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4위 전락한 일본·25년만에 뒤진 한국…양국의 공통점은? [한중일 톺아보기]
해외 자금이 대량 유입되면서 증시도 호황입니다. 연일 상승가도를 달리던 닛케이 지수는 지난 22일 34년여 만에 거품붕괴 직전이었던 1989년 12월 기록했던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고, 0%에 수렴하던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2%에 근접했습니다.
코스피는 영 신통치 않고 지난해 경제성장률도 25년만에 일본에 역전당한 한국과 대조적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일본에게서 과거 전성기 마냥 잘 나가는 모습을 기대할 순 없습니다. 성숙경제인 일본은 현재 사람으로 따지면 60대 노인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성장 한계를 나타내는 징후들도 뚜렷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15일 일본 내각부는 지난해 자국의 GDP 규모가 독일에 밀려 4위로 떨어졌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신흥국들의 부상으로 IMF 등 국제 기관들은 일본의 GDP가 2026년이면 인도에게도 추월당해 5위로 밀릴 것으로 관측하고 있습니다.
근로자들의 실질임금도 20개월 연속 후퇴중 입니다. 호황이라는데 정작 일반시민들 사이에서는 체감하기 어렵다는 소리가 나오는 이유 입니다. IMF는 올해 일본의 GDP 성장률이 다시 1% 전후로 떨어지며 한국을 밑돌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감소 등 구조적 문제가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히곤 하지만, 다른 요인들도 거론됩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교육관련 문제입니다.
일본 경제지 ‘도요게이자이’는 지난 수십년간 일본 경제가 지지부진했던 배경으로 교육 시스템의 영향, 특히 제대로 된 수학교육의 부재에 있다고 짚었습니다. 수학 경쟁력 저하가 과학기술 경쟁력에 악영향을 미친 결과라는 겁니다.
국내에서도 명칭이 제법 알려진 일본의 ‘유토리 교육(ゆとり敎育)’은 ‘여유 있는 교육’을 뜻하는데, 소위 주입식에서 탈피해 전인교육을 지향한다는 교육 방식이었습니다. 과중한 학업부담을 문제로 수업시간과 지도 내용을 대폭 줄인 것이 가장 큰 특징으로, 일본교직원조합(일교조)이 처음 제기했죠.
실질적으로 2000년대 부터 시작돼 2010년대 초반까지 실시됐는데, 해당 기간 학창시절을 보낸 1980년대~2000년대 학생들은 ‘유토리 세대’ 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유토리 교육은 그럴 듯한 취지와 달리 저학력화, 교육격차 등 문제점들을 양산하면서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유토리 세대라고 하면 ‘학력 저하 세대’라는 의미도 내포돼 있습니다. 그리고 유토리 교육으로 가장 큰 영향을 받았던 과목으로 지목되는 것이 수학 입니다.
실제로 1998년 학습지도 요령 개정으로 일본의 교육과정에서 수학교육 관련 수업 시간은 30% 이상 줄어들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중학교 1~3년 학생들이 받는 수학 수업 시간은 보통 주 3시간에 불과해, 전세계적으로 가장 적은 수준이었습니다. 그나마 이것도 최대한 남겨 둔 것으로, 1990년대 후반 몇몇 지방의 고등학교들에서는 수학교원이 단 1명도 없어 제대로 된 수업이 어려웠던 경우까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죠.
같은 기간 미국에서는 수학교사협의회(NCTM)가 ‘수학 교육 및 평가 기준’을 발표하고 교육부는 ‘Mathematics Equals Opportunity(수학으로 확대되는 미래 기회)’라는 원칙을 강조하는 등 수학 교육 강화에 나섰던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2008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마스카와 토시히데 교토대 명예교수는 일본의 교육에 대해 수차례 쓴소리를 한 바 있습니다.
예컨데, 그는 “학생들이 대입 등에서 어려운 문제는 피하고 쉬운 문제만 택하도록 지도받고 있다”며 “이는 생각하는 힘을 약화시키는 것으로 교육을 오염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부모들에 대해서도 ‘모로가도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식이라며 “교육에 열심인 게 아니라 교육 결과에만 열심” 이라고 꼬집었습니다.
특히 그는 수학에 있어 답에 이르는 과정을 중시했기 때문인지 노벨상 수상 당시 기자회견에서 “지금의 OMR식 수학 시험 방식은 (서술식으로) 바꾸는 편이 좋겠다”고 조언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죠.
일본에서 꾸준히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배출되는 상황에 대해서는 “최근 수상자가 나왔다고 해서 지금 일본 과학이 만세라고 할 순 없다”며 “연구 성과는 수십 년은 지나서 평가되는 것이기 때문” 이라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수학교육에 대해서는 답을 도출하는 과정을 밝히는 서술형 문항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관련 부처는 물론 교육 현장에서도 확산되고 있다고 합니다. 때문에 현재 일본에서 수학교육을 강화 하려는 의지는 ‘유토리 교육’시대에 비하면 훨씬 강해진 모습입니다.
한때 떨어졌던 일본 학생들의 수학 성적도 최근 다시 상위권에 포진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난 2019년 TIMSS(수학·과학 성취도 추이 변화 국제비교 연구)결과 일본 학생들의 수학 성적은 초등학생은 조사대상국들 중 4위, 중학생은 5위를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일본 학생들의 수학에 대한 흥미도는 조사대상국 평균치를 크게 밑돌고 있습니다. 이에 수학자 등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수학 교육 강화와 함께 학생들의 수학에 대한 흥미를 북돋아 주는 방안을 찾아야 내실있는 수학교육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에 교육부는 지난해 말 입시 경쟁을 줄이고 문·이과 통합 취지를 반영하기 위해 2028학년도 수능부터 수리영역 선택과목 ‘심화수학(미적분Ⅱ와 기하)을 신설하지 않는다고 발표했습니다. 대입 수학시험 범위가 사실상 기존 ‘문과수학’ 범위로 축소되는 것입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사교육 유발, 지나친 학습 부담, 학습격차로 인한 학생들의 흥미 저하 등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심화수학을 제외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결정에 우려를 쏟아내는 전문가들이 많습니다. 학생들의 수학 기초학력 저하와 장기적 국가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겁니다.
박종일 대한수학회장은 “교육이란 과목이 어렵고 쉽고를 떠나 각 학년 수준에서 꼭 필요한 것을 배워야 하는 것”이라며 “쉽게 가르치려는 노력은 필요하지만 어렵다고 빼버려선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차상균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 특임교수도 “어렵다고 범위를 줄일 게 아니라 재미있게 가르칠 생각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실제로 이미 미적분과 기하 중 하나만 공부해도 이공계열로 진학할 수 있게된 통합수능 이후, 국내 이공계에서는 학력저하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서울대에 따르면 지난해 이공계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수학 특별시험 결과, 저득점으로 ‘기초수학’과 ‘미적분학의 첫걸음’ 수강자로 분류된 학생이 1년새 약 40%나 늘었죠.
미래 국제질서는 AI, 양자역학, 우주과학 등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나라들이 주도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그리고 이런 분야들의 기초는 결국 수학입니다. 미국, 중국, 인도 등 주요국들이 학생들의 심화수학 역량을 키우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모습은 한국과는 사뭇 대조적 입니다.
안그래도 최근 한국의 성장동력이 한계에 달한 듯한 신호가 잇따르면서, 혐한론자 등 일각에서 “한국은 이제 끝났다” 라는 ‘피크 코리아’론이 번지고 있습니다. 정점을 찍은 한국의 앞길에는 내리막길만 남았다는 조롱입니다. 미래 교육 경쟁력 저하가 한국에 남아있는 재도약을 위한 희망을 앗아가 그들의 조롱이 현실이 돼버리진 않을까 우려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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