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민주당 지지자였던 그는 왜 변심했나...내로라 하는 기업들도 맞장구쳤다는데 [지식人 지식in]
美민주당 지지했지만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에 반기
하버드대 반유대주의 움직임에 발끈
反DEI 확산에 기름…대선 앞두고 정치쟁점화
‘DEI’라고 들어보셨나요? Diversity(다양성), Equity(형평성), Inclusion(포용성)의 머릿글자만 따서 조합한 단어입니다. DEI는 생소할 수 있지만 아마도 ‘ESG’는 익숙할 겁니다. Environmental(환경), Social(사회적 책임), Governance(지배구조)의 첫 글자를 딴 것으로 기업의 친환경 경영, 사회적 책임, 투명한 지배구조를 뜻합니다. 비재무적인 요소이지만 기업이 지속가능하려면 반드시 추구해야 할 철학으로 꼽힙니다.
이 중에 ‘S’ 즉 사회적 책임의 핵심 개념이 바로 DEI입니다. 2020년 5월 발생한 조지 플로이드 사건을 계기로 DEI는 사회적 책임의 중요한 덕목으로 부상했습니다. 여기서 잠시 조지 플로이드 사건을 설명하자면,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백인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비무장 상태의 흑인 청년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한 사건입니다. 이를 계기로 미니애폴리스에서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BLM)’ 시위가 시작됐으며 미국 전역으로 확산됐습니다. 이후 DEI는 미국 대다수 기업과 대학교, 정부 등에 전방위적으로 확산하면서 소수인종 우대 정책이 보편화되고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애크먼이 처음부터 DEI에 반대한 것은 아닙니다. 그는 오랜 민주당 지지자로서 오바마, 힐러리, 바이든에 투표했고, ESG의 강력한 후원자였으며, 수천 명 이민자들이 미국에서 대학을 다닐 수 있도록 장학금을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애크먼 회장은 “자유시장경제 시스템을 이끄는 강력한 힘은 능력주의인데, ESG 그 중에서도 DEI를 향한 경주가 능력주의 가치를 훼손하고 우리를 숨막히게 한다”고 주장합니다. 또 “일부 계층의 DEI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정치인들의 지나친 선전이 오히려 능력있는 사람들에 대한 역차별을 낳고 있다”고 강조합니다. 그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도 DEI에 반대할 것”이라고 외쳤습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미국의 목사이자 흑인인권운동가지요.
무엇이 그의 생각을 이렇게 180도 바꿔놓았을까요. 최근 워싱턴포스트가 애크먼 회장과의 수 차례 인터뷰를 통해 그의 생각을 분석했습니다. 그의 생각을 바꾼 첫번째 계기는 지난 해 10월 발발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인 것 같습니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공격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인질로 잡아간 사건이었죠. 이 때 하버드대 일부 학생들이 모여 하마스 공격의 책임을 이스라엘로 돌리는 성명을 발표합니다. 그리고 상당수 학생들이 성명서에 서명을 했지요. 애크먼 회장은 여기에 격분한 것 같습니다. 물론 본인과 부인이 유대계 인물이라는 점이 상당히 작용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 애크먼 회장도 하버드 출신이기 때문에 자신의 후배들이 그런 행동을 한 것에 대해 더 크게 실망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애크먼 회장은 즉시 자신의 X(옛 트위터) 계정에 “성명에 서명한 학생들은 월스트리트 취업 블랙리스트에 올랐다”고 공개했습니다. 일부 놀란 학생들은 서명을 취소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애크먼의 과격한 발언과 행동은 마침 갓 취임한 하버드대 총장이 흑인 여성이라는 점 때문에 인종차별, 성차별 논란도 야기했습니다. 애크먼 회장의 하버드대 재학시절 은사였던 데이비드 토머스 모어하우스대 총장은 “흑인여성 총장의 자격 문제를 거론한 것은 숨겨진 메시지가 있는 듯하다”고 비판한 것이지요.
애크먼의 생각은 미국의 많은 사람들(물론 백인과 유대인이 대부분이지만)에게 퍼져나갔습니다. 그러면서 DEI를 지지하는 집단과 DEI를 비판하는 집단이 대결적인 구도에서 논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지난 해 6월 미국 연방대법원이 대학교 입학과 기업의 고용 과정에서 소수 인종을 우대한다는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에 위헌 판결을 내리며 애크먼 진영에 더욱 힘이 실렸습니다. 이 판결 이후 PwC, 화이자, 모리슨포스터 등 내로라하는 미국 굴지의 기업들이 흑인 우대제도를 폐지하거나 대폭 수정에 나섰습니다.
심지어 최근에는 미국 8개 주에서 DEI정책을 금지하는 법을 통과시켰습니다. 물론 텍사스 유타 테네시 노스다코타 노스캐롤라이나 등 보수성향 지역이기는 하지만 백인 역차별에 대한 미국인들의 반감이 얼마나 심한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지요. 유타주가 승인한 DEI정책 금지법은 공립 교육기관과 공공기관에서 DEI정책을 퇴출하는 것입니다. 각종 프로그램에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없고, 능력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을 인종차별이나 성차별로 치부하는 것도 금지됩니다. 공립 교육기관에서는 일부 소수인종 학생을 선별적으로 지원하는 대신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지원해야 합니다. 텍사스주는 공공기관에서 소수인종을 우대하거나 다양성을 촉진한다는 이유로 채용에 가산점을 줄 수 없게 됐습니다. 또 학교마다 설치된 ‘다문화촉진센터’를 폐쇄하고, 교내 행사에 흑인이나 히스패닉, 아시아계 학생들을 위한 별도의 자금지원도 중단됐습니다. 테네시주는 공립대학들이 직원들에게 편견 해소를 위한 의무교육을 실시하는 것을 금지시켰습니다.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24년전 의사파업 이끌어봐서 아는데”…‘법학 박사’ 의대교수의 한마디 - 매일경제
- 유명 작곡가 신사동호랭이, 숨진 채 발견 - 매일경제
- “넌 몇층 전자에 갇혔니”…‘반도체 호황’에도 삼성은 울상, 이유 알고보니 - 매일경제
- “아가씨, 남기면 환불해 주나”…5명이 2인분 고집, ‘진상 손님’의 반전 - 매일경제
- “K-주식 결전의 날 다가온다”…주말 사이 투자자들 잠 못 든다는데 - 매일경제
- “듣보잡 코인인줄 알았는데 터졌네”…비트코인도 따라잡은 ‘이것’ 뭐길래 - 매일경제
- “삼겹살 2kg이 2만원” 진짜 맞나요?…‘바가지 NO’ 삼삼한 축제 열린다 - 매일경제
- 총선 앞두고 ‘정면돌파’ 이재명, 사이다일까 일방질주일까 - 매일경제
- [속보] 美 신규 대러시아 수출통제 대상에 한국기업 1곳 포함 - 매일경제
- 日 기자의 조언 “이정후,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이치로를 찾아가라” - MK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