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선에 돌발변수 된 냉동배아…바이든은 맹공, 트럼프는 '역풍' 차단
미국에서 체외 인공수정(IVF·시험관 아기)을 위해 만들어진 냉동 배아(수정란)를 '태아'로 인정한 앨라배마주 판결이 나오면서 올해 대선의 돌발변수로 떠올랐습니다.
민주당과 백악관은 낙태금지에 이어 IVF까지 막을 태세인 미국 보수 진영을 거세게 비판하며 공세에 나섰고 2022년 중간선거에서 연방대법원의 낙태권 폐지 판결 후폭풍에 패배했던 공화당은 대책 마련에 고심하는 양상입니다.
23일(현지시간) 미국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에 따르면 하원 민주당 슈퍼팩(Super Pac·특별정치활동위원회)인 '의회 다수 PAC'(HMP)는 이번 논란과 관련해 공화당을 겨냥한 공격에 나서겠다고 선언했습니다.
HMP는 이날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란이 형성된 단계부터 '사람'으로 봐야 한다는 법안을 지지한 전력이 있는 경합지 출신 공화당 전·현직 하원의원 수십 명의 이름이 적힌 메모를 배포했습니다.
그러면서 "HMP는 (그런 법안을) 지지한 전력이 올해 가을 경합이 벌어질 전국의 하원의원 선거구에서 그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임을 보장한다"고 말했습니다.
11월 5일 미국 대선과 함께 치러질 하원의원 선거를 앞두고 해당 인사들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부정하는 인물이란 내용의 광고를 제작하는 데 상당한 자금을 쏟아붓겠다고 밝힌 것입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백악관도 공화당 대선후보로 유력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정조준한 채 여성의 생식권 문제를 대선 쟁점화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22일 성명을 내고 "스스로와 자기 가족들을 위해 이런 결정을 할 수 있는 여성의 능력을 무시한다는 게 너무 충격적이고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이것은 '로 대(對) 웨이드' 폐기의 직접적인 결과"라고 말했습니다.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이번 사태의 책임이 있다고 한 것으로 보입니다.
트럼프는 자신이 대통령으로 재임하면서 연방대법원을 '6대3' 보수 우위로 재편한 덕분에 임신 6개월 전의 낙태를 합법화한 '로 대 웨이드' 판례를 2022년 폐기할 수 있었다며 이를 자신의 치적으로 내세워 왔습니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도 23일 언론 브리핑에서 "이 혼란은 거의 50년간 이 땅에서 통용돼 온 로 대 웨이드를 폐기한 데서 나온 것"이라면서 "의회에서 입법을 통한 해법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거센 역풍이 불 조짐이 보이자 상·하원 공화당원들은 이번 사안과 최대한 거리를 두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공화당 텃밭으로 꼽히는 지역에서조차 낙태권 논란에 휘말려 여럿이 낙선한 2022년 중간선거 결과가 재연될 것을 우려해서입니다.
일부 의원들은 앨라배마주 판결이 잘못됐다며 발빠르게 선긋기에 나섰고, 공화당의 다수당 복귀를 목표로 하는 조직인 전국공화당상원위원회(NRSC)는 "IVF를 제한하려는 정부의 노력을 명확하고 간결히 거부할 것"을 상원의원 후보자들에게 촉구하는 메모를 배포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도 23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우리는 엄마와 아빠들이 아기를 갖는 것을 더 쉽게 만들고 싶지, 힘들게 하고 싶지 않다"면서 "앨라배마주 의회가 앨라배마에서 IVF를 계속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즉각적인 해법을 신속히 찾을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습니다.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과 경쟁 중인 니키 헤일리 전 유엔 대사는 "내게 배아는 아기들"이라며 앨라배마주 법원 판결을 두둔한 지 하루 만에 "앨라배마주가 원위치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며 입장을 뒤집기도 했습니다.
난임치료병원이 IVF 시술을 잇따라 중단하는 등 혼란 속에 궁지에 몰린 앨라배마주 공화당은 대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AP 통신은 공화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앨라배마 주의회가 산모의 자궁에 이식되기 전까지 배아의 인격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별도의 입법을 준비 중이라고 보도했습니다.
너새니얼 레드베터 앨라배마 주하원의장은 "앨라배마 사람들은 태아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고 강하게 믿지만, 많은 이들에게서 임신 기회를 부정하는 주대법원 판결 결과는 이와 정반대의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만, 공화당 일각에선 여전히 앨라배마주 대법원의 판결을 지지하면서 여성들에게 시험관 아기 시술을 받지 않도록 권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등 분열상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고 AP 통신은 덧붙였습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대선을 앞두고 낙태와 관련된 싸움에 새로운 전선이 열렸다"면서 "냉동배아를 '어린이'로 봐야 한다는 앨라배마주 대법원 판결이 많은 공화당원들에게 새로운 정치적 악몽을 만들어 냈다"고 평가했습니다.
(사진=AP, 연합뉴스)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Copyright ©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기자님 집도 혹시 몰라요"…내 등기부등본도 불안해졌다 [취재파일]
- [뉴스토리] 세계 입맛 잡은 '김'의 비결
- 이웃집에 소변 추정 액체 수십 차례 뿌린 40대 '징역 1년'
- '헤어지자' 통보한 연인 스토킹하고 사생활 폭로 협박한 40대 징역형
- 이근 전 대위, 군용 최루탄 판매 논란…"테러 악용 우려"
- 남조선 대신 "대한민국"…최근 '괴뢰한국' 자주 쓰는 북한
- 집단행동 닷새째 의료 공백 심화…"공공의료 진료 확대"
- 나발니 측 "러, 비공개 장례 안 하면 시신 교도소에 묻겠다 통보"
- "미 무인우주선, 달 표면에 누워 있어…착륙 때 넘어졌을 가능성"
- 서울 휘발유 1천700원 돌파…주유소 기름값 4주째 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