 미국의 타이어 왕 찰스 굿이어가 가황 공법(벌커나이즈드 제법)이라는 기술을 개발해 튼튼한 고무의 대량생산을 이끌었습니다. 이 공법은 고무와 캔버스 천이나 다른 성분 등을 고열에 한데 녹여 더욱 견고하고 영구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고무 소재를 만들수 있게 했습니다. 특히 두꺼운 고무 밑창을 단 신발은 조용하고 민첩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해주어 당시 사람들을 이를 스니커즈(Sneakers)라고 불렀습니다. sneak는 살금 살금 움직인다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고무의 생산 경쟁력이 높아지기 시작하자 컨버스는 이러한 시대의 변화를 발 빠르게 포착합니다.

그가 40대 후반의 나이에 접어든 1908년, 컨버스는 성장하는 고무 밑창 신발을 본격적으로 생산하고 판매하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건 컨버스사를 세우게 됩니다. 그는 부자들의 전유물이던 고무 밑창 신발을 남성·여성, 어른·어린이 할 것 없이 누구나 신을 수 있는 신발로 제작하겠단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의 계획은 정확히 시장의 수요를 자극했습니다.

컨버스는 2년만에 매일 4000개의 신발을 생산하는 초대박을 터트렸습니다. 당시 스니커즈의 인기는 대단했는데 컨버스 뿐 아니라 케즈, 리복, 다슬러 브라더스(현재의 아디다스와 푸마)와 같은 브랜드도 고무 밑창을 이용한 스니커즈로 인해 대중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컨버스 논 스키드 광고
컨버스는 치열한 스니커즈 시장 경쟁에서 앞서나가기 위해 디자인과 마케팅 등에서 차별화를 꾀합니다. 성별, 세대별 나이별 제품군과 방한용 신발 등 기능성 제품을 만들던 컨버스는 테니스 스포츠용 컨버스 신발을 유행시키며 스포츠 산업에서도 인지도를 높이기 시작합니다. 컨버스의 테니스화 매출은 급성장하며 주요 사업부로 자리매김 합니다.
세계 최초의 기능성 농구화 만든 컨버스
그리고 1917년, 100년 넘게 컨버스 사를 대표하는 제품인 논 스키드가 탄생합니다. 지금은 청바지나 캐주얼 스타일에 잘 어울리는 스니커즈의 대명사지만 컨버스는 세계 최초의 기능성 농구화인 논 스키드 제품을 시장에 선보입니다. 사실 논 스키드보단 컨버스 올스타, 또는 척테일러 올스타로도 더 익숙하실 텐데요. 그 뒷이야기도 재미있습니다.
컨버스를 신은 척 테일러
논 스키드를 출시한 컨버스 사는 몇몇 농구선수들에게 이 농구화를 후원했는데요. 그렇게 후원한 선수 중 한명이 바로 찰스 척 테일러라는 선수입니다. 1921년 척 테일러는 컨버스의 착화감에 대해 개선을 제안하면서 컨버스와의 인연이 깊어집니다. 컨버스 역시 아예 척 테일러와 직접 제휴를 맺고 선수활동과 더불어 홍보모델로 기용합니다. 이 후 1923년 논 스키드 농구화에는 컨버스 올스타 패치와 척 테일러의 서명이 들어가며 컨버스의 논 스키드 농구화는 척 테일러의 시그니처 농구화가 됩니다.
척 테일러 올스타 로고
이후 척 테일러는 생을 마감하던 1969년까지 농구와 컨버스를 전세계에 알리고 홍보하며 ‘농구화=컨버스’라는 인식을 만들어내는데 공을 세웁니다. 실제 1950~1970년대 NBA에서 컨버스의 시장 점유율은 80~90%에 육박했고 1936년부터 1968년까지는 올림픽 공식 슈즈로 선정됐습니다.

전설적 농구스타이자 지금은 나이키 조던 브랜드의 아이콘인 마이클 조던 역시 자신의 시그니처 농구화 출시 전에는 컨버스 농구화를 신고 있었다는 사실도 흥미롭습니다. 1984년 LA 올림픽에서 마이클 조던이 착용했던 컨버스 농구화는 지난 2017년 2억 1000만원에 경매 판매되기도 했습니다.

컨버스를 신고 있는 마이클 조던
스포츠를 넘어 패션으로 확장해간 컨버스
기능성 농구화였던 컨버스 올스타는 1970년대 또다시 부흥의 기회를 잡습니다. 당시 할리우드 스타들과 로큰롤 스타들이 패션 아이템으로 컨버스 올스타를 신기 시작하면서였죠. 믹스 앤 매치 스타일이 유행하면서 캐주얼 청바지에 농구화지만 스타일이 예쁜 컨버스 신발을 신기 시작한 것입니다. 당대 유명 록밴드 AC/DC, 라몬즈 등이 컨버스 스니커즈를 신기 시작하며 이제 컨버스의 영역은 스포츠에서 패션으로 확장됩니다.
2억1000만원에 팔린 마이클조던이 신은 컨버스 농구화
화려했던 전성기를 맞았던 컨버스는 1980년대 이후 빠르게 변화하는 패션업계의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습니다. 경쟁사인 나이키와 아디다스, 리복 등이 스포츠업계를 중심으로 빠르게 따라왔고, 컨버스의 대표작인 올스타 모델 이후로 컨버스는 뾰족한 히트작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결국 스포츠와 패션 양면에서 경쟁력을 잃은 컨버스는 결국 2001년 파산 신청을 하고 공장이 문을 닫는 최대 위기를 맞이합니다. 그리고 2년 뒤인 2003년 컨버스보다 늦게 농구화 시장에 진출했던, 그 브랜드 나이키에게 3억 5000만 달러에 인수됩니다.

이 후 나이키의 뛰어난 마케팅 역량과 시너지 효과로 현재 컨버스는 또다시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컨버스 로고
2024년 2월은 컨버스가 창업한 지 꼬박 116년이 되는 시기입니다. 잘 모르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여전히 컨버스 농구화는 꾸준히 출시되고 있으며 컨버스 올스타의 인기 역시 꺾임이 없습니다. 그리고 고무 밑창 신발의 미래를 봤고 척 테일러의 가능성을 감지한 마퀴스 컨버스의 창업 정신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마퀴스 컨버스는 생을 마감한 1931년까지 컨버스를 이끌었습니다. 현재 컨버스가 패션업계에 미치는 영향력을 당시 마퀴스는 예견했을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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