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탕국, 밥상서 왔나 한방서 나왔나 [박영순의 커피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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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탕국'이 커피를 뜻하는 어휘로 통용된 최초의 순간을 알기는 힘들다.
조선 말기 개항과 함께 눈에 띄게 된 커피를 기이하게 여기며 부른 말로 추정된다.
'서양의 탕국'이라고 불리다가 점차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늘어나 회자하면서 말하기 좋게 '양탕국'으로 변용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 말기나 대한제국 시기의 공공 문서나 문헌에 양탕국이 기록된 사례는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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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탕국’이 커피를 뜻하는 어휘로 통용된 최초의 순간을 알기는 힘들다. 조선 말기 개항과 함께 눈에 띄게 된 커피를 기이하게 여기며 부른 말로 추정된다. ‘서양의 탕국’이라고 불리다가 점차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늘어나 회자하면서 말하기 좋게 ‘양탕국’으로 변용된 것으로 보인다.

그로부터 9년이 지난 2024년의 정서로 이 사안을 봤다면 판결이 달라질 수도 있다. 국민 1인당 매일 한 잔 이상의 커피를 마신다는 지표가 나올 정도가 됐다. 커피 관련 문화와 정보도 확산돼 양탕국이라고 하면 커피를 지칭하는 것으로 아는 사람들이 상당하다. 이제 ‘양탕국=커피’는 ‘와인=포도주’만큼 선명한 등식이 됐다.
언어는 생물이다. 시대에 따라 쓰임과 뜻이 변한다. 말을 담은 문자도 다를 수 없다. 예를 들어 ‘초코파이’는 ‘초콜릿을 묻힌 빵 사이에 마시멜로를 넣고 포개어 만든 과자’라는 의미를 담아 1976년 새롭게 등장한 용어였다. 특정 업체가 상표권을 독점했지만, 14년 만인 1990년 독점권을 상실했다. 초코파이가 상품의 보통 명칭처럼 무분별하게 사용돼 식별력을 상실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커피라는 서양의 문화에 우리 고유의 정서가 담긴 ‘양탕국’도 대중의 사랑이 넘치게 되면 ‘독점의 굴레’에서 해방된다. 시간이 지니는 위대한 힘이다. 모든 것은 공기처럼 누구나 자유롭게 숨 쉬는 쪽으로 진화하는 까닭이다.
어쨌든, 양탕국은 들여다볼수록 끌리는 단어이다. 탕이면 탕이지 왜 ‘국’자가 붙었을까? 또 국이면 국이지 왜 ‘탕’을 넣었을까? ‘역전앞’이나 ‘처갓집’, ‘고목나무’처럼 습관이 된 겹말을 흉볼 일은 아니다. 그러나 양탕국에서 탕국은 좀 다르다.
조선왕조실록의 고종실록에 적힌 ‘수라상에 오른 가배’의 사연을 보면, 당시 커피를 한약처럼 달여 마신 것으로 추정된다. 커피의 검은 빛깔도 제사상에 오르는 탕과는 완연히 다르다. 한약탕에 더 가깝다. 한약의 제형 가운데 탕(湯)은 물로 달여 성분을 빼내는 것이다. 몸에 잘 흡수돼 약효가 빠른 장점을 갖는다. 성분을 빼내는 커피 추출 과정은 탕제와 원리가 같다.
‘국’은 순우리말이다. ‘고기, 생선, 채소에 물을 많이 붓고 간을 맞추어 끓인 음식’이라는 뜻과 함께 ‘찌개 따위의 음식에서 건더기를 제외한 물’이라는 의미가 있다. 찌꺼기를 걸러내는 커피 추출 방식과 통한다. 유길준은 서유견문에서 “서양인들은 커피를 숭늉 마시듯 한다”고 적었다. 커피를 탕제가 아니라 밥상에 오르는 음식처럼 대한 것이다.
양탕국은 ‘약이자 음식인 커피의 본질’을 제대로 포착한 우리네 표현이다.
박영순 커피인문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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