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이 나를 죽이려 한다면, 나는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사망 전날 여유로운 모습, 암살 의혹 키워
러시아 정부, 나발니 추모 시민 체포·구금
'反푸틴 운동 핵심은 인터넷' 15년 전 예견
블로그 통해 푸틴 재산·숨겨진 딸 등 폭로
그동안 수 차례 독극물 등 암살 위기 넘겨
배우자 율리아 나발나야, "남편 뜻 잇겠다"
■ 방송 : CBS 라디오 <오뜨밀 라이브> FM 98.1 (20:05~21:00)
■ 진행 : 채선아 아나운서
■ 대담 : 박수정 PD, 조석영 PD
◇ 채선아> 지금 이 순간 핫한 해외 뉴스, 중간 유통 과정 빼고 산지 직송으로 전해드리는 시간이죠. '앉아서 세계 속으로' 박수정 PD가 전해드립니다.
◆ 박수정> 대통령 선거가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충격적이지만 예측할 수 있었던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저격수이자 정적이라고 불리는 알렉세이 나발니가 현지시각 16일, 감옥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는데요. 교도소 측의 공식 입장에 따르면 나발니는 산책하러 나갔다가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고 합니다. 정확한 사인은 조사 중이라고 발표했습니다. 나발니가 수감됐던 감옥이 러시아의 감옥 중에서 가장 악명 높은 곳이에요. 무려 시베리아에 있는 곳인데요. 야말로-네네츠 자치구 하르프 제3교도소(IK-3)라고 워낙 힘든 곳에 있었다고 해서 예상된 결과가 아니었냐는 반응도 있습니다.
◆ 조석영> 처음에 거기로 보낼 때부터 사망하는 거 아니냐, 그런 얘기들이 나왔어요.
◇ 채선아> 여기까지는 많이 보도됐고, 구체적인 내용이 궁금해요.
◆ 조석영> 이분이 교도소 안에서 한국의 컵라면 도시락을 좀 여유있게 먹고 싶다,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 박수정> 탄압받는 상황에서도 건강과 유머 감각을 유지할 정도로 여유가 있었던 인물입니다. 교도소에서 잠도 못 자게 하고 독방에서 푸틴의 연설을 듣게 했다고 하거든요. 그런 상황에서도 가족들의 증언에 따르면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면회 갈 때마다 아주 건강한 몸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고 해요. 사망 전날 온라인 재판이 열려서 영상으로 판사와 이야기하는 순간이 있었는데 그때조차도 판사에게 능글맞게 농담하는 영상이 남아 있습니다. '판사 월급 많죠? 나 영치금 좀 넣어줘요' 이렇게 농담을 하기도 하고요.
그런 그가 갑작스럽게 산책 중에 사망을 했다고 하니까 당연히 그의 존재를 위협으로 느끼는 누군가에 의한 암살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나발니라는 인물이 어떤 인물이고 러시아에서 그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채선아> 먼저 그의 사망 소식에 러시아 내에서는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는지 궁금해요.
◆ 박수정> 러시아 정부에서는 철저히 조사하고 있다고 공식적으로 입장 표명을 했는데요. 시신을 공개하지 않고 가족들에게조차 인계하지 않아 의문스러운 상황입니다. 또 푸틴 본인은 침묵 중입니다. 푸틴이 나발니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인물이에요. 그가 살아있었을 때조차도 한 번도 나발니라고 부른 적이 없어요. 나발리가 블로그를 했었는데 소위 '블로거 나부랭이' 이런 뉘앙스로 그를 지칭하면서 무시했었다고 합니다.
그럼 언론에서는 어떻게 얘기를 하고 있냐. 러시아 언론 대부분이 국영 방송인데요. 이 죽음에 대해 마치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보도를 하고 있어요. 사진도 없이 아주 짧은 단신으로 보냈다고 하고요. 영국의 BBC에서는 이런 세태를 비판하기 위해 러시아 언론이 얼마나 이 죽음을 축소해 다루고 있는지 비판하는 기사를 내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제1국영방송에서는 아예 이 사건을 다루지 않았다고 하거든요. 두 번째로 큰 채널에서도 10초 정도만 짧게 보도했다고 합니다.
◇ 채선아> 푸틴 대통령의 정적이라고 할 정도면 존재감이 꽤나 있었다는 건데요. 러시아 국민들은 아예 이 소식을 모르는 건가요?
◆ 박수정> 정보를 막는다고 해서 막아지는 세상이 아니잖아요. 러시아에서는 소셜 플랫폼들도 다 통제가 되고 있긴 하지만, 그중에서도 통제가 되지 않는 텔레그램이나 X(구 트위터)를 통해서 이 뉴스가 많이 퍼졌다고 합니다. 러시아 국민들은 정부의 통제가 닿지 않는 텔레그램을 통해서 뉴스를 보는데요. 지난 주말 동안 텔레그램에서 가장 조회수 높은 뉴스가 나발리의 사망 소식이었다고 합니다. 소식을 들은 시민들이 모여 주말 동안 전국 각지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추모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러시아 30여 개 도시에서 추모 행사가 자발적으로 열렸고요. 공간을 공식적으로 만들어 놓은 게 아닌데도 추모비를 만들어서 꽃을 갖다 놓는 방식으로 추모를 하거나, 러시아뿐만 아니라 유럽이나 미국의 여러 도시에서도 러시아인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나발니를 추모하는 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 채선아> 추모 행사 주변을 보니까 경찰 같은 사람들이 서 있고 시민들을 데려가는 것 같은데요?
◆ 박수정> 러시아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에 사람들이 모이면 일단 잡아가는 기조가 있어요. 왜냐하면 반전 시위를 할까 봐서요. 그런데도 사람들이 수천 명이 모이는 거예요. 이렇게 추모하는 시민들을 경찰들이 체포해 가고 있다고 합니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지난 주말 동안 최소 366명의 일반 시민들이 추모비에 꽃을 두고 왔다는 혐의로 그 자리에서 체포되고 구금된 상황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수가 4,500명까지 늘었다는 보도가 있거든요. 추모비에 꽃을 두다가 경찰에게 구타당하고, 나발니의 사진을 가방에 넣어 다니다가 길에서 체포되고, 추모 기도회를 계획했던 가톨릭 주교가 집을 나서다 체포되어 구금 중이라는 소식도 들려왔습니다.
모스크바의 '슬픔의 벽'이라는 곳은 정치적 억압의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장소인데요. 상징적인 장소니까 사람들이 많이 모일 거 아니에요? 그래서 아예 경찰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통제하고 있다고 합니다.
◆ 조석영> 저기서 돌을 던진 것도 아니고 시위를 한 것도 아닌데요?
◆ 박수정> 그러니까요. 순수하게 추모만 해도 탄압하는 상황이 이어지다 보니까 국제사회는 강하게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비난하고 있거든요. 특히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이 '나발리의 사망 배후에 푸틴이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일'이라며 '이번 사건을 통해 푸틴의 잔인성을 다시 한번 국제사회에 입증했다'고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 조석영> 푸틴의 충직한 부하였다고 알려진 프리고진 사망 사건 때 정리했듯 지난 2년간 푸틴에 맞선 인물 50여 명이 의문사했다는 얘기가 있죠. 정확하게 집계할 수는 없겠지만 예를 들어 일명 '방사능 홍차'(실제로는 녹차)를 마시고 숨졌다거나, 건물에서 떨어졌다거나, 비행기에서 의문의 추락사를 한 사람도 있었죠.
◆ 박수정> 러시아에서는 우리나라 일인데 신경 끄라는 식으로 불쾌하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고 합니다.
◇ 채선아> 나발니가 도대체 어떤 인물이길래 러시아 정부가 추모하는 것까지 두려워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걸까요?
◆ 박수정> 알렉세이 나발니, 1976년생으로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출생했습니다. 미국 예일대학교 로스쿨을 졸업한 인권변호사 출신의 정치인이고요. 두 아이의 아빠이기도 하죠. 러시아에서 반푸틴의 상징으로 얼마 남지 않은 민주화 세력을 대표하는 인물이었다고 기억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AFP 통신은 나발니를 '푸틴의 가장 노골적인 비판가' 라고 표현하기도 했고요. 월스트리트 저널에서는 '푸틴 대통령에게 경종을 울린 러시아에 남은 몇 안 되는 목소리 중에 하나'라고 평가했습니다.
2011년도에는 나발니가 반부패재단을 창설해서 러시아 고위 관료들이 어떤 부패와 비리를 저질렀는지 폭로하는 역할을 했고요. 2013년에는 사람들의 지지를 얻어서 모스크바 시장 선거에서 2위를 차지한 적도 있었습니다.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한 침략 전쟁도 강하게 비판을 했었고요. 또 푸틴의 숨겨진 딸을 폭로한 사람이 이 사람입니다. 나발리 하면 여러분들이 꼭 기억해 주셨으면 하는 중요한 정체성이 하나가 더 있거든요. '파워 블로거' 나발니입니다.
◆ 조석영> 블로그를 통해서 언론 활동을 했죠.
◆ 박수정> 맞아요. 생전에 '나발니 닷컴'이라는 사이트를 직접 운영하면서 폭로하는 모든 정보를 명명백백하게 공개하는 걸로 유명했고요. 또 이런 정보를 통해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시위나 집회에 참여해 달라고 스토리텔링을 하는 이야기꾼으로도 유명했습니다.
◆ 박수정> 나발니가 푸틴의 숨겨진 딸을 폭로했던 그 게시글을 보면 글이 전개되는 방식 자체가 재밌습니다. 글은 '어떤 한 의대생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의대생이 너무 호화스러운 생활을 하네요'로 시작하면서 그 의대생의 인스타그램과 친구들과의 대화를 추적해요. '그냥 의대생인데 월급을 얼마를 받길래 이렇게 살까요?' 하면서 그 월급을 추적하다가, '이 사람이 어디 사외이사에 등록이 돼 있네요 이 회사는 뭘까요?' 하면서 계속 그 자산을 파보니까 이 사람이 푸틴의 숨겨진 딸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또 이 사람을 둘러싼 자산을 추적하다 보니까 푸틴의 숨겨진 재산까지 공개가 되는 거죠. 이런 식으로 스토리텔링이 탐사 보도 프로그램처럼 재밌습니다. 사실 이 게시글이 푸틴에게 엄청난 타격이 됐던 이유는 푸틴의 공개적인 공식적인 재산이 아파트 하나였거든요.
◆ 조석영> 과거 전두환 씨 전 재산이 29만 원이라고 했던 것과 비슷한가봐요.
◆ 박수정> 푸틴 본인이 '내가 일하면서 번 재산이 이거다, 나 생각보다 검소하다'고 이야기를 했을 시점에 나발니가 이 게시글을 터뜨린 거죠. 실제 푸틴의 재산이 몇백 조에 달하는 수준이라고 공개하면서 푸틴의 거짓말을 파헤친 겁니다. 마지막 문단에는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여러분의 참여 없이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습니다. 푸틴 없는 러시아 캠페인에 참여해 주세요. 그리고 익명의 지하 본부에 등록하세요' 하면서 옆에 링크가 있어요.
◇ 채선아> 누르면 뭐가 나오나요?
◆ 박수정> 링크에 들어가면 푸틴의 재집권을 막기 위해서 시민들이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실천 강령 같은 걸 쭉 써놨어요. 그게 뭔가 간절하고도 슬프거든요. 뭐 대단한 방법이 있는 게 아니라 '주변에 있는 최소 10명의 사람에게 이번 선거 때 푸틴 대통령을 찍지 말라고 설득해 보세요' 라고 하면서 '이게 가장 시민적인 저항 방법입니다'라고 적어요. '당신이 어떤 표를 던지든 어차피 2024년에 푸틴이 또 당선될 거지만 시민들이 해야 하는 임무는 우리가 더 이상 푸틴이 필요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리는 것이다. 그 누구도 우리를 대신해서 이 일을 해줄 수는 없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 조석영> 혁명가다운 말이네요.
◇ 채선아> 푸틴 입장에서는 '이러다가 올해 대선 때 국민들이 나를 대놓고 반대하면 어떡하지' 이런 두려움이 들었을 것 같아요.
◆ 박수정> 한편 이런 식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나발니의 전략을 이미 15년 전에 예견했던 기사가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에 나발니를 만났던 뉴욕타임스 기사를 보겠습니다. 당시 나발리는 32살 초임 변호사였는데요. 러시아에 파견 나가 있던 뉴욕타임스 기자의 동료가 '내가 아는 변호사가 있는데 아직 어린 변호사인데 나중에 푸틴의 대항마로 클 것 같아' 라고 얘기를 하면서 그 사람을 한번 만나보라고 했대요. 기자가 작은 사무실에서 나발니를 만났는데 나발니가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합니다. '반체제 운동의 미래는 결국 인터넷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인터넷을 통해서 사람들을 모아야 한다. 나는 구글의 자료를 정리해서 블로그에 올리고 있는데 이걸 나중에 반체제 운동할 때 활용할 것이다'라는 계획을 하고 있었다고 해요. 뉴욕타임스 기자는 푸틴에 반대하는 다른 인사들과 나발니가 구분되는 지점이 바로 인터넷을 잘 활용한다는 점이었고, 푸틴이 그래서 그를 유독 두려워했을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 채선아> 15년 전부터 푸틴 입장에서는 눈엣가시였을 것 같거든요. 어쩌면 지금까지 눈엣가시였는데도 불구하고 잘 살아남았던 것 같아요.
◆ 박수정> 사실은 이미 죽을 고비가 많았어요. 2017년에 괴한이 그의 눈에 약물을 뿌리고 가서 오른쪽 눈이 실명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정체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고 하고요. 또 2020년에는 시베리아에서 모스크바로 향하는 비행기에 타 있었는데 거기서 독극물 중독 증세를 보이면서 쓰러졌어요. 거의 죽을 고비였는데 독일로 급하게 이송이 돼서 치료를 받았고요. 이 독이 무엇인지 조사를 해보니까 소련 시절에 개발된 독극물이었던 거예요. 하지만 러시아 정부는 난 모르는 일이라고 혐의를 부정했고요. 그 당시에 너무 죽을 고비를 많이 넘기고 수술까지 하니까 주변 사람들, 특히 아내가 제발 러시아로 가지 말고 독일로 망명하자고 설득을 많이 했대요. 하지만 나발니가 러시아로 돌아가기로 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 채선아> 이렇게 죽을 고비를 넘기고 다시 러시아로 간 거예요?
◆ 박수정> 맞아요. '난 당연히 가야 한다. 난 영웅이 아니라 그냥 러시아로 돌아가는 한 사람의 시민이다'라고 말했다고 하죠. 그러면서 CNN과의 인터뷰에서는 이렇게 대답했대요. '만약에 푸틴이 나를 죽이고 싶어 한다면 그 말은 내가 강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강하다면 그 힘을 사용하는 걸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 채선아> 러시아 내에서는 지지층이 엄청 많았을 것 같거든요. 앞으로 그의 죽음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해요.
◆ 박수정> 푸틴의 5선은 안 그래도 유력했지만 더 확실해질 것 같습니다. 대항마가 사망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나발니가 상징하는 반푸틴 움직임이 그의 죽음으로 잠잠해질 것인지, 아니면 더 커질 것인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습니다. 나발니의 부인인 율리아 나발나야가 어제 유럽연합 회의에 참석을 했고요. '내 남편은 푸틴이 살해했고 남편의 뜻을 이어가겠다'고 하며 지지를 호소했다고 합니다.
◆ 조석영> 독립운동이나 우리나라에서 반독재 투쟁했던 사람들이 겹쳐 보일 수밖에 없네요.
◆ 박수정> 맞아요. 우리나라의 과거도 떠올리게 하는 소식이었습니다.
◇ 채선아> 네. 여기까지 외신 전해준 박수정 PD, 그리고 조석영 PD와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 박수정, 조석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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