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도 못 푼 굴레… 조선인·아이누의 홋카이도 잔혹사 [일본 속 우리문화재]
#2. 2015년 9월, 경기도 파주의 한 납골당에 유골 115구가 모셔졌다. 홋카이도에서 시작해 도쿄, 오사카, 히로시마, 시모노세키 등 일본열도를 위아래로 횡단한 긴 여정의 끝이었다. 일제강점기 강제노동에 시달리다 끝내 목숨을 잃은 이들의 귀국은 70년 만에야 이뤄졌다.
◆와진의 홋카이도 진출, 아이누의 소멸 위기
1604년 홋카이도 남쪽 지역에 자리잡은 마츠마에번이 도쿄 막부로부터 아이누와의 교역에 관한 권리와 지배자로서의 지위를 보장받은 문서 ‘고쿠인죠’(黑印狀)를 받으면서 이전까지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이뤄지던 교류 양상은 크게 바뀌었다.
소멸마저 걱정해야 했던 아이누는 20세기 들어 토지권, 편견·차별 철폐 등을 요구하며 목소리를 냈다. 1930년 아이누 청년단체가 마련한 연설회 포스터에는 차별적인 아이누관(觀) 시정, 아이누 정책의 문제점 등을 지적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조선 각지에서 강제징용됐다”
현재의 홋카이도를 만든 지난 100년을 돌아보며 주로 금속광산, 탄광에서 일한 조선인 노동자의 존재에 주목한 박물관이 이들의 희생과 고통을 비교적 솔직하게 들여다 보고 있어 눈길을 끈다.
조선인 노동자들의 홋카이도 유입을 ‘강제징용’으로 못박은 점이 우선 눈길을 끈다. 1930년대 일제가 중국, 동남아시아, 서태평양에서 전쟁을 확대하면서 홋카이도 젊은이들이 전장으로 끌려가 생긴 공백을 메꾸기 위해 강제로 끌려왔다고 했다. 강점기 강제동원 피해 배상소송과 관련해 강제성 자체를 부인하는 지경에까지 이른 일본 정부의 태도와는 다르다. 박물관은 조선인 노동자의 홋카이도 도착을 다룬 당시 신문기사를 보여주며 “1939년 가을 조선 각지에서 모집된 조선인들이 홋카이도에 왔다”며 “10월 하순 이후 (홋카이도) 각지 금속광산, 탄광에서 그 조선인들이 작업을 거부하는 사건이 계속됐다”고 소개했다.
‘1939년 10∼12월 발생한 이주 조선인 노동자 관계 쟁의’라는 제목의 전시 패널에는 당시 조선인 노동자들이 격었던 참담한 상황이 담겨 있다.
10월 21일 미쓰비시테이네 광산에서 293명이 7개의 요구조건을 내걸고 작업거부에 들어갔다. 요구 조건에는 식사개선이 포함되어 있었다. 구타는 일상이었던 듯 여러 건의 쟁의에서 원인이 됐다. 스미모토코노마이광산에서는 일본인 지도원, 광부가 조선인 노동자를 구타한 것에 항의하는 쟁의가 있었다. 미쓰비시비바이광산에서는 일본인 광부가 조선인 노동자에게 상처를 입혀 30명이 항의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망사고는 극단적 분노를 촉발했다. 미쓰이비바이광산에서 동료 2명이 압사하는 사고가 발생하자 98명이 작업 거부에 돌입했다. 미쓰비시테이네광산에서는 시신 처리, 장례 참가 인원 제한 등에 대대적으로 항의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홋카이도=글·사진 강구열 특파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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